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은 ‘무식’인가 ‘파렴치’인가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어느 모리배의 정신분열

스스로를 ‘참여정부’라 명명한 정치집단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군사작전을 수행하고 공화국에서 계엄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떠나며 ‘불법․폭력’ 행위에 대한 엄중대처를 주문했다. 그날 이후 대추리․도두리 일대는 고립되었고, KTX 승무원들은 전원 연행되었다. 이것이 ‘참여’ 3년이 남긴 처참한 성적표이다.

바야흐로 ‘정신분열’의 계절이다. 대한민국은 확실히 미쳐가고 있다. 정신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징후는 여러번 있었다. ‘황우석 사태’ 발발과 이후 논의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이성’의 위상과 역할이 굉장히 제한적일 뿐이라는 걸 적나하게 드러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삼성 X-파일’ 문제는 강고한 자본과 취약한 그 밖의 것들이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어디 그뿐이랴. 개발과 건설의 야만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 새만금을 살해했을 때 우리는 그저 WBC 4강에 열광했을 뿐이었다.

‘정신분열’의 시작이 참여정부 이전부터 잠복해있던 병의 기운이 폭발한 것인지, ‘참여정부’ 자체가 발병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늘의 상황이 참으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심각함은 지난 시간 동안 숙성되었다. 철천지 신자유주의자들이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순진함, 그리고 그 순진함으로 위장한 영악함이 집단화되고 세력화되는 과정이었다.

지금 평택의 들판은 울고 있다. 이 울음은 마지막을 예고하는 서러움과 어깨를 걸 사람들은 사라지고 깃발만 나부끼는 처연함이 뒤범벅된 울음이다. 그날의 폭력이 어떠했는가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서는 참혹함과 만나는 일이다. 정태춘의 말이었던가, 우리들의 한 시대가 흘러갔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여전히 80년 5월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더 이상 깃발 군중을 기다릴 수 없다. 정부는 인권을 옹호하고 농민의 평화적 생존을 지지하는 깃발 군중을 향해 군을 투입했다. 언론은 그들을 ‘극렬․폭력․반미주의 시위동업자들’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 기대는 없다. 언론은 차라리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비겁한 것이지만, 진실을 왜곡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게 훨씬 정직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공동대표인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는 국정홍보처에서 발행하는 국정브리핑에 "진보매체들의 균형잃은 '평택'편파보도 : 범대위 주장만 일방적 대변...시위 과격성은 철저 외면“이란 긴 제목의 글을 실었다. 우연히도 김동민의 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16일(화)에는 ‘문화연대/민주노총서울본부/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전국언론노동조합/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서울대책회의/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주최한 <평택의 평화적 생존투쟁을 테러로 선전하는 언론 규탄 기자회견>이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신학림 위원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조중동을 언론이 아닌 범죄집단으로 정확하게 규정했다.

어색한 상황이다. 하나의 운동, 동일한 사안에서 극과 극의 인식이 조우하고 있다. 김동민은 안티조선 운동을 제안하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낸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민언련은 84년 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말’지를 만들어 보도지침을 폭로했고, 현재까지도 언론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단체이다.

그런데 왜 김동민은 미디어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평택의 투쟁을 테러로 선전하는 언론에 분개하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동안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배신행위를 저지를 정도로 타락하게 되었을까? 서슴없이 동지라 불렀던 이들이 피 흘리며 밤 세우며 운동하는 시간에 그들을 ‘과격 시위대’라 낙인찍기 위한 정부 차원의 난동에 동참하는 관변의 길을 택하게 되었을까?

민언련 입장에서 혹시 억울하다 할지 모르겠다. 대표가 아닌 개인의 자격에서, 사전에 전혀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들도 뒤통수 맞은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글의 내용이 아니다. 또한 정황적인 경위나 기술적인 부분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기고 이전과 이후에 민언련과 김동민이 보이고 있는 태도이다.

김동민은 언론운동가로서 현 국면의 정세에서 정부에서 발행하는 매체에 글을 싣는 것이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가질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적절치 못했다’는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이 종료시키려 하고 있다. 만약, 김동민이 기고글의 발표될 시기 및 형식 등을 고려하며 글이 가져올 파장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면 ‘무식’의 문제이고, 알고도 썼다면 ‘파렴치’의 문제이다.

