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 길 위에서 구체적인 삶의 얼굴들을 만난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6) - 5월 16일 밥알의 일기

내 두 다리는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제 6일 째. 연구실에서의 일주일은 참 빨리 지나갔었는데. 쉼 없이 걸었던 지난 6일은 무던히도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 속에서 나는 내 몸이 변하는 걸 느낀다. 처음엔 한 편의 그림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던 논밭의 풍경도 이제는 친근하다. 한껏 물을 머금고 있는 흙 속에서, 삐죽삐죽 치기를 자랑하는 연둣빛 못자리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음이 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쭉 자란 내게 바로 코앞에서 접하는 농촌의 풍경이란 매우 낯선 것이었다. 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들판을 바라볼 때면, 어느 지점에 눈을 둬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 산, 들, 나무, 꽃, 바람... 그 모든 것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뭔가 끊임없이 물어보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뭔가 답을 얻는 것에 급급했던 나의 질문은 쓸모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새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고요한 가운데 피어나는 싱그러움에 취해있으니까.

산, 나무, 꽃, 바람이 함께 하는 풍경은 어쩌면 도시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에도 자연이 어우러진 쉼터를 자처하는 공원들이 여럿 있으니까. 이제 도시는 고층 빌딩과 도로들로만 꽉 채워진 삭막한 이미지를 탈피하려 한다. 친환경 개발 어쩌고 하면서 자연 마저 이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도시들. 그러나 그렇게 떠들썩하게 자신을 광고한 청계천이 한밤중까지 켜져 있는 조명으로 이식해둔 갈대를 말라 죽게 하고, 바닥에는 시멘트가 발라져 있는 거대한 인공분수에 불과하다.

새만금을 살해하고서도 그 곳에 친환경 개발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사람들은, 그런 게 자연이고 친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어쩌면 그 곳에서는 인간조차 자신을 허구로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몇 가지 수치로 계산되고 떠들썩하게 선전되는 개발의 환상 속에 무작정 몸을 내맡긴 채 떠나가면서도 그것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고 믿는.

걸으면서 마주친 들판은 숨 쉬고 있다. 그 곳에서 어떤 숫자도, 법칙도, 특정한 답도 없다. 단지 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만물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만 있을 뿐이다. 도시에서 보면서 자란 풍경들은 단지 사람들의 일상을 더 그럴듯하게 완성하는 배경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자연이란 단어에서도 어떤 실감이나 생명력을 느끼지 못한 채 광고마다 보여주는 아파트 뒤로 펼쳐진 예쁜 그림이라 생각했다. 물론 나 자신도 그 그림 속에 어울리는 세련된 이미지에 맞춰야 한다. 높은 빌딩 사이로 펼쳐진 청량한 공원, 그 아름다운 그림속을 거니는 상냥하고 우아한 사람들. 모두가 그 그림 속에 포함되기 위한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들어둔 그 이미지들 어디에도, 죽어가는 농촌, 거대한 빌딩 아래의 빈민촌은 없다. 지워져 있다.

걸으면서 만난 농민 분들은 가장 직접적으로 개발 논리의 환상에 맞서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고 계셨다. 세상이 강요하는 속도와 무관하게 지금까지 스스로 땅,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켜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곳 마을들은 여전히 점점 더 강하게 들이닥치는 파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평균 연배가 70살인 농촌 마을에 지방 정치인들은 도시 개발의 환상을 들이민다.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을 파괴하면서 지겹게 반복되는 개발의 논리, 개발의 환상.


아직도 계속되는 개발 논리의 환상이 우리의 일상을, 구체적인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경쟁력, 성장, 유연화 등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는 지식에는 각종 통계 자료와 수치들이 있을 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구체적인 얼굴은 지워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길 위에서 새로운 삶의 권리와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현하는 삶들을 무수히 만난다.

생태 마을, 더불어살기생명농업운동본부. 그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한 번도 진심으로 논에 서보지 않은 자들이 계산해낸 무책임한 숫자들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산과 들, 농민의 삶의 얼굴들을 다시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지식의 윤리라는 것. 우리가 마주친 가능성들을 연결하고 증식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얼마나 구체적인 얼굴을 지닐 수 있을까. 나와 우리, 만물들의 삶의 결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그 살아 숨쉬는 싱그러운 표정들과 만나기 위해 내일도 나는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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