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과 반빈곤 운동의 두 가지 과제

[우리사회의 빈민운동사] (14)

들어가며

그동안 이 사회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워 이를 폭력적으로 강요해온 결과 저 출산과 고령화 사회라는 커다란 암초에 부딪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마디로 이 나라가 얼마나 희망이 없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증표가 아닐 수 없다.

빈곤이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이 아닌 사회적 산물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 한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길들여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최근에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복지를 둘러싼 담론이 확대되고 이를 소개하는 기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재원확보방안과 소득분배를 둘러싼 논쟁으로만 빈곤문제를 극복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거리 홈리스 사망사건 규탄 기자회견 [출처: 빈민해방실천연대]

지금 터져 나오는 복지문제 이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빈민운동은 당사자들의 단속과 철거에 맞서는 생존권 쟁취투쟁을 넘어 복지정책과 반 빈곤 의제를 둘러싼 투쟁을 전개해 왔고 그리고 일각에서는 지역을 근거로 한 투쟁을 펼쳐내고 있다. 지역운동의 흐름은 일제하 운동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라 할 것이다.

당시 87년 6월 항쟁 이후 운동의 방향과 전망을 모색하면서 지역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새로운 돌파구로써 지역적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지역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출발은 빈민운동(철거민운동) 일부와 시민운동 등 각각 처한 상황과 노선에 따라 지역단위의 주민운동과 풀뿌리 운동, 지역연대체 등의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이들의 공통된 인식은 ‘87년 6월 항쟁이후 운동진영의 역량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을 주었고, 거리에서 벌어지는 대중투쟁만으로 운동의 전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밖에도 지역의 환경문제는 지역과 공간을 둘러싼 운동의 영역을 더욱 넓히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으며, 기존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도 지역과 현장을 매개로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지자체선거를 앞두고 지역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향점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상 이 글은 도시빈민운동에서 나타나는 반 빈곤 의제를 둘러싼 투쟁과 계급적 지역운동의 실천적 의미를 원론적인 수준에서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복지정책을 둘러싼 운동방향

우선 복지정책은 20세기 들어 영국의 구빈법과 독일 비스마르크 체재에서 시행된 사회입법이 사회주의자 탄압법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출발했다. 이러한 흐름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의 경우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가 그 세력을 확대해 나가자 노동자계급의 동요에 위협을 느껴 복지정책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재정치는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불신을 낳게 되었고 이에 대한 차이를 두어야 될 필요성 속에서 서구자본주의 국가 간에 복지정책이 추진되어 나갔다.

이밖에도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등장과 함께 각 나라의 계급 간 세력관계의 결과물로 발전해 왔던 복지정책은 1960년대 실업률 1~2%라는 최상의 경제여건과 경제호황에 힘입어 한때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1970년대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고령화 문제가 대두되며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체제를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복지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기 복지정책을 표방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여 노동유연화와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와 감세정책 등으로 복지정책은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구복지제도의 발전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조건 아래 기존의 독재정권의 체재와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고자 하는 방편으로 국민들에게 시혜적으로 복지정책이 추진되었다. 1960년대부터 추진된 몇 가지 복지정책은 국가주도의 경재개발정책이 전개되면서 경제우선 논리에 밀려 후순위로 배치되거나 이에 종속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구복지정책은 노동자 계급의 저항 속에서‘체제위협세력’에 대한 관리 차원으로 싹을 틔웠으나, 우리의 경우 노동운동을 비롯한 저항세력의 힘이 전무 하거나 대단히 미비한 조건이었다. 또한, 비교적 활발하게 복지정책이 도입된 문민정부 이후에도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기조 위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 결과, 형식은 도입이 되나 내용적으로는 빈곤과 불평등이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사회구성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잔여적 복지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빈곤문제를 둘러싸고 최근까지 전개되고 있는 몇 가지 흐름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빈곤담론을 살펴보면 우선 ‘신 빈곤’이 있다. 이는 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계층 하락, 특히 ‘중산층 몰락’의 양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을 하면서도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분석을 제기하면서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신 빈곤’에 따른 대안으로는 근로빈곤층이라는 표적 집단에 대한 단기적 처방을 내리고 있는데, 국가의 위기관리전략의 일환으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이나 자활과 사회적 일자리 찾기 등을 추진하지만 결국 불안정 노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빈곤으로 되돌아가는 측면이 있었다. 경제위기로 말미암은 신 빈곤에 대한 대책이 ‘생산적 복지 또는 참여복지’ 정책으로 윤색되기로 했지만 빈곤문제는 완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신 빈곤론’에 대한 정부 처방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1)

