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 - 촛불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미 쇠고기 광고 실은 언론, 홍보기사 아닌 진실 알려야

미국육류수출협회의 ‘주요 일간지’ 쇠고기 광고와 1918년 ‘독감 특효약’ 광고

미국 쇠고기 광고, 독감 특효약 광고와 다른 게 무엇인가?

  미국육류수출협회가 2월 16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에 실은 미국산 쇠고기 판촉 광고.
설 연휴를 앞둔 2월 16일, 미국육류수출협회는 스스로 주요 일간지라고 표현한 ‘조선ㆍ중앙ㆍ동아’에 “우리교포들은 안심하고 맛있게 미국산 쇠고기를 즐겨먹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광고 모델은 뉴욕에 사는 정태강씨 가족이다. 그들은 광고에서 “미국 이민 20년째, 가족 3대가 쇠고기를 즐겨 먹습니다.”라고 말한다.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노골적인 상술이 드러난 이 광고를 보는 순간,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기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독감 특효약’ 광고가 떠올랐다.

11월 9일자 《매일신보》는 독감이 의주, 신의주 등 평안도 각 군에 전염되어 많은 사망자를 냈다고 전하고 있다. 도쿄 포병공장에서는 7천명이 결근하였고, 철도원에서도 7,500명이 결근하여 운송에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공주에서도 11,800명이 독감에 감염되었고, 목포의 경우는 총인구 4,531명 중 580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원산에서는 1만 명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피해 기사 밑에 남대문 정면에 위치한 구세약관(救世藥館)에서 “부작용이 무(無)한 완전한 영약(靈藥)”인 유행독감 치료약 ‘해열산’을 10전(小)~20전(大)에 판매한다는 허위ㆍ과장 광고가 실려 있다.

독감 특효약 광고는 11월 17일자 《매일신보》에도 실렸다. 경성 종로 모범매약상회는 “금년에 유행하는 독감에 신약이 발견되었다”는 광고를 했고, 경성 화천정 5번지 동화약방 본포와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벽란도의 지점주(支店主) 이영식도 “감기로 고통(苦痛)하는데 희소식이 왔다”며 “금년에 독감은 상한성약(傷寒聖藥)이 특효”라고 고백(告白)했다. 당시 고백이라는 말은 요즘처럼 “사랑을 고백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동네방네 널리 광고를 하다”는 뜻이었다.

받아쓰기에 열심인 언론, “참 잘했어요” 도장 받고 싶은가?


  1918년 11월 17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엉터리 ‘독감 특효약 광고.’
그런데 미국 내 전문가들과 소비자단체들조차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는 마당에 너무나 시대에 뒤처진 이러한 구닥다리 광고를 그대로 받아쓰며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이 있다.

설 연휴가 끝난 2월 22일, 미국육류수출협회 필립 셍 사장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일간지 기자를 대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미국육류수출협회가 광고를 게재한 주요 일간지 조선일보는 “내달 농업회담, 뼛조각 해법 기대”라는 제목으로 필립 셍 사장의 사진까지 곁들여 간담회 기사를 실었다.

이에 질세라 중앙일보도 “한우는 홍보해야 할 명품 미국 고급 시장 겨냥해야”라는 생뚱맞은 제목과 함께 역시 필립 셍 사장의 사진을 빼놓지 않는 편집의 센스를 발휘하여 간담회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필립 셍 사장의 얘기가 친절한 ‘조언’과 ‘덕담’으로 들렸으며, 미국육류수출협회가 ‘비영리단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육류수출협회는 미국 내 쇠고기ㆍ돼지고기 생산자, 사료용 곡물 생산자, 정육 가공업자, 수출업자들이 모여 더 많은 이익을 짜내기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 뿐만 아니라 타국의 정부에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하는 단체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필립 셍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육류수출협회는 수출시장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주체가 아니라, 수출시장을 이해하고, 그 시장 속에서 고객과 소비자들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기여하며 쇠고기 시장 자체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라고 역설(?)했다.

