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인터넷언론의 역할

'침묵하는 미디어, 잠을 깨라' 토론회 발제문2

1. 뉴미디어가 한미FTA를 만나면

올해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등장은 방송과 통신 영역에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IPTV는 초고속통신망을 이용한 양방향 티비 서비스로, 말 그대로 티비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IPTV는 실시간 방송 뿐만 아니라 VOD서비스, 인터넷을 통한 검색, 메일, 홈뱅킹 등 인터넷 서비스 이용, 무제한의 채널 편성도 가능하다. IPTV는 KT가 지난 해 발표한 '미래전략2010'의 신성장 5대사업의 하나로 설정되었는데, 알려진 바로는 광가입자망 구축 등에 25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통신업체들은 IPTV가 기존 케이블티비와 차별된 서비스임을 강조하는데, 따라서 IPTV에 대한 규제는 방송통신 융합미디어에 적합한 새로운 규제 정책과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유선통신, 지상파방송, 케이블티비 등에 적용되는 전통적인 규제 모델을 IPTV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통신업체의 개입이 자유로워지게 되고, 따라서 기존 방송이 갖고 있던 공공성, 공영성의 영역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 IPTV를 둘러싼 소유 구조, 공공 채널 편성, 프로그램 제작에서의 규제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의 침투. 전통적인 방송 영역은 공공성과 공영성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법제도적인 규제를 받았지만, 뉴미디어는 국가의 지원 아래 통신자본이 주도하고 있어 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권리가 크게 침해받게 된다. 자본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것인가에 골몰하는데 방송과 통신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이 방송 통신 영역을 장악하기 위해 갖가지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동안 국가는 관련 부처의 정책을 통해 유비쿼터스라는 장밋빛 환상을 유포하며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더군다나 최근 한미FTA 협상이 추진되면서 방송 미디어 영역에 대한 개방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통보한 '협상 통보문' 등을 통해, 탈규제와 신자유주의, 방통융합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지분제한율(49%)을 풀게 한다는 내용을 밝힌 바 있다. 국내 통신회사를 통해 방송사를 장악하겠다는 일종의 우회 전술인 셈이다. 이는 방송통신 융합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실의 일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방송 미디어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 무역대표부의 무역장벽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해체를 포함하고 있다. 지금 당장 광고공사가 없어지면 KBS MBC SBS 정도만 살아남고, 라디오와 지역방송은 전멸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무역장벽보고서는 100분 중 80분 이상 국산물을 방영하고, 영화는 총상영시간 100분 중 25분, 애니메이션은 100분 중 45분, 국내대중음악은 100분 중 60분 이상으로 정한 방송법도 풀라는 요구내용을 담고 있다. 케이블과 위성방송 역시 안전한 영역이 아니다.

한미FTA 협상과 관계없이 한국에서 뉴미디어는 자본에 의해 장악되고 있으며, 최소한의 공공성 영역도 보장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뉴미디어는 현란한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하지만 뉴미디어를 관통하는 정신은 시장주의이며, 뉴미디어를 장악하는 컨텐츠는 상업주의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뉴미디어가 환상인가 아닌가, 이로운가 아니가 한가롭게 이야기할 겨를이 없다. 뉴미디어가 속도를 내고, 거기에 한미FTA라는 폭탄이 터지면 미디어, 뉴미디어 구분할 것 없이 미디어의 모든 영역이 자본에 의해 낱낱이 유린당하게 된다.

이제 변화하는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앞으로 진보적 인터넷언론이 얼마나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방송 통신 미디어 개방과 인터넷언론과는 직접적인 함수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IPTV가 되든, 와이브로가 되든 인터넷언론으로서 자리만 잡아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컨텐츠의 유통 경로를 자본이 장악하는 이상 진보적 미디어 컨텐츠의 유통을 보장받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포탈에서 진보적 컨텐츠가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 지 살펴보면 감잡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적 인터넷언론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또 자본이 장악한 영토 안에서 반란과 저항의 기획을 어느만큼 구사할 수 있을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듯 싶다.

