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끝장 토론'성 기자회견, 국회 '쇠고기 청문회' 그리고 한승수 총리의 대국민 담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논란을 진화하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정부가 해명을 내놓을 때 마다 안전성 논란 등은 오히려 확산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99.9%" 안전성을 장담한다. 심지어 심재철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등심스테이크를 해먹어도 '절대' 안전하다"고까지 했다. 그리고는 인터넷에 광우병과 관련돼 떠도는 얘기들을 '괴담'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며, '불순한' 세력이 '순진한' 청소년들과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주장은 일견 수긍 가는 측면이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지나치게 광우병 공포가 부풀려진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7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 지적했듯 미국산 쇠고기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무조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는 주장도 과학적 진실은 아니다.
57억 분의 1 '생쥐머리' 등장에 새우깡 생산 중단
지난 3월 '국민 과자' 노래방용 새우깡 생산이 전면 중단되었다. 새우깡은 지난 1971년 출시됐고, 지금까지 생산된 봉지를 일렬로 연결하면 지구 50바퀴 이상을 돌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국민과자'라는 별칭이 붙었듯 새우깡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서민들이라면 소주 한잔 생각 간절한데 주머니가 털털할 때, 새우깡 달랑 하나 놓고 '깡소주'를 마셔본 경험이 대개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 한방에 '갔다'. 지난 3월 17일 노래방용 새우깡 봉지에서 생쥐머리가 나온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바로 그 다음 날 노래방 새우깡의 생산은 전면 중단됐다.
'생쥐머리 새우깡'과 인간광우병, 어떤 게 더 위험할까. 공개되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새우깡에서 생쥐머리가 나와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팔린 새우깡은 57억 봉지에 달한다. 확률로만 따진다면 57억 분의 1이다. 게다가 생쥐머리가 나왔다고 하지만, 생쥐머리가 든 새우깡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보고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 농심은 새우깡의 생산을 중단했다. 물론 농심의 생산중단은 회사 이미지를 생각한 고육지책이었을 터이다.
한국정부는 어떤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인간광우병에 걸렸다고 확인된 사람은 207명. 이들은 전부 사망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 발생할 확률이 '골프치다 벼락 맞을 확률'이라고 거듭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할 뿐이다.
한 가지만 묻자. '생쥐머리 새우깡'을 먹고 죽을 확률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고 죽을 확률보다 높아서 생산중단 되었을까. 혹은 과자에서 생쥐머리가 나오면 해당 상품은 전면 생산 중단해야한다는 '과학적' 기준이라도 있는가.
광우병, 너무도 불확실하고 너무도 치명적인
현대자본주의 사회에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위험이 존재한다. 특히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현대사회 곳곳에는 불확실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위험이 언제나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또 대개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다.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 사고가 일으킬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비행기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단번에 대량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 '죽음의 스펙타클' 때문에 충격적이지만, 대개 사고 시 얼마만큼의 사람이 어떻게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광우병은 어떤가. 광우병을 둘러싸고 온라인상에서 '괴담'이 떠도는 건 단지 네티즌들이 무식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도 얘기하듯 광우병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 전파경로와 치료법 등 어느 한 가지도 논쟁거리가 아닌 게 없다. 결과만이 확실하다. 다 죽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갈 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그 불확실한 위험이 언제 도래할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인간광우병의 경우 대체로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최소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멀쩡하게 살다가, 10년 후에 그 교통사고를 이유로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뇌진탕으로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지 않은가. 광우병 그리고 인간광우병에 '순진한' 시민들이 공포를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데다, 그 위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데 있다.
때문에 정부라면 도래하지 않았고, 확증이 없더라도 국민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는 이같은 위험을 최선을 다해 예방할 의무가 있다. 하물며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도 피해를 감수하고 생산을 중단한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나서 이 위험의 차단막을 완전히 걷어 놓았다. 그것도 별 대수롭지 않게 했고, 여전히 "국제적이고 과학적 기준"이라고만 한다. 국민들의 분노는 이 지점에서 들끓는다. 정부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한미동맹과 한미FTA라는 정치적.경제적 논리로 백성들의 생활세계인 밥상을 엎어버렸다는 데 대한 분노다.
FTA 도장 찍은 노무현도, 쇠고기협상 도장 찍은 이명박도 '다 네 탓이오'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 등 한국 측 협상대표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누구도 작금의 사태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른바 '설거지론'을 들이대며, 자신들은 참여정부가 이미 다 해놓은 것을 마무리했을 뿐이라고 강변하다.
물론 이에 대해서 참여정부 인사들도 하나같이 발뺌한다. 아니란다. 자신들은 그런 적 없단다. 봉화마을에서 퇴임 후 한가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이) 나 노무현이가 저지른 일을 설거지 했다고 하신 모양인데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며 "노무현이가 합의를 다 해놓고 도장만 안 찍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노무현이는 도장을 안 찍었고 이 대통령은 찍었다"고 말했다고 인터넷매체 '플러스코리아'가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그 자체로 사실이다. 분명 도장은 '노무현이'가 찍지 않았다. 또 현재까지 나온 참여정부 인사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참여정부 시절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논의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이 그리도 끈질기고 집요하게 한국에 쇠고기 개방을 요구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했다는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쇠고기 시장 개방은 한미FTA 체결의 선결요구조건으로 미국 측에서 시종일관 요구했던 사안이다. 한미FTA에 목을 매면 맬수록 미국 측의 쇠고기 시장 개방 요구는 거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목을 맸다. 과거의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 정치권이 한미FTA의 조속한 타결을 목놓아 외쳤고, 지금도 외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해 4월 한미FTA 타결 직후 강원도 한 축산농가를 찾아 "미국의 경우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위험요인이 배제되면 우리도 안 받을 수 없다"며 "한미FTA가 아니라도 미국소는 들어온다"고 미 쇠고기 수입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면서 그는 "FTA 체결을 안한다고 미국 쇠고기를 수입 안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FTA 체결을 안한다고 미국 쇠고기를 수입 안 할 수 있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정반대에 있었다. 즉 '쇠고기를 수입 안하면 FTA를 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과 이에 휘둘린 한국정부의 조급증이 문제였다. 상대에게 '패'를 다 내보인 상황에서 게임의 결과는 뻔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웬디 커틀러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는 올해 초 직접 방한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쇠고기 시장 개방이 (미 의회의 한미FTA) 승인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키포인트"라고 직접적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FTA.광우병의 파괴적 결과, 아무도 책임질 수 없어
결국 미국의 요구를 온전히 반영한 채 쇠고기 수입 협상은 지난 달 18일 타결됐다. 정운천 농림부 장관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는 합의문에 서명을 해놓고, 이제 와서 "설령 통상마찰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정작 수정해야 하는 합의문에 대해선 "재협상은 없다"고 했다.
아마도 한미FTA 협상문에 도장을 찍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쇠고기 협상문에 도장을 찍은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책임질 일은 없을 것 같다. 훗날 만에 하나 FTA와 광우병의 파괴적 결과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때 가서 그들이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안타깝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7일 청문회에서 '광우병이 재발생하면 수입은 중단하겠지만, 재협상은 할 수 없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운천 장관에게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들면 뭐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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