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한국 사람의 불행과 한미동맹

[기자의눈] 한미동맹이 문제이지 않는가

김선일, 윤장호, 배형규 씨의 죽음이 주는 충격이 큰 것은 비명에 목숨을 잃은 당사자만의 비극이 아니라 특정 한국 사람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나 재난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고 따라서 매우 정치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위험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이 문제라거나, 탈레반의 폭력성을 따지는 문제는 모두 부차적이다. 사태의 진실은 파병국의 사람이 표적이 되었다는 것이고, 전투병 비전투병 여부는 거들 일도 못되며, 한국 정부의 파병정책이 특정 한국 사람의 연속적인 죽음과 대규모 피랍이라는 불행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배형규 씨의 죽음 소식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선일 씨 피살 소식이 일려지자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테러를 규탄하면서 국제 사회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테러행위는 반 인권 행위이며 테러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테러로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된다, 파병은 이라크와 아랍국가에 적대행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며, 서희.제마부대가 하고 있듯이 이라크의 복구와 재건을 위한 것이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윤장호 씨 죽음 이후 국방부는 "이런 테러행위에 굴하지 않고 아프간의 평화정착과 안정을 위한 인도적 지원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 도장 안 찍어줬고, 이라크 파병 1개사단 요청했는데 1개여단(만) 보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형규 씨가 죽었고, 현재로서는 22명의 피랍자들의 안전귀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안보정책조정회의는 배형규 씨 죽음 이후 "정부는 납치단체가 우리 국민을 희생시킨데 대한 모든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두는 바"이고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와 같은 비인도적인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선일 씨 이후, 윤장호 씨 이후 발표한 입장과 차이가 없다. 제국주의 전쟁 참여라는 파병정치에 대한 반성은 한 문구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다른 특정 한국 사람의 죽음을 예고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 22명의 피랍자 무사귀환은 한국 정부가 해야 할 모든 일에 우선한다. 피랍자들의 안전과 귀환 여부는 전적으로 정부의 손에 달려있다. 협상을 하든 압력을 가하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22명의 피랍자를 안전하게 데려와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입장 발표는 사태 악화로 연결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 연말까지 철군하기로 했으니 문제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대응이 이미 배형규 씨 죽음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납치단체한테 떠넘기고 있다.

23명의 피랍자들은 무고한 시민이기도 하지만 다국적 동맹군에 참가한 침략국의 특정 한국 사람이기도 하다. 이것이 배형규 씨 죽음을 부른 사태의 본질이다. 정부가 이를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국익의 문제도 자존심의 문제도 테러에 굴복하는 문제도 아니다. 남은 22명의 피랍자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즉각철군' 입장 표명으로 아프간 민중의 마음을 돌리는 것, 그것이 무사 귀환을 이끌어내는 유력한 방안이다. 아울러 아프간 뿐만 아니라 아리크 레바논 파병정책 중단을 선언하고 실행하는 것이 특정 한국 사람의 추가적인 피해를 예방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 이건 희망사항일 뿐인듯 하고, 문제는 남는다. 노무현 정부는 왜 반복되는 불행 앞에서도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의 논리를 보면 동의.다산부대는 전투부대가 아니라고 하고, 현지 봉사활동 위주의 활동을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 파병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는 2003년 대통령 당선 이후 서희.제마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난 6월 레바논 동명부대 파견도 그랬다. 더욱이 동명부대 부대원 350명 중에는 자기 방어력을 갖는 특전사가 2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은 아프간, 이라크, 레바논 등 미국의 대테러전쟁 3대 전선에 모두 파병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외교정책 및 대테러전쟁의 최대 지원국으로 꼽힌다. 특정 한국 사람의 불행이 계속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근본적 원인 진단과 해결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근인으로 '한미동맹'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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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이 성립된 건 1953년 10월, 한미 양국이 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면서 공식 동맹관계를 맺었다. 상호방위조약은 1954년 11월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침략 위험'을 명기함으로써 사실상 소련, 중국, 북한을 대상으로 삼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상대 당사자가 종료를 원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되는 것으로 하였다. 