2. 인터넷 환경과 사회운동

미디어 환경 또는 인터넷 환경의 변화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진보적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볼 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터넷 환경은 좋지 않다. 일찍이 표현의 자유, 정보 공유, 쌍방향 소통, 대안 네트워크 형성 등을 위한 공간이자 수단으로 거론되었던 인터넷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아주 없어졌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달군, 지음 두 진보넷 활동가가 이번 한국사회포럼에서 발표한 '웹 2.0? 정보운동 2.0!' 글에서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지금의 웹은 어떠한 모습인가? 웹은 더 이상 새로운 공간이 아니다. 신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웹은 익숙한 질서가 지배하는 실망스런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사회운동은 웹에서도 소수의 위치에 유폐되어왔다. 이제는 웹을 통한 사회운동, 웹상에서의 사회운동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라는 회의도 낯설지 않다"고 썼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인터넷 환경을 보면, 표현의 자유는 국가의 감시 검열 기능에 따라 제약되고, 정보 공유는 상업 서비스망에 의해 구속된다. 이메일은 소통의 도구에서 마케팅의 수단으로 바뀌었고, 커뮤니티 역시 포탈이 제공하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쌍방향 소통과 대안적 네트워크의 모든 기대를 포탈이 앗아가 버렸다는 점이다.

달군, 지음 두 활동가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인터넷 환경의 자화상을 고발했다. "진보진영의 진지들, 그것도 전 진보진영의 통일된 진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폐쇄된 BBS 환경에서 열린 인터넷 환경으로 이동하자마자 커뮤니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 독립네트워크에는 아군만이 존재했을 뿐 대중이 없었다. ... 어떻게 효과적인 서비스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모을 것인가, 효율적인 소통을 일으킬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교육할 것인가, 어떻게 정보를 공유할 것인가, 어떻게 자료를 축적할 것인가에 관한 모든 정책들이 상실되었다."

인터넷언론이 그저 보여주기만을 잘 하면 되는 것이라면 인터넷 환경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과 네티즌의 웹 사용 경향의 발전을 고려컨대, 단지 잘 보여주는 인터넷언론이 얼마나 잘, 제대로 생존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신이 안 선다. 진보진영의 커뮤니티 진지 구축 시도가 실패에 머무른 지금, 참세상, 참소리, 울산노동뉴스, 이주노동자방송국, 노동네트워크, 프로메테우스 같은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인터넷언론이 이른바 뉴미디어 환경 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참세상이 뉴스컨텐츠를 네이버에 제공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란을 벌인 바 있다. 말하자면 독립 컨텐츠를 포탈자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많은 독자들, 네티즌에게 노출해야 한다는 유혹을 끝내 떨치지 못했다. 결국 지난 2월부터 네이버 뉴스컨텐츠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노출'의 위력은 대단했다. 가령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기사가 네이버 뉴스 페이지 중간에 편집된 적 있었는데, 참세상 페이지에서 당일 200회 정도의 조회수가 되는 시점에 네이버에 걸린 같은 기사에 덧글만 150여 개가 달려 있었다. 모르긴 해도 참세상으로서도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포탈의 저 '노출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텍스트나 영상이나 진보적 컨텐츠 생산자로서 갖는 고민은 동일하다. 어렵게 힘들게 생산한 컨텐츠가 유통, 배급, 재생산되지 않았을 때 참으로 절망스럽다. 인터넷언론 주체들이 스스로 생산한 컨텐츠를 매개로 해서 독자와 교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터넷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미디어 영상활동가들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다양한 컨텐츠 기획과 생산 활동을 벌이고도, 유통 배급 기회를 갖지 못할 경우, 거기서 오는 절망감은 극한 피로감으로 연결된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컨텐츠 유통의 허브로 작동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미디어문화행동 같은 페이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참세상 같은 언론페이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곤란하고 불투명하다'가 답이다. 한편으로는 웹2.0을 보면서, 다음 수단을 내다보는 논의를 붙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웹2.0 역시 인터넷 사용자들의 활동 경향의 측면과 자본의 기획이 결합되어 재구성되는 또 다른 '기형적인' 인터넷 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미디어 환경, 인터넷 환경에 있어 자본이 장악한 영토는 거의 절대적이고, 반전시킬 계기란 사회주의혁명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실마리는 없는가. 물론 논리적으로만 보면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영토를 장악했다고 한다면 자본의 영토 안에서 반란을 꾀하면 된다. 황규만 진보넷 활동가는 "별게 아니다. 진보진영의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성실한 운동과 정보공유를 통한 집단지성의 발전. 그리고 서로간의 운동에 대한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연대를 지향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방법은 많다. 포털의 대자본이 투여된 검색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애써 우리 내용을 저들에게 갖다 바치지 않더라도, RSS 또는 TAG등의 기술만으로도 우리가 생산할 컨텐츠를 충분히 네트워크화 시킬 수 있다. 소스는 많다. 인터넷이니까"라고 주장했다.