민언련 역시 김동민의 대표의 기고글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김동민을 조직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문제아 취급하거나, 철저한 개인으로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언련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식 사과문은 사건을 인지하는 민언련의 수준이 저급하다 못해 저열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민주언론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참여정부를 만들어왔다고 믿으며, 운명공동체적 행보를 보여왔다. 탄핵 국면에서, 파병 문제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서 그들은 노무현을 보호하고 노무현에게 읍소하고 노무현에게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분열적 태도가 결국, 함께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을 ‘과격 시위대’로 낙인찍고 정부사업에 저항하는 이들의 역겨움을 정부매체를 통해 고백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동민의 문제는 참여정부에 참여하며 타락해간 지식인들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도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부에 참여한 이후 보다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정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운동적으로 부패하고,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모든 것을 잃고 파산하는 이들이 안쓰럽고 가소롭다.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가 흐르고 있다. 오늘을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이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누군가를 휘청거리게 괴롭히는 상황에서 휘청거리는 사람들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모리배들이 있다. 현재 서있는 자리가 그녀/그들을 말한다. 김동민이 대추리에 가봤을까? 온정은 금물이다.

[정책보도비평] 진보매체들의 균형잃은 ‘평택’ 편파보도

범대위 주장만 일방적 대변…시위 과격성은 철저 외면

언론매체의 보도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 태도는 ‘균형감각의 유지’다. 균형을 유지하는 바탕 위에서만이 중립성과 객관성, 불편부당이라는 원칙이 관철될 수 있다. 또 이 원칙을 견지하는 철저함이 있어야 기계적 중립을 극복하고 주관적 견해를 피력할 수 있으며, 당파성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보수신문들을 비판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애시당초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뜻도 의지도 없는 가운데 객관적 근거마저 결여한 채 특정 정당, 특정 계층, 특정 집단, 특정 국가 등에 편향된 정략적 보도를 한다는 것이다. 보도의 원칙과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보수매체 진보매체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진보매체도 어떤 의도를 갖고 편파적인 보도를 한다면 비판에서 예외일 수 없다. ‘평택 대추리사태’ 보도에서 진보매체들의 균형을 잃은 편파보도를 읽을 수 있었다.

진보매체들이 정부의 부적절한 정책 집행에 대해 지적한 모든 점에 대해 동의한다. 언론매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방송이나 수구신문들이 외면하는 의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도 인정한다.

미군기지 확장의 불가피성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너무나 쉽게 동화된 점, 치열했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점, 폭력적 강제 대집행, 군 병력 동원, 보상금 문제로 매도한 점 등이 그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과오를 시정하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시위 과격성 일언반구 지적도 안해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진보매체들은 평택범대위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면서 시위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했다. 범대위의 공식적 입장의 이면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반미의 경직된 흐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진보매체들은 이를 외면한 채 수구신문들의 과장보도라고 치부해버렸다. 경찰의 과잉진압에는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시위의 과격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지적도 하지 않았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그 결과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등 진보매체들의 편파보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행정 대집행에 들어간 5월 4일 이후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4일자 1면 머릿기사 ‘“평택 대추리 오늘 병력 투입”’에 이어 3면 머릿기사 제목이 ‘“무기 들고오면 우리도… 들어야지”’였다. 군과 주민의 물리적 충돌을 앞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진압을 담당한 경찰보다 군 병력이 투입된다는 사실이 뉴스밸류가 높다는 게 편집국의 상식이겠지만, 군과 주민이 서로 무기를 들고 싸우게 된다는 식으로 과장하여 배치하는 것도 상식일까?

군사작전·전쟁 등 표현…선정보도의 전형인 과장·왜곡

5일자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은 ‘군경 1,4000여 명 군사작전 방불’이었다. 기사의 내용 중에는 “그러나 이날의 군경 합동작전으로 ‘대추리의 전쟁’이 마침표를 찍은 것 같지는 않다”는 표현도 있다. 군 병력이 직접 진압에 나선 것은 아닌데도 마치 군과 경찰이 합세하여 주민들과 ‘전쟁’을 치렀다는 식이다. 선정보도의 전형인 사실의 과장이고 왜곡이다.

