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에 사는 수많은 곤충과 나비,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 골목길과 빗물 흐르는 창, 하늘과 구름과 바람, 새와 아이들, 달빛과 아침 이슬, 자전거와 햇살, 빛과 소리, 헌 책방, 바다와 숲과 갯벌, 꽃씨, 다 떨어진 승복, 아름다운 도롱뇽 가사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년 사이에 수백 일 동안 밥을 굶으며 천성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
지율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밥을 굶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100일 가까이 밥을 굶고 있다. 그가 살아있는지 삶을 달리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율은 오직 자신이 죽어야 천성산이 살 수 있고 아직 천성산과 한 약속이 남아있다고 조용히 말할 뿐이다.
가슴이 미어진다. 속울음이 솟아 나온다. 얼마나 천성산을 사랑했으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밥 굶기를 했는데 또다시 목숨을 건 밥 굶기를 하겠는가.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지율은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하는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돈에 눈먼 사람들이 온갖 거짓말로 살아 있는 것들을 다 죽이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 자기 몸을 죽여 그런 세상을 살리려 한다. 살아 남은 사람들을 깨우치려 한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부끄러움으로 떨게 한다.
“생각해 보면 태어난 그 순간, 죽음의 연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은 결국 죽음을 통로로 사바를 떠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갈 수 없습니다.
기실 이 세상에는 억울한 죽음도, 비장한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는 농부가 임금의 이름을 모른다고 했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대통령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가진 카리스마, 정치력, 어리석음, 그리고 재능까지도 이야깃거리입니다.
저 같은 무지렁이 촌중까지 청와대 앞에 앉아 있는 이 현실은 온통 암울하기만 합니다.
(2004년 12월 18일 지율이 4번째 밥 굶기 100일 가운데 53일째 되는 날 쓴 날적이에서)”
어떻게 하면 지율을 살릴 수 있을까. 지율은 자기 몸 아픈 것을 보지 말고 천성산에 있는 샘이 마르고 나무와 꽃과 작은 벌레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라고 한다. 당신의 가장 친한 벗들이 포크레인에 찍히고 불타는 것을 보라고 한다.
그들이 다 죽고 난 자리에 사람이 살 수 있겠냐고 조용히 묻는다. 아니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밥을 굶으며 온몸으로 소리친다.
‘초록의 공명’을 읽으면 왜 지율이 그토록 작은 도롱뇽 한 마리를 당신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는지, 자신에게 숱한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조차도 왜 감싸 안으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지율은 시인이다. 이 세상에 난 모든 목숨붙이를 아끼고 보듬고 섬기는 마음을 가졌다. 빛과 소리로 아름답게 이루어진 세상이 사람들 돈 욕심에 쓰러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기 한 목숨 버려 그것들을 살리려는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오, 따뜻한 햇살 한 줌이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초록빛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꽃과 나비, 새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웃고 뛰놀았으면 좋겠다.
2005년 12월 27일
맑은 마음 모아 지율 스님이 살아 있기를 바라며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