이후 반세기 동안 지배계급에 있어 한미동맹은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북을 적으로 놓은 반세기 한미동맹의 맥락은 군사적 성격을 뚜렷이 하였다. 그러나 2001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에 대한 남의 여론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북을 적으로 보기보다는 협력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군사적 맥락에서의 한미동맹은 이 시기를 경과하며 새로운 전환이 불가피한 조건을 맞았다. 그러나 그 해 9.11 사태의 발발과 부시정부의 외교전략 수정은 한미관계에도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의 대외 정책의 변화를 공식화한 문서는 핵태세보고서(NPR : Nuclear Posture Review. 2002.1)이다. 상대방이 핵을 사용해 공격하지 않는 한 핵을 동원해 보복하지 않고, 비핵 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지 않으며, 일반 전쟁무기로서 핵의 사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소극적 안전보장'(NSA)으로서의 미국의 핵무기 운용 기본전략 개념을 바꾸어버렸다. 이른바 지하핵관통탄(RNEP : 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 사용 허용 등을 담고 있는 NPR은 미국이 당시까지 지켜왔던 '핵 선제 공격 금지'를 사실상 폐기하고 '핵 전쟁에서 승리'를 목표로 삼았다. 부시가 지목한 '악의 축'은 북,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중국, 러시아 등 7개국으로 이들 나라를 핵무기 선제공격 대상 국가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02년 9월에 보고된 신국가안보전략(New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U.S.A)은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해온 세계전략(engagement and enlargement)을 힘의 우위에 근거한 미국 우선주의, 일방주의로 수정한 것으로,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전쟁억지전략을 선제공격전략으로 바꾸고 대상 국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자 9.11 사태 이후 형성된 국제적 공안정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부추겼고, 2001년 11월 아프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어이지는 과정에서 미국 중심의 다국적 동맹군이 형성돼 국제사회는 냉전 이후 또다른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남북간 교류가 확대되고 냉전 분위기가 누그러뜨려지는 과정에서 부시 정부의 신국가안보전략의 적용과 대북 적대정책을 포함한 일방주의 외교정책은 한미동맹의 전환을 강제했다. 이 즈음 노무현 정부가 등장했고, 노무현정부는 민주화운동과 효순,미선 투쟁 등 반미운동의 성과 위에서 집권에 성공했다. 부시정부와 노무현정부의 불협화음이 예고되었고 실제로 동북아중심국가와 동북아균형자론을 내세우며 햇볕정책을 계승한 평화번영정책은 미국의 신국가안보전략 기조와 곳곳에서 충돌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정부에 대한 부시정부의 이라크 파병 요청은 대테러전쟁에 대한 한미동맹의 새로운 시험대였다. 2003년 4월 서희.제마부대 파병 결정은 노무현정부가 기존의 친미적 관계를 지속한다는 정치적 결심으로 이해되었고,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형무소 발언은 이를 굳히는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노무현정부와 여당의 파병 결정은 지지자들로 하여금 심각한 이율배반을 경험케 했다. 파병과 관련한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는 이념적 반미주의 조차 실용적 정치주의의 뒷전으로 밀쳐놓는 효과를 낳았고, 노무현정부는 군사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차원의 능동적 자세로 한미동맹을 제고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동북아 지역 패권전략은 중국위협론에 기초한 일본과의 동맹 강화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으로 구체화되었다. 부시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고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 관계를 강화해왔다. 부시정부는 2003년 11월에 이어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 Global Posture Review)을 2004년 8월 확정, 공표하고 향후 10년에 걸쳐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약 6만에서 7만 규모의 해외주둔 미군을 본토로 철수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용산기지 이전과 제2사단 재배치 등 주한미군 재편계획은 GPR의 일환으로, 노무현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통해 신속대응을 가능케 하는 주한미군 기동화를 받아들였다. 2006년 1월 이루어진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동북아지역에서의 주한미군의 분쟁 개입의 길을 합법적으로 열어주었다. 가령 중국과 대만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 내 미군기지를 통한 주한미군 투입이 가능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협상다운 협상을 했다고 자평했지만,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단순한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아니라 선제공격독트린에 기반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을 수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노무현정부는 집권 이후 동북아균형자론을 구체화했다.