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떨 때 기쁨을 느낄까.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가 꼭 해야할 일을 깨달았을 때 사는 보람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 수 없어 보이는 삶이라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삶이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담벼락 구석에 있는 강아지똥. 더럽다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하찮은 것. 그것에 글쓴이는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넌 똥 중에서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 하고 놀려대는 흙덩이. 강아지똥은 자기가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슬퍼하고, 그런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흙덩이는 자신도 사실 버려진 처지라고 말한다. 지난 여름 가뭄이 심했을 때 어린 고추를 살리지 못해 이렇게 버려져 벌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밭을 일구던 농사꾼이 와서 흙덩이를 보고 처음 살던 곳으로 되가져가고 강아지똥만 홀로 남는다.
춥고 외로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강아지똥 옆에 민들레 싹이 돋아났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신과는 다르게 민들레는 예쁜 꽃을 피운다는 말에 부러워한다.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빛과 비로 자란다는 민들레.
그런데 민들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거름이 돼줘야 한단다.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라는 말에 강아지똥은 너무 기뻤다. 자신이 태어나서 꼭 해야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몸이 있어야 민들레가 고운 꽃을 피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강아지똥은 힘껏 민들레 싹을 껴안는다. 빗물에 자기 몸을 다 녹여 민들레와 하나가 된다. 따뜻한 어느 봄날 강아지똥이 있던 담벼락 구석에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느님이 보시기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다 귀하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따뜻한 햇살과 비를 내려 주신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이들도 따뜻하게 감까 주신다. 그것은 희망이다. 하지만 강아지똥 같은 용기가 있어야 그 희망이 꽃필 수 있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몸과 마음을 던질 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만약 강아지똥이 자기 몸이 없어지는 것이 싫어 민들레를 꼭 껴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강아지똥이 자기 몸을 너무 아껴서 남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몸과 생각을 너무 귀하게 여기는 나머지 남을 아끼는 삶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사랑은 자기 목숨 버리더라도 남의 목숨 살리는데 있다. 그것이 바로 강아지똥이 살아온 삶이다.
담벼락에 피어있는 예쁜 민들레꽃, 그것은 자기 목숨보다 남의 목숨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따뜻한 사랑이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하고 되묻는 속에서 키워낸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살다보니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온몸을 내던질 용기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우리도 강아지똥을 닮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우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떨까. 흙 한 줌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피어나는 민들레.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 아파하면서도 끊임없이 살아나는 민들레 같은 목숨들을 아끼고 보듬고 섬기는 거름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2005년 8월 8일 찌는 더위에 부는 한 줄기 작은 바람이 더욱 시원한 때
풀벌레 은종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