결국 반란을 꾀하고 저항하는 사회구성원들간 네트워크와 소통, 그리고 연대 전략을 갖는 문제다. 뉴미디어와 한미FTA 협상에 따른 방송 미디어 환경 변화 예고 등 우울한 소식 일색이지만, 네트워크와 소통, 기획과 실행 경로를 가질 수만 있다면 아직 포기할 일은 아니다.

3. 네트워크와 소통, 기획과 실행경로

네트워크와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늘날 반란과 저항의 조직 주체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가.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수직적, 수평적으로 나누어 절대시할 필요도 없고, 특정 조직모델을 적용하자는 주장을 한다 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모든 부문 지역 주체들이 미디어(정치)전략을 열어놓고 토론해가면 된다. 이로부터 네트워크와 소통을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수단과 방법에 있어 진보적 미디어 컨텐츠의 생산과 유통은 유력한 것이며, 네트워크와 소통을 위한 특정한 인터넷 허브 구축 문제만큼은 전향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기획과 실행경로다. 오늘날처럼 자본이 세상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즉 기존 질서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을 주도면밀하게 관리하는 세상에서 '반란'을 꾀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의 자발성이 상식과 보편의 가치를 내포한다 하더라도 자본에 의해 그 가치가 왜곡되거나 의지가 교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웹2.0에서 회자되는 집단지성의 구성도 그러하거니와 사회구성원간 연대와 소통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작용한다.

지난 시기 오마이뉴스가 뉴스게릴라를 동원해서 종이신문을 물리치던 장면은 통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후 오마이뉴스와 첫 언론 인터뷰를 한 것도 그 자체로 낯설고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인터넷언론의 모양을 갖추고 개혁세력이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장악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가령 2004년 총선에서 오마이뉴스나 서프라이즈 같은 언론과 노사모와 국민의힘이 의제연대 또는 의사연대를 이루었던 과정을 단순하게 보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가령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주어진 인터넷 환경의 특성이 있었고, 인터넷 공간을 움직인 의제와 담론이 있었고, 의제와 담론을 생산하는 메카니즘과 조직이 있었다. 조중동에 대한 반발과 정서가 뉴스게릴라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연결되었고,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 주류였던 개발냉전세력(보수세력)의 정책과 선동에 맞서는 개혁과 민주화 의제가 작동했고, 서프라이즈와 같은 논쟁 싸이트의 흥행과 노사모와 국민의힘과 같은 네트워크가 작동했다.

이 시기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개혁세력의 기획, 그것은 안티 보수세력과 개혁의제의 적극적인 옹립으로 이루어졌다. 대중은 환호했다. 효순, 미선 사건을 겪으면서, 오노의 금메달 낚아채기를 보면서, 월드컵 4강을 거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위을 펼치면서 반미 반보수의 광장의 동원정치는 절정을 이루었다.

그런데 분명한 건 2005-6을 거치면서 개혁과 민주화 의제는 더 이상 세상을 움직이는 의미있는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광장의 정치를 연출했던 그 많던 대중들은 과거와 같은 광장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2000-2004년처럼 열광했던 광장은 쉽사리 연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혁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의제와 기획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한국사회포럼의 주제가 '한국 사회운동의 위기'였는데 이 주제가 의미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개혁의제를 동원한 개혁세력의 핵심이나 그들을 지지하고 따랐던 대중 할 것 없이 모두가 불안정해 보인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전위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파병과 황우석 사태와 농민 타살 같은 엽기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거듭되면서 스스로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미FTA 강행이라는 뒤통수를 맞자 이들은 분열증에 가까운 혼동을 겪는 듯 하다.