같은 날 3면을 도배한 관련기사 ‘여명의 황새울 주민도 5월도 짓밟혔다’는 “이날 군·경의 작전은 유례없이 ‘폭력적’이었다”며 역시 군을 폭력을 행사한 공범으로 끌어들여 시위대의 피해만 부각시키는 한편으로, 시위대의 “지름 5cm, 길이 3~4m의 대나무봉”은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이미 갈라지고 부러져 ‘무용지물’이 됐다”고 두둔했다. 게다가 이날 충돌을 ‘5월 광주’와 대비시키는 과잉보도는 편파성의 극치였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도청 점령을 연상케 한다”는 임종인 의원의 무책임한 발언을 여과었이 수용한 것이다.

한겨레는 7일에도 1면 머릿기사와 3면의 도배기사들로 편파성을 이어갔다. 3면 하단의 ‘“농사 계속-곤봉 진압” 충돌 악순환 예고’나 9일자 4면 머릿기사 ‘대추리 강경조처에 평화시위 맞대응’, 10일자 5면 머릿기사 ‘대추리 조선례 할머니의 빼앗긴 들’ 역시 균형 감각을 잃은 편파성의 노출이었다. 한겨레에서는 군·경의 무자비한 진압과 서러운 주민들의 평화적 대응만 있을 뿐 한총련 학생들이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이는 시위대의 폭력은 찾아볼 수 없다.

한겨레 12일자 4면 머릿기사 ‘주말 수만 명 몰릴 대추리 긴장 고조’에 따르면, 범대위는 11일의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한총련 등과 함께 1만~2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13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과 14일 오전 11시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연다”고 밝혔다.

어떻게 5월 광주와 대추리사태를 비교할 수 있나

그러나 한겨레는 범대위가 “이번 집회는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군경과 맞서 싸웠던 뜻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5·18정신계승대회’로 치러진다”고 밝힌 점은 전하지 않았다. 대추리사태를 광주항쟁과 빗대고 연계시킨다는 발상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비교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감정적 진압과 극단적 저항을 자극하여 참혹한 불상사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겨레는 이 둘을 분리하여 이번 주말 집회가 순수하고 평화적인 집회가 되도록 자제시켜야 옳다. 무엇 때문에 불행한 사태를 유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위대의 전위역할을 하는 한총련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직된 자세로 구태의연한 투쟁방식을 고집함으로써 (학생)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역사의 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인터넷 한겨레를 찾은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건대 한겨레의 대추리 보도는 자신의 독자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는 한총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매체들은 민심을 정확히 읽어 구태의연한 보도를 지양하고 균형 감각을 회복하여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그래야 한겨레도 살고, 대추리 주민들도 살고, 나라도 살리고, 학생운동도 새롭게 부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동민 교수는
고려대, 한양대 대학원 졸업. 전북민언련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등 역임. 현재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한일장신대 교수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동민 한일 장신대 교수 (wanju9691@hanmail.net) | 등록일 : 2006.05.12

* 출처 : 국정브리핑
덧붙이는 말

완군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참세상에 '토마토 던지기'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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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

    이 글 강추!! 완군님 말씀 옳습니다. 김동민 교수는 대추리에 와보기나 한 것일까요. 다른 곳도 아니고 국정브리핑에 저런 글을 실을 수 있을까요? 노빠 지식인의 대타락이 씁쓸하군요.

  • 난알아

    저러는거 어제,오늘 일 아니잖여~

  • 브라질

    내가 보기엔 완군인가 당신이 아직도 외눈박이 눈을 가진자군..김동민의 말이 구구절절 맞는데, 그의 말에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없군...그저 감정에 호소하듯 대추리 상황을 묘사하고...한심하외다...

  • 파르티잔

    김동민 말이 뭐가 구구절절 맞다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군. 좌우 균형을 가지라고? 에라이~ 허접한 회색 기회주의자야! 김동민이 쓴 글은 온갖 보수언론과 보수적인 카페, 블로그에 펌질을 당하면서 이용되고 있다. 당신 같은 자들 때문에 한반도가 아직도 이렇게 허우적대고 있는 거야. 혹시 당신 운동한답시고 얼쩡거리고 있는 자인가? 당신이 속한 단체나 동료들도 참 안타깝네.

  • 참나...

    몰랐는데....
    역시 놈현정권등극이 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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