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을 자르며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 .”

조립3팀 노동자 아내의 편지

쌍용차 가족대책위 소속 이자영씨가 7일 정리해고 계획 신고를 하루 앞두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열린 전 조합원 집회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음은 편지 전문입니다. - 편집자 주

  쌍용차 한 조합원의 부인이 편지를 읽고 있다. /정문교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조립3팀에 근무하는 이창근의 아내 이자영입니다.

우리 집 4살짜리 아들 주강이는 자동차를 무지 많이 좋아합니다. 일어나면서 자동차를 만지고, 잠들기 직전까지 자동차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키 꽂고, 파킹 브레이크 내리고, 시동 걸면 부릉부릉, 오른쪽 깜빡이가 깜빡깜빡, 비상등도 깜빡깜빡.... 후진할 때는 빠라빠라빠바바바밤~” 주차할 때 파킹 브레이크를 올리면서 ‘직’ 소리 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웬만한 국내산 자동차 회사와 모델명은 꿰고 있구요. 역시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좋아하는 차는 쌍용자동차입니다.

이제 우리 주강이도 쌍용차가 어려워진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정관리가 들어간 뒤 월급이 형편없이 밀려 “이제 엄마, 아빠 정말 돈 없어. 주강아~”하고 예전 같지 않은 소리도 곧잘 듣게 되었죠.

남편은 입사한 지 8년차 됩니다. 첫 여름 휴가 때 쌍용차 여름 휴양지에 갔는데, 주차장을 가득 메운 쌍용차들을 보며 놀랍고 어색하기조차 했습니다. 쌍용차들이 죄다 크고 비싼데, 입사하자마자 분수도 모르고 무쏘를 샀던 저희들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젠 생산되지도 않은 무쏘를 몰고 다니는 저지만, 아직도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부담스럽고 어색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은 결혼 전에 진 빚이 많아 아직까지 만원 한 장 저축 못하고 빠듯하게 살았지만, 그렇다고 부당하게 돈 벌 생각도, 그렇게 한 적 도 없습니다. 정당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순식간에 돌변해 버렸습니다. 쌍용차가 법정관리 됐단 소리를 남편이 아닌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 땐 정말이지 하루 종일 멍하고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인 상하이차는 밀린 12월 월급을, 선심 쓰듯이 얼른 입금시켜놓고는 튀었습니다. 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주인이 사정 설명 하나 없이 도망칠 수 있는 이 나라 법이 정말 우스웠습니다.

그 다음 일입니다. 법정관리인이 마련한 회생안이 발표되는 것도 언론을 통해 들었습니다. 남편 얘길 들어보니, 그 놈의 회생안도 노동조합에 공문 한 장 띡 날려놓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 회사 살리겠다고 내놓은 그 ‘회/생/안’이라는 것이 저희들에겐 ‘사형통보’였습니다. 세 명당 한 명이 정리해고 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우리 생산직에서는 전체의 46%인 두 명 당 한 명이 잘려나가도록 짜놓았대요. 연구직은 전체의 5%, 사무직은 20%...... 제일 월급 많이 받는 임원들이며 이사들은 그냥 두고, 제일 값싼 생산직을 자른답니다. 높으신 양반들 건드리긴 어려우니, 만만한 생산직들 왕창 잘라 액수 맞추겠다는 건가요? 도대체 누구를 살리기 위한 회생안이란 말입니까!

회생안이 발표된 뒤 2주쯤 지났나요, 회사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통을 감수하자고 하더군요. 허... 단지 그 말 뿐이었습니다. 정말 이 말뿐인가 믿기 어려워 꼼꼼히 읽어주었지만, 자기네들 잘못했고 고통 안겨 미안하단 소린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정말 단 한마디도.... “이런 지랄~같은 새끼들!!!” 소리가 절로 나와 버렸습니다.