이렇게 보수-개혁 전선이 붕괴되고 있다. 5.31 지자체 선거를 거치면 인물과 계파에 따라 분열과 결집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속에 변별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노무현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 협상은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이 시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한편으로 노무현정부와 시민사회운동이 맺어왔던 정치적 가버넌스의 붕괴를 동반하고 있다.

한편 한국 사회는 지금 보수-개혁의 대립을 넘는 커다란 모순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노무현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한 데 연유하는데 노동유연화 강화, 사회양극화 심화, 사회적 빈곤의 확대, 개방화 시장화에 따른 생태 파괴와 공공성 위협,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착취 고착화, 남북 시장화의 가속과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개혁의제의 시효가 만료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보다 직접적이고 거대한 적(한국에서의 압축판 = 한미FTA)이 등장했으나, 아직까지는 개혁의제를 뛰어넘는 대안의제, 대안 담론의 목소리가 그것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문제를 넘는 대안 의제, 대안 담론이 부재한 가운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개혁세력의 숨통을 연장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을 주시하면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저항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진보적 미디어 컨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주체들이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미디어문화행동과 같은 미디어활동가네트워크, 진보넷 커뮤니티와 진보블로거들, 그리고 인터넷언론네트워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 진보적 인터넷언론들이 그러하다. 좀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대안 의제와 대안 담론을 고민하는 미디어는 사실상 진보적 인터넷언론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이, 종이신문이, 그밖에 미디어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 긴박하고도 반인민적인 사안들에 대해 과연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돌아보면 된다. 가령 황우석 사태 때 대부분의 미디어가 어떤 모습을 보였으며, 당장 한미FTA에 대해 대부분의 미디어가 어떤 보도 태도를 취하는가를 짚어보는 것만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진보적 인터넷언론을 다 끌어모아도 종이신문 하나, 오마이뉴스 하나의 영향력만큼도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소간의 편차는 있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사회구성원들의 저항에 주목하면서 다양하고 직접적인 컨텐츠 생산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목소리는 작지만 소중하고, 또 그 목소리에 희망을 걸고 가지 않을 수 없겠다.

안타까운 것은 진보적 인터넷언론들이 영향력도 크지 않은 데다 네트워크와 소통, 기획과 실행경로 모두 불안정한 조건위에 놓여 있다. 네트워크는 되어 있되 전략 설정이 미비하고, 소통은 하되 전술에 메말라 있다. 다루는 의제는 거시적이지만 기획이 따라가지 못하고, 미디어(정치)전략의 경로 마련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개혁세력이 미디어를 어떻게 동원했는가, 의제를 어떻게 생산하고 퍼뜨렸는가와 비교한다면, 안타깝게도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네트워크 주체들이 갖는 의제는 좀처럼 대중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거나 그런 기회나 계기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디어(정치)전략과 경로 설정의 부재를 의미하며, 따라서 시급히 대안 논의를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 인터넷언론의 컨텐츠