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NSC의 공식설명자료에 따르면 냉전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서 평화구조가 정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를 안정과 평화의 질서로 만들어가는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고 그 역할이 바로 동북아균형자론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노무현정부는 "한미 간에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동북아 평화번영을 이루겠다는 것이므로 한미동맹을 기초로 추진될 것"이라며 한미동맹을 강조한다. 이처럼 한미동맹 강화 맥락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가 한미동맹에 기초해서 파병정책을 펼친 것은 미국의 압력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나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동북아균형론을 발전시켜나간다는 자발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정부에 있어 한미동맹의 문제는 군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역할의 맥락에서 정치적, 경제적 측면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한편으로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MD 개입 등 군사적인 합의와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자본의 지구화에 따른 동북아 시장 재편에 대한 양국간 공동 관심이 동맹적 차원에서 다뤄지게 되었다. 한미FTA 협상 개시와 타결은 이를 결정적으로 반증한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추진한 신국가안보전략은 무역전략을 포괄했다. 로버트 졸릭 무역대표부 전대표는 무역협상 권한을 의회로부터 이양받는 '무역증진권한'을 통과시키고, 무역정책을 반테러전쟁의 일환으로 규정해 군사안보전략을 무역과 연결시켰다. 졸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경제적 측면과 군사적 측면의 동맹을 강화해 궁극적으로 자유국가연합(coalition of liberalizers)의 확대를 통한 미국의 패권을 꾀하였다. 2005년 9월 한미정상간 전화통화 이후 2006년 1월 자동차 및 의약품 수입장벽, 미국산 소고기 수입금지, 스크린쿼터 등 4개 부문 등 선결조건이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4대선결조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확약은 한미FTA 협상에 기름을 부었고, 양국은 협상 1년 만에 타결을 이끌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무현정부가 주창해온 동북아균형자론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내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평화 질서를 구축하는데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FTA 타결 과정에서 소멸되었고, 미국의 신국가안보전략과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자유국가연합 구상에 종속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FTA 타결은 노무현정부가 강조하는 한미동맹의 구체적인 실체인 것이고, 노무현정부의 한미동맹이 군사적, 경제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이른바 한국 정부의 자주성과 주체성은 사실상 해체되거나 변질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말하자면 노무현정부가 견지해온 '개혁'의 계급성이 군사적, 경제적 한미동맹 실현 과정에서 노골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이야기고, 파병정책은 그 정점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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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의 파병정책이 위험한 이유는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전략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가 파병을 통해 어떤 효과,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아프간, 이라크, 레바논 등 미국의 중동 지역 개입을 통한 재편 전략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며, 오늘날 미국은 세계적인 반제 반전의 저항에 부딪혀 일방주의 패권전략의 성패 여부를 가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시 물어본다. 김선일 씨의 죽음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 윤장호 씨 죽음 이후 국방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 배형규 씨 죽음 이후 안보정책조정회의의 발표문 기조가 똑같은 이유가 무엇인가. 특정 한국 사람이 계속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부가 단 한 차례도 파병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협상으로 이번 사태를 잘 해결할 수도 있다. 그리고 거듭 강조하지만 협상이든 압력이든 어떻게 하든 22명의 피랍자들을 안전하게 귀환시켜야 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연출하는 이 지배구조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정부가 파병 참회와 철군의 정치적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후일 특정 한국 사람들이 겪게 될 똑같은 '정치적 비극'을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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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 아프간 , 한미동맹 , 피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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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달

    논리정연하면서 깔끔한 글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계속 이런 글들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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