이밖에도 노무현 정권 들어 가난하다는 말 대신 그리고 빈곤하다거나 빈민이라는 말 대신 ‘사회양극화’라는 용어가 이를 대체하는 보편적인 단어가 되기도 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 초부터 양극화 해소를 주요 국정지표로 선정하였고 대다수 서민이 겪는 빈곤의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를 이른바 ‘양극화담론’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시기에도 역시 일부 극소수의 고소득자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빈곤한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특히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사실상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적 시장구조 확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값비싼 민간서비스 난립과 빈곤층의 서비스 접근권의 박탈로 이어지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에 몰아넣기도 하였다.

한편, 복지를 사회적 자본으로서 이해를 하면서 사회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은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로 바라보는 사회투자전략이 제시된다. 복지전략은 생산적 요소와 투자요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특히 인적자본으로서 투자개념이 강조되어 각 개인의 생애주기별, 산업영역별, 개개인이 가진 전문성과 숙련도에 따라 개별적이고 체계적인 노동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다면 복지수급자들은 인적자본으로 투자될 것이고, 나아가 사회적 자본화가 가능할 것이며 사회투자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될 것으로 본다.2)

이러한 담론들을 통해 노무현 정권은 거버넌스와 같은 사회적 통합과 합의라는 외형적인 틀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형식적 접근이 빈곤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실마리가 될 수는 없었다. 이는 결국 노동문제에 있어서 비정규직의 문제와 저임금 불안정사회라는 근본적 해결점이 없는 상태에서의 한계를 보여준 결과였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세금폭탄이라는 수구세력과 수구언론의 집중적인 포화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셋째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빈곤정책의 후퇴를 경험하게 된다. 감세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그나마 복지예산마저도 실질적으로는 삭감되거나 사회보험의 시장화 정책들을 추진하는 등 오히려 축소되어 나갔다. 최근 들어서는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 졌는데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핀 것이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무상급식을 둘러싼 공약이라 할 것이다. 이제 무상급식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다. 그러자 한나라당 박근혜도 발 빠르게 복지문제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이에 압박을 받아서인지 이명박 정권은 우리나라가 이미 복지국가라고 강변까지 하고 있다. 민주당은 기존의 진보적인 정당들이 주장했던 무상보육·무상의료까지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정치정세에 있어서 복지문제는 대체적으로 큰 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편승하여 이미 방송과 언론들도 복지를 둘러싸고 앞 다투어 해외사례와 정책들을 소개하거나,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그리고 재원확보를 둘러싼 논쟁들과 함께 세금폭탄과 포퓰리즘 등등 논쟁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참고로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맞춤형 복지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시혜적 복지를 넘어서지 못하며 이는 결국 기득권자들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현 체제의 모순을 정당화해서 결국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보편적 복지는 경제적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복지혜택을 받을 권리를 광범위하게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제 복지는 하나의 시대적 유행이 되었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현란한 말잔치 속에서도 최근 전개되고 있는 '기초법공동행동‘ 투쟁이 갖는 의미라 할 것이다. 당장 최저생계비의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1999년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40.7%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2011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 532,583원 (실제 받는 비용 436, 044)으로 이 비용으로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권리는커녕 감히 생계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때문에 GDP 대비 복지분야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OECD와 EU 평균 18~20%에는 비교도 되지 않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29위에 머물고 있다)의 저급함을 폭로하고 이를 시급히 끌어 올려야 할 당면 과제가 있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중심으로 한 부양의무제 등 독소조항 폐지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야 말로 실속 없는 말잔치들 뒤엎고 가난한 이들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생존권과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복지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세력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력에서부터 진보적인 정당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안정적인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산현장에서 노동을 통한 정당한 대가와 재생산영역에서의 복지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내는 투쟁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그 한계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는 세력들 또한 국가의 시혜적 온정주의와 자본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나라님이 구제하는 가난’과 같은 성격이 바뀌기는 현재로서는 사실상 어렵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또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른 결과물로 자본의 이윤율저하라는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모순과 경제적 조건은 언제든지 복지정책에 대해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금시기 논쟁을 바라보며 반 빈곤, 빈민운동진영은 복지논쟁의 이면에 숨겨있는 보수 수구정치세력들의 정치적 재생산을 위해 복지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안정노동문제의 해결 없이 ‘복지예산의 확충을 통해 빈곤층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블록 쌓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결국 복지정책을 둘러싼 투쟁도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운동을 둘러싼 운동방향