오늘 인터넷언론네트워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지역인터넷언론연대 등 진보적, 개혁적 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언론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역시 진보적 컨텐츠 생산의 문제일 것이다. 물론 지역언론이나 부문언론의 경우 거시적인 담론을 다루는데 부담을 갖기도 하지만, 큰 맥락에서 사회 진보를 위한 인터넷언론으로서의 역할에 크고작은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언론의 유형은 대체로 웹1.0에 기반한 선동 기능, 정치적 활용 수단, 의제와 담론의 생산 거점 등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지금 대부분의 인터넷언론은 특정 도메인과 제호, 페이지의 권위를 기반으로 자신의 독자를 확대하는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인터넷언론의 정치적 경향성을 보수, 개혁, 진보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인터넷언론의 지형이 보수적 경향의 확대, 개혁적 경향의 유지, 진보적 경향의 상대적 축소 흐름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만큼 인터넷공간은 더 이상 특정한 정치적 경향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정치적 경향과 관계없이 어떤 컨텐츠를 담는가에 의해 페이지의 권위와 지명도가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언론 지형에 있소 보수-개혁-진보의 경계가 사안과 쟁점에 따라 급격하게 무너지거나 혼재되는 양상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령 황우석 사태 때 다수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언론의 대부분은 강력한 선동을 통해서건 침묵으로건 황우석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여기에는 개혁언론이나 진보언론의 일부도 가세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딴지일보나 서프라이즈 등 일부 개혁언론은 내놓고 황우석을 찬양하는 작태를 연출했다.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었던 시기에는 조중동을 비판하고 대안언론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 발전과 직결되는 효과를 가졌으나, 오늘날 신자유주의 미디어전략이 관철되는 가운데 정보가 왜곡되고 교란요인이 증가하자 개혁, 진보언론조차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이 곧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역할을 뚜렷이 해야 한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언론지형에 있어 개혁언론과 진보언론으로 뭉둥그려진 지금까지의 흐름이 일단락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현실은 조중동에 맞서 오마이뉴스가 개혁과 민주화 의제를 대중화시켰듯이, 조중동과 개혁언론에 맞서 진보적 대안 의제와 담론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진보언론의 출현을 부르고 있다. 이는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 대안 의제와 담론을 생산 유통하는 주체로 진보언론이 우뚝 서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전략적인 표현을 명시하는 것은 한 차례면 충분하다. 계급투쟁은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역동하는 현장에서 사회구성원의 저항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고, 저항 주체와 저항 주체를 연결하고,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는 '기획'이 따라가야 한다. 더욱이 추상적인 진보 의제와 담론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다음으로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컨텐츠의 유통(배급)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정한 인터넷언론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좋은지, 진보적 독립적 컨텐츠 유통의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지, 또 다른 방안은 없는지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살펴봐야 한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특정 도메인과 특정 제호의 권위에 의존한 컨텐츠 유통은 변화하는 인터넷환경에서 자리잡기 어려운 상황이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

한편 현실 운동과 밀착하는 컨텐츠 생산을 이루어가야 한다. 주류 지배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저항의 컨텐츠,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사회구성원 다수의 삶, 저항을 담은 컨텐츠 생산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당장 노동유연화의 맥락에서 주도면밀하게 펼쳐지는 비정규법 개악에서부터, 새만금, 평택, 제주 등 지역 차원의 신자유주의 정책, 교육, 의료, 물, 에너지, 방송, 법률, 지적재산권 등 부분 분야에서의 세계화 공세에 직접 대항하는 미디어컨텐츠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포괄하는 정세 사안이 한미FTA인데, 한미FTA는 군사적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정치적으로 한미동맹 문제와 맞물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계급투쟁의 성격을 띤다.

이 문제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제한되지 않는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한미FTA 협상은 남북시장화 추진의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이룬다. 이는곧 동북아 지역, 아시아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진보적 인터넷언론이 변혁의 세계화를 선언하고, 대안미디어로서 국제적인 자기역할을 한다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5. 한미FTA와 미디어 실천

뉴미디어는 사람에게 해롭다. 생태적이고 자연적이고 보편타당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인터넷 환경도 그리 좋지 않다. 거대 포탈의 독점 구조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편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본의 영토 안에서 반란을 꿈꾸는 주체간 네트워크와 소통을 이루고, 미디어(정치)전략 기획과 실행경로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자본(주의) 자체와 싸우는 (독립)미디어의 출현을 부른다.

인터넷 진보언론은 자본(주의) 자체와 싸우는 (독립)미디어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선 진보 담론과 의제를 발굴하고 여론화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또 민중의 삶과 저항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가급적 빠르게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 실천이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와 평등주의 등 진보적 가치와 괴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인터넷 검열 감시 기능을 폭로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운 저항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창궐을 경계하며 그 폐해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을 지켜내는 임무도 도맡아야 한다. 이러한 힘을 기초로 보수와 개혁 모두를 넘는 새로운 대안 사회, 다른 세상의 길을 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동시에 동북아시아,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소통 체계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지금 인터넷 진보언론과 미디어활동가들의 가장 중대한 역할은 무엇일까. 두말 할 것 없이 한미FTA를 저지하는 미디어 실천이다.

