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의지로 마침내 승리하는 인간과 백의민족의 한을 통쾌하게 메치는 한판이 난무하고 문자 그대로 ‘감격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던 시절. 교과서에서 80년대 중반 ‘스포츠공화국’을 규정하고 기술하는 수사들이다. 그땐 정말 그랬나, 아니 그랬다. 고구려 벽화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반만년을 이어져 내려온 활을 쏘는 단일민족의 유전자가 ‘신궁 코리아’를 가능케 했다.(고 모두 그렇게 믿었다.)
이 어처구니 상실의 순간. 진실을 덮어버리는 거대한 거짓말. 그렇다면 왜 인류 역사상 최강의 기마 민족이라는 몽골족은 승마에서 금메달을 휩쓸지 못하는가, 썰매에서 태어나 썰매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북방민족들이 동계올림픽을 휩쓸지 못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유도, 레슬링, 권투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많이 딴 이유는 한민족이 워낙에 호전적이고 게다가 치고받는 싸움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텐가.
현대 스포츠에서 승리는 그런 이유들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재응이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것은 선의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자기부정이라 연민이 생긴다. 그는 오른팔에 감사해야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새벽잠 마다하며 운동에 매달렸을 자신의 인생에 감격했어야 했다. 이치로를 ‘굴욕’하게 만든 것은 태극전사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지닌 선수로서 자신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스포츠는 그렇게 활용된다. 기성 질서의 모순에 무감각한 개인의 양성을 위해, 체제에 순응하고 감응하는 시민 감수성의 확산을 위해, 비판과 대안의 모색이 아닌 만족과 감동의 공동체를 위해. 애국심을 과잉 조직하며.
오늘, WBC는 스포츠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마취시켜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았다던가, 세계 최강을 무너뜨렸다던가, 이승엽/박찬호에 이름값이 있다던가 하는 따위의 기만은 개발이 환경을 착취하는 합법적인 방법을 제시한 새만금에 대한 기념비적 판결을 그저그런 뉴스로 전락시켰다.
찌질한 미디어들은 스포츠를 통해 민족을 호명하고 스포츠 승리를 개인의 승리가 아닌 국가의 승리로 환원함으로써 사회적 모순과 체제의 불안함을 현혹하고 문제를 축소하려한다. 범국가적 차원의 난동이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신자유주의의 내면화는 광폭한 양상이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서글프지만 조건이 변화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데릭지터, 켄 그리피 Jr, A 로드리게스의 플레이를 기억하는 것도 신자유주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너무나 다행스러운 것은 메이저리그와 K리그가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 메이저리그가 있으니 K리그를 없애라 요구한다면 어떻겠는가?
조건없는 경쟁, 예외없는 개방, 시장 우위의 사회로 대변되는 FTA 체제는 어쩔수 없는 흐름이거나 대세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저항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의 문제이다. 한때 신체가 교역의 대상이었듯, 문화도 먼 훗날 언젠가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 세계 148개국이 합의한 사실이다. 그 합의에 저항하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신체가 교역되던 때에 머물고 있다. 미국이 보이고 있는 작태는 100여 년 전 지구본에 줄을 긋기만 하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수 있었던 시절의 논리와 똑같다. 절대 우위의 군사적 패권을 바탕에 깔고 백주대낮에 서슴없는 협박을 하고 있는 것 까지 완전히 같다. 한미 FTA는 군사적 보호(혹은 종속)를 약속할테니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라는 협박이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북한을 칠수도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입장이 구체적 징후의 수준이 아니라 실체적 현실임을 입증하는 근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프랭크 캐프티 미국안보정책센터 소장이 워싱턴타임즈에 기고한 글은(3/7, 『군축은 이제 끝났다』) 섬뜻하고 또 섬뜻하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싱 인도 총리 간에 핵협력협정이 체결됐음을 근거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유명무실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NPT가 깨진 것은 핵무기 보유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을 가진 인도 때문이 아니라(미국은 인도와 체결한 핵협력협정의 내용은 인도에 미국이 핵 기술과 연료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평화적 목적으로 핵 기술을 사용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이란과 북한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과 인도의 핵협력협정은 미국의 핵발전산업을 부활시키고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인 양국 간의 동맹은 자유세계를 위한 전쟁에도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를 억제하기 위해 또다시 외교적 노력에 매달리는 것은 이란의 완벽한 핵 보유를 도와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군축의 대체 수단으로서 (이란과 북한의) 체제 교체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제 군축을 끝내야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FTA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본질이다. 노무현 정권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한미FTA가 필요하다는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를 진지하게 지껄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어찌 고백할 수 있으랴,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핵을 쏠 수 있음을. 노무현 정권은 완전히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 19C 경제관을 지닌 그들은 종속을 어쩔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가관인 것은 숙명적 종속론자 노무현은 자신의 선택을 선구적 관점이라 우기고 있다.
결론 : 월드컵은 한미FTA의 미래다
분명히 말하건데, 2006년 독일월드컵은 한미FTA의 미래다. 오늘의 WBC는 내일의 한미FTA다. 한국이 세계 최강 미국을 이겼으니 긍지를 느끼라고 우리가 세계 최강이라는 최면을 걸라는 현란한 선동사이로 진실 은폐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땄을때가 이랬을까, 그땐 최소한 민족적 자긍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손기정 개인의 활약이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상식이 있었다.
한미FTA를 완전히 지워버린 언론이 WBC에, 100여 일이나 남은 월드컵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소위 ‘FTA추진로드맵’이란 것을 밝혔다. 그 로드맵이 담고있는 진실은 하나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독일월드컵까지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국가가 월드컵을 상징조작하고 미디어가 애국심의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성없는 신자유주의자이길 거부하고 공세적인 ‘신개발주의자’가 되고 싶어했던 이명박이 시청 앞 광장을 SKT에게 팔아버렸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청 앞 광장이 추동했던 일련의 사회 변혁들에(87년 6월 항쟁, 02년 거리 응원, 여중생 추모 집회) 몸서리쳤을 이명박 시장이 아예 광장을 재벌에게 팔아버렸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광장을 잃었고, 그 광장은 고스란히 재벌에게 떨어졌다. WBC를 보면 무엇을 생각했는가, FTA의 거의 유일한 수혜자가 될 대재벌이 광장을 독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것은 막연한 내일의 일이 아니다.
모든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녹여 막대한 용광로로 뜨거운 여름을 달궈야할 광장은 이제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다. 깔때기적 결론을 경계해야겠지만, 이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니다. 월드컵이 한미FTA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 사진
-
재난 연극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상담소
- 99%의 경제
- 미디어택
- 비문명의 역습
- 초고령화 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엄한진의 INTERNATIONAL
- 여성, 노동의 기록
- 녹색스트라이크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연정의 르포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