서류상으로는 미국육류수출협회가 ‘비영리단체’의 형식요건을 갖추었을 지 모르나, 이 단체는 결코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논리는 ‘12ㆍ12 쿠테타’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독재정권이 ‘정의사회 구현’을 구현을 표방했다고 하여 ‘깨끗한 민주정권’이라고 홍보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내서 소설 쓰지 말고, 진실 담은 기사를 써야

  광고와 기사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2007년 2월 2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필립 셍 미국육류수출협회 사장의 간담회 기사.


한편 미국육류수출협회가 선정한 ‘주요 일간지’축에 끼지 못해 광고가 실리지도 않은 《매일경제》는 “민감한 상황에서 한국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한국 측에 일방적인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필립 셍 사장의 발언을 사진과 함께 곧이곧대로 받아썼다.

《매일경제》는 지난 1월 24일에도 “세계 최고가 쇠고기 먹는다니…소비자들 분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필립 셍 미국육류수출협회 사장은 ‘미국산 수입이 재개될 경우 10~15%는 확실히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재개 여론을 부추기기 위해서 기획된 의혹이 있는 《매일경제》의 기사는 기본적인 사실 조차도 왜곡했다.

기사에서 인용한 ILO 통계는 외국의 쇠고기 가격은 평균가격으로 산출하고, 국내 쇠고기 가격은 모든 부위 중에서 제일 비싼 등심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 와규(和牛)의 등심 가격은 1kg에 108달러로 한우 등심 가력 56.44달러 보다 2배나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쯤되면 사실 기사라기보다 소설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의문이다.

반면 KBS 9시 뉴스는 미국육류협회 사장이 직접 나서 “미국이 한국에 쇠고기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는 “(쇠고기는) 한국 시장의 개방 정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쇠고기를 팔 수 없다면 다른 어떤 것도 팔 수 없다는 뜻이다.”필립 셍 사장의 인터뷰만 일방적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농민단체들이 제기한 “뼈는 빼고 수출하기로 약속해놓고 뒤늦게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공정하게 전달했다. 전성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처장은 KBS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약속만 지키면 이미 미국산 쇠고기는 우리 식탁에 와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먹었을 것이다.”며 마치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지 않은 것처럼 호도하는 미국을 비판했다.

또한 《한겨레신문》은 2월 23일자 지면에 “전농과 한우협회 등 농민단체 관계자들이 (미국육류수출협회) 간담회장 들머리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호텔 쪽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며 농민들의 요구를 담은 사진을 보도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세계 최고가 쇠고기 먹는다니…소비자들 분통”이라는 소설 같은 제목을 단 2007년 1월 24일자《매일경제》기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한미 간의 통상마찰 문제는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광우병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광우병 발생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산 쇠고기만을 수입하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광우병 안전성을 이유로 쇠고기 수입이 금지된 캐나다가 자국의 쇠고기에 대해서도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한국을 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미 FTA 협상 체결의 걸림돌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조각이나 갈비, 그리고 내장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할 경우, 캐나다와 같은 광우병 발생국가로부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쇠고기 수입은 한ㆍ캐나다 FTA 협정 체결의 걸림돌이 될 것이며 ,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국제기준’을 빌미로 WTO 제소 카드도 등장할 것이다.

1918년 ‘독감 특효약 광고’ 같은 기사를 쏟아내는 ‘주요 일간지’들과 ‘비주요 일간지’들이 계속 이러한 진실에 침묵한다면, 결국 값싼 미국산 쇠고기와 캐나다산 쇠고기가 국내 식탁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광우병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식 안전기준의 진실 하나를 ‘주요 일간지’들에게 슬쩍 귀뜸해주겠다. 2007년 2월 현재, 미농무부 동식물검역소가 광우병(BSE) 최소위험지역으로 분류한 유일한 국가가 바로 ‘캐나다’라는 사실이다. 캐나다는 1997년 사료규제 조치 이후에 태어난 소들에서도 계속 광우병이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도 한국, 중국, 러시아로부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금지된 국가다.

“주요 일간지가 주요 일간지다워야 주요 일간지라지”라는 비아냥을 당하기 싫다면, 미국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실을 밝혀내는 기획기사를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떤가?
덧붙이는 말

박상표 님은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국건수)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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