현 정세를 압축하면, 보수-개혁 전선의 붕괴, 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유실, 신자유주의 세계화(한미FTA)에 따른 모순 심화와 이에 대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저항이 예고되는 시기이다. 그동안 부문분야별 공대위와 범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는 등 한미FTA 저지를 위한 다양한 실천이 전개될 것이다. 이미 시청각미디어분야공대위가 구성되었고, 오늘 토론회 주관 단위들도 대체로 함께 뜻을 모은 바 있다. 여기에 기초해서 이제 한미FTA 저지를 위한 미디어 실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우선 집중보도가 필요하다. 한미FTA가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의 압축판인만큼 부문과 지역 어느 한 곳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따라서 부문과 지역에서 어떤 저항이, 어떤 실천이 가능하고, 또 진행되는지를 자세히 보도하는 일이 우선이다. 지금 주류 미디어 대부분은 한미FTA 자체를 보도하지 않는다. 작은 일, 사소한 일도 제대로 알려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한미FTA 협상의 폐해를 사실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집중보도에 힘써야 한다. 특히 지역 대책위가 구성되는 과정에 지역 미디어와 인터넷언론이 반드시 결합해서 미디어로서 함께 호흡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둘째, 한미FTA와 관련한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고 여론화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한미FTA는 단순한 협상 자체가 아니다. 더군다나 한칠레나 한일FTA와는 규모나 방식이나 영향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펙이나 WTO에 반대하는 실천이 반세계화 운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렀다면, 한미FTA는 스스로 보수의 길을 선택한 노무현정권에게 책임을 묻는 반정부 정치운동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노무현정부의 국정방향 제반의 반인민적 요소와 한미FTA 임기 내 강행 같은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쇄기를 박고, 관료들의 범죄에 가까운 데이터 조작과 거짓 선동을 폭로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셋째, 한미FTA 저지를 위한 인터넷언론의 각각의 실천을 네트워크하고 소통하기 위한 방안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미FTA가 하나의 취재소스 차원이 아니라, 저지해야 할 국민적 운동 과제라는 점에서 진보적 인터넷언론간 상시적인 정보 교류와 효율적인 공동취재와 역할분담 취재 등을 고민하고 생산한 컨텐츠의 제휴보도 등 독자와 대중에게 보다 많이 알려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겠다.

넷째, 지역에서 노동조합운동이 한미FTA 저지에 나서도록 자극을 주는 기획 등이 필요하다. 부문분야별 공대위가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지역 차원의 대책위나 네트워크는 이제 논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비정규직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총파업투쟁을 준비중인 민주노총과 각 지역본부, 지역 현장운동력과 단위노조가 한미FTA 저지 실천에 나설 수 있도록 자극하는 다양한 미디어 기획이 필요하다.

다섯째, 한미FTA 저지 독립미디어 활동과 인터넷언론의 활동이 큰 기획 속에 함께 준비, 구상, 실행될 수 있도록 논의의 틀을 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여섯째, 공동캠페인을 기획할 수도 있겠다. 범국본의 사업계획과 조응하는 가운데 지역 순회토론회 밀착 보도, '우리지역은 한미FTA를 반대하는 동네입니다' 캠페인, 5월 가정의달 맞이 지역 지자체와 지역 미디어가 함께하는 크고작은 한미FTA반대 주민축제, 지자체 선거 시기 한미FTA 반대 후보단 선언 조직, 인터넷언론 공동 주최의 한미FTA 저지 글쓰기대회, 6월 한미FTA 저지 지역 총파업 캠페인 등 여러 가지 수준의 캠페인과 기획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한미FTA 저지를 통해 부문과 지역에서 보다 많은, 보다 다양한 진보적 인터넷언론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고 또 네트워크 기획을 확대함으로써, 자본 위주의 뉴미디어 환경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 사회구성원간 보편과 상식, 이성과 순리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해나가야 할 것이다. 진보적 인터넷언론과 (독립)미디어 활동가, 미디어 정책 주체 등 미디어 분야의 합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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