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본 반노동적 국가를 바꿔야 한다

[신간안내] 에릭 헬라이너, 정재환 옮김, 『누가 금융 세계화를 만들었나』(후마니타스, 2010)



이 책은 정치경제학계에서는 금융 세계화의 역사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로 평가받으면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저자인 에릭 헬라이너는 수전 스트레인지, 로버트 콕스와 더불어 미국 학계의 지배적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대표적 국제정치경제학자로서, 1945년부터 1990년대까지 규제적인 국제금융 질서가 자유주의적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을 역사적ㆍ제도주의적 관점에서 다시 쓰고 있다. 특히 이 연구는 세계화의 과정을 거스를 수 없는 자본의 힘에 의한 발전의 결과로 보는 기존의 지배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국가를 주요 변수로 삼아 주요 헤게모니 국가들과 국내의 금융 엘리트 집단, 산업가, 관료 집단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지식인들과 국제기구 레짐이 어떤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금융 규제를 철폐하고 지금의 금융 세계화를 만들어 냈는지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금융 질서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는 오늘날 금융 위기의 원인이 과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금융 위기와 재규제화 논의에 대한 2009년 헬라이너의 논문을 보론으로 덧붙여, 현재의 국제금융 현실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나 앞으로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다.

1. 금융 세계화의 역사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실상 금융 세계화 이후 대부분의 분석들은 국가가 자본에 대해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 개념과 주권을 동시에 파괴하면서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자유화와 국내 사정을 무시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요했으며, 이들에 투항했던 국내 지배 세력 역시 자본의 힘에 밀려 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거나, 국제 금융자본이 오히려 국내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주문에 말려들었다. 또한 이런 국가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일부 진보 세력에게도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순한 도구로 비쳤다.

하지만 헬라이너에 따르면, 국제금융 질서를 건설하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언제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브레턴우즈의 규제적 금융 질서를 형성한 것도, 그것을 해체하고 자유주의 금융 질서를 수립하는 것도 모두 국가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과정에서 국가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통해 규제에서 자유화로의 반전을 만들어 냈다. ① 주요 헤게모니 국가들이 일방적인 금융 자유화 조치를 통해 시장 운용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② 국가 쌍방 간의 협력적 통제를 통해 자본 통제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③ 국제결제은행과 같은 초국가적 레짐을 기반으로 주요 국가들과 협력해 중요한 몇몇 국제금융 위기를 막아냄으로써 자유주의 금융 질서가 붕괴되는 것을 막았다.

특히 헬라이너는 결정적인 전환을 보여 주는 주요 국제회의 기록들과 간과되어 왔던 공문서들, 당시 현장에서 활동했던 실제 인물들의 증언 등을 세밀히 분석함으로써, 추상적인 국가 개념을 거부하면서도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정치경제학자의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 국가 내부의 다양한 세력들의 역학 관계나 국제기구 내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의 갈등, 그리고 당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던 경제학자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이들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이에 따른 국가의 중요한 정책적‧정치적 선택이 어떻게 금융 세계화 경향을 만들어 냈는지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2. 국가는 왜 금융 세계화를 추진했나?
: 어느 한 헤게모니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른 일방적 자유화의 문제

그렇다면 국가는 왜 이런 정치적 선택을 했던 것일까? 우선, 주요 헤게모니 국가들은 금융 세계화에 대해 막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금융 자유화를 통해 타국의 자본을 끌어옴으로써 엄청난 재정 적자를 해결할 수 있었고, 영국은 과거 가지고 있던 금융 헤게모니를 유지함으로써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융 자유화는 무역 자유화와는 달리 화폐의 이동성과 대체성이라는 속성 때문에 어느 한 국가(금융 패권국)의 일방적 자유화 조치만으로도 가능했으며, 이는 다른 국가들의 경쟁적 탈규제화 경향을 만들어 냈다. 또한 경기 침체를 배경으로 등장했던 신자유주의 지식인들의 노력과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역시 국가 내의 정책 관료들과 중앙은행가들로 하여금 국가의 정책 자율성, 통화 안정성, 자본의 유동성의 딜레마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전자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3. 금융 문제의 비가시성 = 비민주성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핵심은 무역 문제와 달리 금융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가시적이었다는 것이다. 헬라이너는 국제금융 문제가 대단히 기술적이고 외관상 복잡해 보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거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내 정치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이는 소수 금융 엘리트들이 국내 정치적 구속 없이 중요한 결정을 손쉽게 내리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결국 이 문제가 그만큼 비민주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 다른 세계는 ‘정치적으로’ 가능하다.

이와 같이 헬라이너는 소수 헤게모니 국가의 일방적 정치적 행동이 가진 영향력의 문제, 금융 문제의 정치적 비가시성, 금융 엘리트들의 속성, 국가의 능력과 역할 등에 대한 많은 중요한 논제를 던져 주고 있지만, 결국은 수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정치적 합의와 선택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금융 질서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특히 자유화를 위해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무역 질서와는 달리, 금융 질서에서는 규제를 위해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차이를 강조하고, 실제 이런 시도가 이루어졌던 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가까운 과거에 현재의 금융 질서와는 전혀 다른 규제적 금융 질서가 가능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이 쓰인 1994년과 지금의 국제금융의 상황은 크게 역전되었지만, 오히려 재규제화의 목소리가 한층 힘을 얻고 있는 지금 이 책이 더 설득력을 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차례

1장 서론

제1부 브레턴우즈의 규제적 금융 질서

2장 브레턴우즈와 자본 통제 승인
3장 자본 이동에 대한 지속적 경계

제2부 전 지구적 금융자본의 부활

4장 1960년대 유로시장에 대한 지원
5장 1970년대 초 실패한 협력
6장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네 번의 전환점
7장 1980년대 자유화 흐름
8장 국제적인 금융 위기의 극복과 국가의 역할

제3부 결론

9장 무역과 금융에서 국가는 왜 다르게 행동하는가

보론 국제금융 관리의 재규제화와 분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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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세계화 , 브레턴우즈 , 헤게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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