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IE 과학위원회는 미국과 캐나다 등을 2번째 등급인 ‘광우병(BSE) 위험 통제국’으로 판정했다. OIE 관례에 따라 전문가 그룹의 의견은 오는 25일 폐막 총회에서 최종 추인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에 마이크 요한스 미국 농무부 장관은 환영 성명을 발표하며, "이번 국제적인 검증을 우리 교역국들에게 미국 소와 쇠고기 제품을 전면적으로 개방하도록 촉구하는데 활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교역국들이 국제기준에 맞춰 빠른 시일 내에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3년 12월 이후 미국 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던 나라들에 대해 공세적인 수출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OIE 기준은 권고일 뿐, 구속력 있게 해석하는 것은 무리
한미FTA 타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쇠고기 수입재개, 위생조건 개정 문제와 관련해 “OIE 결정이 나오면 합리적인 절차와 기간을 거쳐 처리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의 이런 약속은 OIE 총회 ‘광우병(BSE) 위험 통제국’ 등급 결정에 따라 ‘약속 이행’이라는 짐을 하나 더 얹게 됐다.
현행 OIE 규정에 따르면 이 등급의 국가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일정 조건에 따라 광우병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원칙적으로 교역 과정에서 연령이나 부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사실상 광우병 발생국이고, 사료 정책의 문제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한미FTA와 연계해, 스스로 덫을 놓은 셈이다.
이제 미국은 빠른 시일 내에 한국과 지난해 1월에 체결한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개정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현행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만`이라고 한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새로운 수입 조건을 적용해 갈비 등 뼈 까지 모두 수입하도록 위생 조건을 바꿀 것을 압박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캐나다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캐나다 또한 캐나다산 쇠고기에 대해 공세적인 수입 재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OIE의 결정 사항이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고사항(recommendations)에 불과해 이후 ‘과학적 기준’과 수입재개 수순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캐나다 등의 국가가 ‘광우병 통제국’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수입위생 조건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OIE 기준이 안전기준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국제기준으로 허술하다는 지적은 계속 돼 왔다. 현재 OIE 기준이 30개월 미만 살코기라 해도 광우병이 확인된 가장 어린 나이는 영국에서 20개월 령이었고, 일본에서 21개월 령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전문가 그룹이 ‘광우병(BSE) 위험 통제국’으로 판정했다 해도 미국의 사료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돼 왔기 때문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수입위생조건을 정해야 되는 상황에서 OIE 총회 결과만 놓고, 당장 수입위생 조건 변경, 전면적인 수입 재개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가축전염병 예방법에 근거 해 수입국의 권리로,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 더욱 철저히 해야
8단계 수입 위험 분석(import risk an analysis)은 수입허용 가능성 검토-수출국에 가축위생 설문서 송부-답변서 검토-가축위생실 태 현지조사-수입허용여부 결정-수출국과 동물 또는 축산물 수입위생조건안 협의-수 입위생조건 제정.고시-수출작업장 승인 및 검역증명서 서식 협의 등의 단계로 8단계에 걸리는 시간은 수입국의 의지에 따라 상당히 유동일 수 있다.
박상표 국장은 “아르헨티나의 경우 1단계(수입허용 가능성 검토)만 2년 넘게 단계를 지연시키고, 절차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절차 지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하며, "그럼에도 미국과는 2~3개월 내 8단계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국내 검역과정에서 기본적인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국민 건강이나 안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가축위생 설문서를 송부하고 답변 받고 수입위생 조건 안을 협의하는 시간, 협의 내용을 국내에 입법화 하고 농림부 고시로 발표한 뒤, 입법 예고에 소요되는 기간을 포함하면, 사실상 형식적인 기간만도 2~3개 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한 예로, 한국 정부는 2005년 2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가능성 검토 시작했고 2006년 9월에야 협상이 끝났다. 박상표 국장은 “수입협상을 1년 6개월 동안 진행해 왔고, OIE 의무 규정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정부 방침"이었음을 상기하며, ”4대 선결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1년 6개월이 걸린 상황임을 고려할 때 2-3개월 안에 절차 밟겠다는 것은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답답함을 표했다.
아울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한미FTA 재협상, 추가협상의 농업 분야 의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나 미국정부가 절차를 빨리 진행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만약 "한미FTA 별개라면, 수입위험분석의 8단계를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밟고, 제대로 된 전문가 협의회를 하고, 현지조사도 제대로 해 국민들의 먹거리 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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