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주의 노선 폐기시켜야"

[기고] 보궐선거중인 민주노총을 보며

지난해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자본에게 뇌물을 받은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이수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4기 임원들은 여론의 압박에 밀려 2005년 10월 20일 사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21일 구성된 비상대책위체제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2006년 1월 6일 중앙집행위 회의와 1월 11일 중앙위원회 회의를 통해 보궐선거일정이 확정되었으며, 1월 21일에는 입후보자들이 공식 선거유세에 돌입하였다고 한다.

위원장―사무총장 1조, 부위원장 7명을 선출하게 되며, 선거는 2월 10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932명 대의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2월 3일 현재 민주노총위원장으로 3인의 후보가 나와서 전국유세를 진행하고 있다.

이글에서는 선거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하여 간략히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1. 선거보다 투쟁

보궐선거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정부와 자본의 공세로부터 시작하여야겠다.

“국회 환경노동위 여야 간사들은 2월1일, ‘비정규직 개악법안 2월초 강행처리’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의사일정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 의사일정에 따르면 △ 2월 7일 오전 10시, 국회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처리하고 △ 2월 8~9일 열리는 환경노동위 전체회의, 특히 9일 오전 10시 회의에서 법안의결,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통과 등이다.”(기호3 김창근 이경수 선거운동본부의 2월 2일자 성명서에서)

자본과 정부는 선거로 어수선한 민주노총의 허를 찌르면서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선거가 치러지는 2월 10일 전에 비정규직확대법안을 국회에서 속전속결로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굳이 보궐선거를 치르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들게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도발에 대해서 각 후보진영은 다음과 같이 대응하고 있다.

기호 1번 후보는 “선거 일정을 ‘무기’ 연기하고 투쟁 상황이 종료된 뒤, 선거 일정을 다시 논의하고 새로 ‘후보 등록’을 받”자고 한다. 2번 후보는 “전국의 현장을 다니면서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호소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으로 (선거유세를―인용자) 전환”하겠다고 한다. 3번 후보는 “각 후보진영은 선거유세를 잠정 중단” 할 것과 “전체 후보진영이 함께 국회 앞 농성투쟁에 들어갈 것을” 제안하며 본인들은 “7일부터 국회 앞 농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선거보다 투쟁이 다급하고 중요하다. 선거는 연기할 수 있지만 투쟁은 마음대로 연기할 수 없는 것이다. 각 후보가 모두 투쟁을―약간의 차이는 있지만―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선거와 투쟁을 병행하겠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주장을 하는 2번 후보가 말로만 투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2.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을 폐기시켜야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을 폐기하고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비리로 물러났던 4기 집행부를 보면서 노동자들이 얻어야 할 교훈일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대통령후보 중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김근태는 최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대통합”을 말하면서 그 통합대상에 이수호를 지목하였다.

노무현의 집권 시 일군의 노조간부들이 노무현진영으로 넘어가고 이들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진하는 정부 측의 전위세력이 되었던 전례를 볼 때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튼 자본과 정권에 의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호 2번 진영은 이수호 전 집행부의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이들은 1월 27일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는 “이수호 집행부는 어느 집행부보다 큰 투쟁을 조직했다”고 한다. 정말 해괴한 인식이다. 그 “투쟁”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투쟁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암담하게 만드는 것은 4기 이수호 전 집행부를 뽑았던 대의원들이 다시 이번 보궐선거에도 유권자들이라는 것이다.

