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
선거로 세상이 바뀔 것 같으면 권력이 진즉에 선거 제도를 없앴을 것이다. 따라서 선거 제도가 유지되는 까닭은 선거로 세상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권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명숙 후보로 바뀌는 것이 세상 바뀌는 일일까?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노동자 민중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선거에 목을 맨다. 경기도지사 유시민 후보가 4당의 지지를 얻어 단일 후보로 나서면서 진보의 기치를 내걸었다. 유시민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다 한들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이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노동의 가치는 추락하기만 했다.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표가 기차표인 것처럼 생각한다. 평상시에 지역 정치 활동을 하며 지역 정치화에 힘을 쏟은 것도 아니고, 선거철만 되면 뜬금없이 나타나 무슨 철새들도 아니고 거리를 플랫카드로 도배질하며 서울시장으로 가는 기차표를 달라니 무슨 심산인지 모르겠다.
시민들의 표는 기차표나 극장표가 아니다
대중들은 선거 냉소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화 과정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선거무관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6월 2일 선거가 끝나면 대중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니 애초부터 일상이 전부였다. 애시 당초부터 지역의 정치적인 이슈를 정치인들이 제기하며 일상 안에 정치적인 것을 삽입시키는 과정이 전무하다. 시의회나 시 공무원들의 자기들끼리의 회의가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동네마다 반상회는 있지만 정치토론회 한 번 정치인들이 평상시에 자기 지역에서 조직해본 적이 있는가. 시민들의 표는 기차표도 극장표도 아니다. 거기에는 노동자 민중들의 권력이 녹아들어가 있다. 선거는 그러한 인민의 권력을 빌려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은 그 막중한 권력을 대출해 가는데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마구잡이로 만든 선거공약이 그 대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노동의 땀과 눈물이 잠겨있는 표 한 장 값 외에 막대한 이자를 물어야 할 것이지만, 정치인들은 그 대가를 껌 값 정도로 여긴다. 대중들로부터 권력을 빌려가 단일화가 되었으니 자기들끼리 권력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하고 또 그것을 진보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경기도지사 어느 후보의 말을 듣노라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
민간독재답게 청와대와 여권은 북풍을 들고 나왔다. 군인들이 훈련 차 무장한 채 인천에 나타났다. 선거 국면이 전쟁 발발 가능성 국면으로 변했다. 세계적인 공황 국면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중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더욱 더 집착한다. 수십 년 동안 개발주의, 발전주의에 익숙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심리를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공포 앞에서 대중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할 것이다. 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북풍이 여권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야권을 향해 천안함 얘기 하지 말자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선거를 관통하는 사회변혁 프로그램을 가져야
그런데 이 모든 것들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6월 2일 선거 후에, 혹시나 모두들 ‘루저’가 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타이탄 트럭을 개조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확성기만 들이대는 것을 정치로 생각하는 것은 한나라당 만이 아니다. 민노당도 진보신당도 마찬가지다. 한 표라도 더 확보하는 선거 공학에만 급급하지 진보적인 정당 운동을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촛불에 참여하고 각종 집회에 대표들이 얼굴을 내민 것이 진보 정당 운동이고 대중들에게 정치적인 것을 복원시킨 운동이란 말인가.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당 정치를 하는 이상 노동자가 아니라 대중이 정치의 대상일 터이다. 만일 사회주의 정당마저 이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적인 것을 일상 속에 삽입시키고 회복시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의 변화라는 것을 ‘행복한 삶’으로 얼버무릴 것이 아니다.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은 선거 전이나 선거 후나 늘 요구되는 것이다.
6월 2일 선거 이후 또 다시 세월이 지나 총선 대선에서 진보 정당들은 또 다시 5+4 운운하며 혹성과 위성론을 제기하고 또 다시 진보대연합, 진보후보 단일화 운운할 것인가. 그것보다는 밑으로부터의 대중정치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고민하자. 자본에 대한 노동의 역 관계가 그 중심에 서고 지역마다 정치적인 어소시에이션(결사) 조직들이 증식되어 대중들이 정치의 주체로 서는 것이 선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6월 2일 선거는 물론이고 총선과 대선을 넘어서 변혁의 전망을 갖추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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