저, 딱히 성격 좋다, 마음씨 착하다 소리 못 듣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냥 남 피해 안 주고, 무쏘 산 것처럼 분수에 넘치는 일 따위 범하지 말고 살자 정도로 욕심 안 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 가만히 있었나요? 묵묵히 살고 있더니만 이렇게 개무시하고 마구 짓밟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자본가들은 우리 노동자와 가족들을 소리도 못 내고 꿈틀거리기만 하는 지렁이쯤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저요, 아이 낳고 키우면서 정말 조심조심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자식만 예쁜 줄 알았는데, 남 자식도 끔찍하게 귀하다는 것도 알았구요, 우리 애가 친구랑 싸우면 우리 애뿐 아니라 상대 아이의 기분도 읽고 달래주느라 가슴이 탑니다. 걸레질 하다가도 무심결에 작은 벌레들 눌러 죽일까봐 눈 크게 뜨고 걸레질 하구요, 뒤집어져서 버둥대는 벌레가 눈에 띄면 아이랑 같이 일으켜 세워 놓고 갑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모든 생명에게 관심 주려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함께 고려하면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인데, 이 세상은 어째 우리 서민들 대하기를 벌레 취급밖에 안 해준단 말입니까!

우리 남편이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3년 가을에,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간 고공 크레인에서 투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우리 남편, 너무나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난다며 괴로워하더니 월차 쓰고 부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을 그 분의 죽음 앞에 몇 날 며칠을 힘겨워했습니다. 바로 그 뒤에 6개월간 담배를 끊더군요. 우리 주강이 탄생 기념으로 담배 끊겠다고 한 것도 며칠 만에 뒤집었던 남편인데 말입니다.


작년 봄이었습니다. 남편 친구가 창원에 있는 두산 중공업 현장에서 지게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혼을 앞두어 새색시도 있었는데, 그런 변을 당하고 만 겁니다. 우리 남편, 소식 들은 그 날로 창원으로 달려 내려가 4박5일간 장례투쟁 하고 왔습니다.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간일 마치고 아침에 돌아오면, 겨우 3시간 눈 부치고는 벌건 대낮에 일어나 집회에 나갔습니다. 쌍용차 집회가 아니라 평택, 안성, 수원, 서울 등 한나절에 다녀올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투쟁에 한 몸 보태러 간 겁니다. 작년 가을엔 급기야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외박을 해야겠다는 남편의 문자 메시지에는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있다면서 엄청 서럽게 울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하... 우리 남편 이런 사람입니다. 덕분에 제가 그냥 막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정리해고 규모가 발표되기 전까진, 여기 계신 조합원 여러분들 대부분, ‘나는 아니겠지...’하는 생각에 이 싸움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으셨던 걸로 압니다. 지금도 혹여 정리해고 당할 두 명 중 한 명이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 계시진 않은지요.

2주 전 이 자리에 금속노조 동지들이 많이 연대투쟁 하러 와주셨는데요, 그 날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님의 말씀이 귀에 꽂혔습니다. 쌍용차 조합원 동지들의 눈빛을 보니, 이 싸움 지겠다고. 눈빛이 글렀다고 하셨습니다. 죽을 각오로 덤빌 각오 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지고 말 거라고 하셨습니다. 구호 외칠 때마다 끝에 ‘결사투쟁’이라는 말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기 계신 여러분, 온 힘을 다해 온 역량을 다해 싸움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계십니까? 지금은 둘 중 한 명인 나만 살아남으면 다행인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정리해고 자체를 진짜로 박살내서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자는 겁니다. 어제 밤 실직한 가장의 가족이 어떻게 파국으로 몰려가는지 보여주는 티브이 프로가 있었는데, 차마 못 봤습니다. 우린 그런 상황 만들어내면 결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아서 예전처럼 일하고 월급 받고 가정을 지켜내야 합니다.

이 싸움의 끝자락에서 우린 전처럼 공장에 출근하지만, 아마도 그 속은 달라져 있을 겁니다. 내가 싸움이 한창인 그 때 자리를 지키면서 동지 손 붙잡고 싸웠고, 그래서 정리해고 막아냈고, 그래서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우리 모두를 지켜냈다는 엄청난 자부심과 연대의식이 남을 겁니다. 연대의식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해줄 고귀한 가치일 겁니다. 지금 당장 내 입에 풀칠할 생각만으론 지금의 나도 지킬 수 없을뿐더러,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 쌍용차 조합원 동지들이 우리 모두의 가족을 지켜줄 거라는 걸요.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그을린 동지들의 얼굴이 더 그을리고, 몸 여기저기 상처는 났어도, 다같이 부둥켜안고 희망을 지켜낸 것을 축하할 그 날이 올 것을요.

이 글을 쓰기까지도 남편에게 있는대로 심통을 부리며 괴롭혔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두서없는 글 들어주셔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덧붙이는 말

이자영 씨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가족대책위 회원입니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