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진보신당 합류 여부에 대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포함한 진보정당의 지향을 논의하기보다는 총선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며 “지금부터 서로 간에 대화를 통해 검토하겠다”고만 답했다.
▲ 탈당을 선언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참세상 자료사진 |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결과적으로 잘못됐다”
단병호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직접 작성한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나서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단 의원은 “다수의 힘이 왜곡된 패권의 문제, 사회적 의제 확장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문제, 당의 자기 변화와 혁신을 이루지 못했던 문제는 앞서 탈당한 사람들이 밝힌 바 있어 언급하지 않겠다”면서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 당을 떠난 평등파의 주장에 공감의 뜻을 표했다.
단 의원은 “당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첫째다. 민주노동당 내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지만 민주노총 내에 민주노동당 당원은 없었다”며 “현재까지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문제인식에 충실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단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며 급성장했지만 토대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의 성장은 사상누각이었다”면서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의 토대를 굳건하게 다져야 할 때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신기루를 쫓아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자성했다.
그는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은 없었고, 노동자 대중은 행사와 선거 때, 재정 조달에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면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당원을 당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재조직화의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와 민주노동당의 노동부문 할당제는 결과적으로 당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하며 “배타적지지 방침, 노동할당제 모두 제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있을 때 결정됐다. 당시 저는 배타적 지지 방침 등이 초기에는 노동자 지지를 조직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상당히 많은 폐단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단 의원은 “우리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 발전시킬 기본 동력은 사실상 노동조합에서 나온다고 보는데, 민주노총에서 집단 탈당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누구보다도 안타깝고 힘들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될 수 없는 문제를 그대로 덮어두고 현재처럼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이제는 좀 다른 판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노총 분열 상황을 사실상 인정했다.
“단일 진보정당, 오히려 무능력할 수 있어”
단 의원은 “둘, 셋으로 나뉘는 것보다 하나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영세 비대위 구성을 지켜보며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했다”며 “당명을 바꾸고, 강령을 개정하고, 시민단체 명망가 몇 명이 더 당에 합류한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천영세 비대위와 민주노동당을 비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진보정당이 단일한 대응으로 가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들이 누적되어왔다. 이런 상태로 단일화를 지속하는 것이 원론적으로는 효과적인 것 같아도 오히려 더 무능력한 대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서민의 행복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인 도의가 아니다”며 지역구(포항 남구)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또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질적 발전을 저해하는 배타적 지지, 노동부문 할당제가 위원장 재직 당시 결정된 것에 책임을 느낀다”며 민주노총 지도위원에서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결단이 정치활동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더 열심히 뛰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이끄는 진보신당에 대해서는 “진보신당을 추진하는 측에서 제게 공식적으로 합류 여부를 상의해오지 않았고, 저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정리할 문제들이 많아 먼저 대화를 요청하지도 않았다”면서 “지금부터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정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탈당 시기에 대해서는 “노동자나 진보정치인이 국회에 진출했을 때 지난 4년간의 경험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3월 초중순경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약속 못 지켜 송구” 눈물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단 의원은 “대선 이후 2개월 동안 제 개인적으로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고 운을 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민주노총 위원장에서 국회의원으로 들어왔다. 단순히 당의 현상으로만 이해하고 판단하기엔 개인적으로도 운동적으로도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였다”면서 그동안 거취 표명에 함구해왔던 이유를 밝혔다.
단 의원은 “오늘 아침 6시에 집을 나서면서 현관 앞에 민주노동당 ’당원의 집’이라는 스티커를 제 손으로 떼고 나왔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당에 들어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문제의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제기했더라면 당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큰 문제 아니라면 좀 쉽게쉽게 가자고 했던 제 자신의 안일함이 큰 잘못이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들어와서 원래 대중운동과 제도 내 활동들을 매개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저도 국회 내에서 입법 활동이나 정책 활동 중심으로 해왔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국회에 들어간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단 의원은 지난 1990년부터 4년간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 1~4대 위원장직을 역임했고 이후 1999년부터 3년간 민주노총 3~4대 위원장을 거쳐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