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도 기쁜 새날을 위하여

‘하면 안 되는 것’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

해 저무는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온 나라가 융단폭격을 당한 듯하다. 서해안 지역에는 보름 넘도록 큰 눈이 왔고,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제1야당은 국회 바깥을 킁킁거리며 서성댄다. 이른바 엑스파일 문제는 불거진 채 그대로 해를 넘길 태세고, 관련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거리를 활보한다. 비정규직문제와 쌀 수입개방문제로 노동자와 농민들이 한겨울 거리로 나선지 이미 오래다.

(그분들 가운데 몇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부디 저세상에서라도 비정규직 없고 마음 편히 농사지을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해본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지나온 날들을 차분하게 곱씹는다. 반성과 성찰의 근저에는 다가올 날들에 대한 예비와 기대가 자리한다. 만일 미래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성찰과 반성 자체에 함몰된 자는 과거에 영원히 붙들려 지난날의 미로를 헤매는 우울한 나그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우상의 탄생과 언론

여기 열정적이고 자신만만하며 사교성 있고 연구능력이 입증된 한 대학교수이자 과학자가 있다. 꾸준한 인내와 참을성 있는 기다림을 한편의 미덕으로, 근면과 성실, 그리고 활발한 대인관계를 다른 미덕으로 삼은 그는 낮과 밤을 도와 연구에 매진하였다. 여러 가지 과학적 연구업적과 가시적인 성과물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신흥종교 신자들처럼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수많은 대중이 도처에 생겨났다. 그를 향한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의 열망과 기대와 신뢰는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인 반대표명은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부와 정치권은 거의 예외 없이 그와 이런저런 인연을 과시하면서 그를 우상화하는 작업에 일로매진하였다.

걸핏하면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무능하고 부패하며 철밥통을 가진 집단이라 매도하였던 조선-중앙-동아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은 그를 우리시대의 위대한 과학자로 추켜세우는데 앞장섰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에서 윤리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들은 앞 다투어 한국의 윤리의식과 서양의 그것은 전혀 다르다는 기막힌 사실왜곡과 강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가! 사태진척에 따라 그들의 보도행태는 날마다 갈지자 행각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인터넷의 맹목적인 누리꾼들과 함께 비천하고도 야비한 승냥이 무리가 되어 그이뿐만 아니라 연구팀 전체를 사납게 물어뜯고 있다. 박기영 보좌관과 같은 정부 내부의 실무자들은 책임전가에 급급하다. 잘못됐다고 사과하는 정치권 인사들은 아무도 없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은 성과주의와 업적주의로 병들어왔다. 목적만 정당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군관민’이 일사불란하게 이른바 ‘조국근대화’에 매진했으며, 전체를 위해서 개인과 인권은 무시되어도 그만이었다.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는 거짓말을 국가원수가 버젓이 늘어놓았고, 쿠데타 세력은 광주항쟁 주역들을 간첩과 폭도로 매도하였다.

권력과 부를 위해서라면 조국을 내세운 새빨간 거짓말도 백주대낮의 동족살해도 야만적인 고문과 투옥과 허다한 간첩사건조작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면 그들은 한결같이 국가와 민족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웠다.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명운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은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쑤셔 박았고, 저항세력은 빨갱이로 몰아갔다. 예외 없이.

밀실야합과 패거리 정치가 횡행했으며, 권력과 돈을 향한 식자들의 줄서기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지역을 볼모삼아 자행되는 파행적인 정치문화는 오늘도 그칠 줄 모른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정치와 ‘우리가 남이가 식’의 끼리끼리 문화는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았다. 가진 자들의 속임수와 술수는 나날이 발전하여 차떼기와 떡값으로 진화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의연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들의 땅을 돌려받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고, 그들에게 붙어먹던 자들의 후예들은 또 다른 족벌을 형성하여 자랑스러운 조국근대화의 최정예선봉이 되었다. 이제는 종교까지 막강한 권력이 되어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며 기득권유지에 안간힘을 쓴 나머지 두 눈이 토끼 눈처럼 되어 버렸다.

일국의 추기경이 황교수로 인해 바깥세상 보기 부끄럽다고 울먹이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내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역겹게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족벌체제의 사학을 일신하여 21세기 동량을 키워보자는 개정 사학법을 악법으로 몰아세운 그가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목이 메다니. 세상은 정말로 요지경 속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기까지만 하자. 더 나가지 말자. 폭발 직전이다. 태풍 해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것 같다. 하지만 꾹 눌러 참고 잠시 더 생각해보자.)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피디수첩은 문제를 제기했고, 비록 제한된 일부세력이지만 거기에 동참하였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의 젊은 과학도들은 냉정하게 사태를 주시하면서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였다. 양파껍질 벗겨내듯 서서히 사태의 본질은 드러났다. 마지막 우리 손에 남은 것은 완전한 허무였다. 모두가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임금님은 정말로 벌거벗은 거였다.’

나는 한겨울 찬바람 속에 벌거벗고 서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본다. 온 세상 여기저기서 돌팔매와 야유와 조롱과 저주의 목소리가 빗발친다. 아무런 출구도 없는 것처럼 캄캄절벽이다. 정말이지 무릎을 꿇을 곳조차 없는 절망과 한탄의 정점에 마침내 다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만든 영웅 신화의 주인공 황교수의 실패는 당연히 대한민국과 우리 모두의 실패다.

허망한가? 허망해도, 미칠 듯이 고통스러워도 그것은 마땅히 우리가 치러야할 응분의 결말이다. 언제 우리가 그토록 과학기술에 목을 매면서 환상적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던가. 단 한번만이라도 이 땅의 자연과학자들이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 순수학문을 지키고자 악전고투하는지 생각이나 해보았느냐 말이다. 결과만을 고대하며, 주판알을 퉁겨오지 않았는가.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과학과 기술은 상생과 상보관계에 있다. 자연대학은 물론이려니와 공과대학도 기피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물질만능주의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돈에 몰려드는 부나방 같은 사회풍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연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의연한 과학도들이 양산되지 않는다면, 정녕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적어도 이제는 밀실야합이나, 협잡 혹은 속임수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 손으로 밝혀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과 진리는 승리하며, 종당에 인간의 모든 가치 있는 노력은 그만한 대가를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을 우리는 명징하게 배우고 확인한 것이다.

바로 거기가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길을 재촉해야 한다. 휘청거리지만 쓰러지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아직도 창밖에는 칼바람 부는 한겨울이다. 언제 설한풍이 불어올지 모를 일이다. 축 처진 어깨와 어깨를 맞잡고 서로 의지하면서 나아갈 일이다. 동일한 실수와 오류의 반복을 최대한 경계하고 회피하면서 굳건하고 결연하게!

새날의 도래를 위하여

누군가 말했다. “역사는 흐를 만큼만 흐른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지나치게 서둘다 보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허둥대며 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서둘러야하는지 근원적인 이유마저 알지 못한 채 집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무작정 달려온 것이다. 제 그림자에 놀란 어린 송아지처럼.

차분하게 역사의 벽돌을 쌓아야 한다.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스스로의 중심을 확실하게 다잡아 나갈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앞서서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것’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잃어야 얻는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반면에 새롭게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에너지 총량은 불변이다. 소모되었으되, 그것은 어딘가에 축적된다. 눈은 녹을 것이고, 엑스파일은 언제고 꼭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고 자연의 순리다. 그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위로하며 환하게 웃자! 슬프지만 기쁜 역사적인 새날의 시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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