3. 개량주의와의 투쟁

기호 2번 진영의 사무총장후보는 민주노총 혁신의 방안을 묻는 “참세상”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노조 상층부의 도덕적 타락과 배신, 자본 이데올로기에의 오염 등 ―인용자)이 발생하게 된 데에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노동운동의 이념, 변혁성의 문제이다. 특히 90년대 들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노동운동의 이념적 지표를 상실하면서, ‘노동해방’으로 표현되던 민주노조운동의 변혁 지향성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항로를 잃은 배처럼.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이념과 노선을 정립하기 위해 ‘21세기 노동운동전략위원회’를 설치하겠다. 전략위의 활동은 ... 현실을 변혁할 전망과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이념과 노선을 정립”하겠다고 한다. 이수호 전 집행부의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는 전략”을 계승하겠다고 하고, 민주노총은 (사민주의 우파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노동운동의 이념, 변혁성의 문제”를 거론한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자면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말한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통해 노동자계급이 보다 많은 분배를 받는 것, 즉 이 작은 개량이 이들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변혁”도 혁명이 아니라 개량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지난해 “핵심 간부의 비리문제”로 전면화된 “민주노총의 위기”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들이 말하는 의미로서의) 변혁적 이념과 노선이 정립”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이념과 노선은 물론 그 물질화로써 당까지 만들어졌다. 머지않은 시기에 집권까지 꿈 꾸구 고 있는 민주노동당이다. 개량주의가 노동운동, 즉 노조운동과 노동자정당운동을 장악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주노총의 역사는 변혁적 노동운동진영의 쇠락의 역사이고 개량주의 노동운동진영의 승리의 역사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노조운동의 부패와 타락은 개량주의 운동의 발전의 결과물에 다름이 아니다. 노조관료들의 경우 적당히 투쟁하는 체하면서 자본과 타협할 때 국회의원으로, 구청장으로, 하다못해 기초자치단체의원으로라도 출세길이 트였다.

정규직 조합원은 독점자본의 경쟁력 강화에 타협할 때 힘들고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살길이 보였다. 한국독점자본의 발전(삼성, 현대자동차, 엘지, 현대중공업 등 독점자본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시장을 확장하고 있으며,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이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개량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으로 인한 개량의 토대의 확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개량주의 노동운동의 성장은 그렇게 타협점을 찾아간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요원해 보이기는 하지만 변혁적 노동운동진영의 발전만이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4. 비정규직노동자,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여성노동자의 민주노총에서의 권한 강화

현재와 같이 의무금 납부비율에 따라 민주노총의 권한을 배분하는 방식을 1번과 3번 후보진영은 비판한다. 이들은 민주노총이 1천만 노동자의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소외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의 참여를 강화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3번 후보의 경우 의결집행기관(대의원, 중앙위원회, 집행위원회 등이 될 것이다)에 비정규할당제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동의한다. 2005년의 경우 투쟁을 비정규직노동자가 주도하였으며,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권한을 가질 때만이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될 것이다.

5.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에 대해서

임원직선제에 대한 견해는 1번 후보진영은 “당장 직선제 실시”를, 3번 후보진영은 2007년 선거부터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2번 후보진영만 준비부족과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을 들어 직선제 유보(실제로는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직선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간선제에 비해 진일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선거 시기에 민주노총의 사업과 조직상대를 평가하고, 발전전망을 전조합원과 공유할 수 있다.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까지 투표권을 갖게 된다면, 현재와 같은 일방적인 대기업노조 중심의 운영이 개선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선거에 출마한 “정파”가 자신의 노선과 정책을 정리된 형태로 발표하고 대중들에게 검증받으면서, 정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정파로 인한 부작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6. 산별노조건설에 대하여

기호 2번 진영은 ‘2006년 6월에 산별전환 총투표“를 통해 산별노조체계로 가자고 한다. 1, 3번 진영은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1번 진영이 더욱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산별노조를 만드는 문제는 노동자들이 더 큰 조직으로 단결을 확대하는 문제이고 그 만큼의 계급의식의 확장을 전제로 한다. 한 기업에서 “같은 노동자”라는 의식으로 기업별노조를 만들었다면, 한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우리는 하나다”라는 계급의식이 발전해야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할 수 있다. 이것은 연대투쟁을 통해 계급의식이 성장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투표로서, 다수결로 아주 손쉽게(?)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대체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적나라한 관료주의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조합원들도 후보들도 모두 “혁신과 투쟁”을 말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것! 그것이 혁신이고 투쟁이다. 지금 자본과 정부는 시험문제를 던지고 있다. 발등에 불로 떨어진 비정규직 개악입법 저지투쟁에서 우리는 누가 진정 “혁신과 투쟁”을 말할 자격이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노동사회과학연구소는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발간, 노동대학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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