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여당 선거승리 자신감에 ‘최저임금 동결’ 요구

한 자리 수 이하로 막겠단 의도...“여당 선거 승리 자신감 드러낸 것”

6.2 지방선거를 5일여 남긴 28일, 경총을 중심으로 한 재계가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으로 현행 시급4110원 동결안을 제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서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최저임금 동결 요구는 선거에 여당의 악재로 나타날 수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동결 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 관계자는 “당초 재계가 1% 이하 소수점 단위 인상안을 고민하며 선거가 끝난 4일께 요구안을 낼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방선거 전에 갑자기 동결 안을 발표한 것은 여당 선거승리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봤다.

재계는 지난해엔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어렵다며 최저임금 -5.8% 삭감안(시급 3,770원)을 들고 나왔었다. 통상 최저임금 결정은 재계와 노동계의 요구안 차이를 공익위원들이 조율하다 최종 결정시한에 공익위원 조정안이 제시되면서 합의나 표결처리가 된다. 재계는 작년 최저임금 협상회의를 거듭하면서 -5.8% -> -5% -> -4% ->-1.5% ->+1.25% 수정안을 내 대략 7% 정도를 물러난 바 있다. 작년엔 경제가 나쁘다는 게 삭감안 고수의 근거였다.

올해는 전반적인 경제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는데도 재계가 공세적으로 동결주장을 하고 나온 것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한자리 수 이하에서 막아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계는 작년엔 처음 28.7% 인상안(5,150원)을 제시한 후 최종 3.9%로 물러나 인상율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익위 안은 110원 인상된 2.75%(시간당 4,110원)로 나왔고 표결로 통과됐다.

노동계는 올 3월부터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내년 최저임금 인상안으로 올해보다 26% 인상한 시간급 5,18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 108만2620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공동요구안을 발표한 바 있다.

“재계, 허구적인 동결 근거 냈다”

재계는 28일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 동결 안을 공식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재계는 동결을 요구한 근거로 △노동생산성 고려시 인상요인 없음 △유사근로자 임금수준, 생계비 고려시 인상요인 없음 △심각한 근로자 고용불안 해소 △과도하게 상승한 최저임금 영향률 고려 등을 들었다. 재계는 지난해 최저임금요구안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근거로 삭감을 요구하기도 했다. 작년에 결정난 2010년 적용 최저임금은 2.75%인상으로 최종결정 났다.

민주노총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계가 제시한 동결 근거가 허구적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용자 쪽에서 노동생산성을 근거로 제시한 것을 놓고 “사용자 쪽은 2000~2010년 사이 명목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 최저임금인상률을 비교한 표를 제시하면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과도했다고 주장하지만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 이후 부의 재분배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특정시점의 단면만을 지적한 수치”라고 반박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도입 자체가 1960~70년대 악화된 소득재분배를 완화하기 위해 출발했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1965년부터 최저임금 제도시행 직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추이를 장기간 비교하면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실질임금의 인상은 극히 저조했다”고 관련지표추이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1998년 한국에 최저임금 제도가 첫 도입된 이후 지난해까지 명목최저임금은 7.33배 올랐지만, 같은 기간 노동자 정액급여는 6.85배, 임금총액은 6.26배, 국내총생산은 7.57배, 국민총소득은 7.65배 올랐”다며 “제도시행 22년 동안 최저임금은 다른 경제지표와 비교해 볼 때 결코 과도하게 인상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88년 최저임금제도 시행 전부터 한국은 광범위한 저임금 노동자층을 안고 시작했는데도 최저임금제도 시행 이후 20년이 넘도록 이 같은 분배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가 또 다른 근거로 댄 ‘고용안전을 위한 동결’주장도 정확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ILO와 OECD는 최저임금제도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미미하며 일반적으로 저임금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밝히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Robert Solow)도 지난 3차 린다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회의 개최에 앞서, “ "기업들이 임금 부담 증가분을 생산성 증대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최저임금은 저소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에 위협이 되지만 이러한 현상을 증명할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계가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다고 근거를 댄 것을 두고도 김태현 실장은 “한국의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은 것은 그만큼 저임금 노동자가 많다는 뜻”이라며 “오히려 저임근 노동자를 줄여야 하지 영향률을 낮추는 문제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중위임금의 2/3 이하를 받는 저임금노동자 비중은 한국이 25.6%(2007년 기준)로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산하조합원들 전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작년에 2.75%올려 물가인상분만큼도 오르지 않은 데다 경제도 회복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반드시 두자리수 이상 올라야 한다”면서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파업 투쟁에 돌입해 최저임금 동결을 막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동결한 최저임금으로 고용안정과 확대를 꾀한다는 재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지난해 호경기를 누렸던 30대 기업은 오히려 고용을 6750명이나 줄였고 재벌의 곳간에 돈이 흘러넘치는데도 고용을 늘리는데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고용 없는 성장을 재벌기업이 주도했다”고 비난했다.

또 “당장 노동부가 내놓은 올 전체 노동자 임금인상 전망치가 5.0%인데 재계 논리대로 하면 전체 노동자가 5% 임금을 더 받는데도 저임금 노동자는 그보다 낮은 동결에 만족해야 한다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올 최저임금 인상률 2.75%는 지난해 물가인상률조차 반영하지 못해 실질 최저임금은 마이너스였다”며 “한국사회 전체가 넘치는 돈을 주체할 수 없어 금리인상 압박에, 출구전략을 쓰니 마니 하는 상황에, 저임금 노동자만 일방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라는 건 그 자체가 ‘도덕적 해이’”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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