위에서 살펴본 복지체제 못지않게 지역문제도 자본주의적 관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성립 초기에는 자본의 지배가 생산현장과 경제부문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주로 생산수단의 독점적 소유를 통해 작업장에서 노동을 통제하거나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 등의 폭력적인 형태를 통해서 그 본성을 드러냈다. 자본은 생산 영역에서의 이윤창출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동자를 착취하지만 자본은 국경을 넘어 전 지구적이면서도 일상적 영역으로 착취의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상품가치가 눈에 띄는 곳이라면 자본은 경쟁을 통해 전일적인 지배를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때로는 일시적인 사회적 합의를 내세워 타협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본의 본성은 생산현장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 곳곳에 그 영역을 확장하여 재생산공간을 장악하였고, 이로 인해 도시 서민들의 주거권과 빈곤 그리고 지역의 환경문제등 공공의 영역에서 수많은 갈등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달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이농현상을 촉진시키며 진행되어 왔다. 잘 알려 있듯이 과거 군부독재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방식에서 출발을 하여 외자를 도입하고 은행을 통해 이 외자를 대기업에 특혜 대출하는 과정에서 도시화와 산업화는 심화되어 나갔고 자연히 토지는 중요한 자본축적의 기제를 이루었다. (앞서 도시빈민운동사- 2에서 살펴보았듯이 국토 면적이 작은 한반도는 그 특성상 한정된 영역에서 도시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며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의 이농현상과 교통의 발달은 자본의 축적과 도시화를 더욱 촉진하기도 하였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는 자본축적을 위한 생산시설의 입지와 노동력의 유입 그리고 상품의 생산과 유통에 유리한 도시기반 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다. 즉 청계천변과 용산, 영등포, 구로의 공단을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에 집단적으로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출퇴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고 자본가들은 이들 지역을 통해 낮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혜택을 볼 수 있었으며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의 자본과 인구의 집중은 당연히 지가의 상승을 가져왔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임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주비용의 상승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거주비용이 낮은 주택밀집지역을 찾아 이전해야 했던 것이다. 이로써 주거단지를 해체하는 요인이 도시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 들어 하나의 대세로 서울 사대문 주변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인근 고지대의 달동네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거대한 아파트 군락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 청계천변을 보더라도 대기업 본사와 첨단 IT산업단지,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패션타운, 디자인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주력업종이 재편되고 주거단지가 해체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선거 때 만 되면 개발 사업들을 유치하는 정치가들의 선전선동의 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도심에서의 주거공간은 투기장으로 변모해갔고 저소득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의 주거공간은 점차 도심 밖으로 밀려나거나 잘사는 이들의 주거공간과 빈곤층의 주거공간의 구분이 확연해 졌다. 공간의 효율적 이용이라고 포장된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카스텔’에 의하면 “도시는 생산의 현장이기보다는 재생산의 현장”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공간의 성격은 노동의 재생산과 관련된 사회적 모순과 갈등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이제 재생산의 영역도 중요한 위기와 모순이 드러나는 원인이 되었다. 전통적으로는 자본과 노동이 만나는 생산현장이 자본주의 갈등의 발원지이지만 재생산이 전면화 되는 단계에서는 재생산의 영역이 더욱 중요하고 보편화한 모순과 갈등의 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지역과 도시는 바로 이러한 모순과 갈등이 현상화 되고 전면화 되는 대표적인 장이자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제 세계적인 자본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전환을 통해 이윤축적의 위기를 해소해오고 있다. 이밖에도 독점자본은 다양한 분배와 교환 그리고 유통과 소비의 영역까지 잠식해가면서 모순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중심상업 지구에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독점자본과 외국의 마트들이 기존의 재래시장을 대체하고 있으며, 노점상을 포함한 재래시장과 영세 상인들의 문제, 유통과 소비의 문제 그리고 뉴타운과 재개발 사업에 따른 철거민과 세입자, 무주택자들의 문제 등이 건설자본과 상업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의 곳곳에 지역적 근거를 둔 투쟁들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는 재생산 영역에서의 빈곤 문제에 대해 소위 분배의 차원과 사회복지 확대 등을 통해 접근하지만 언제든지 후퇴하거나 되돌려 지듯이, 지역과 공간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결책들을 불가피하게 내놓고 있지만 그러나 이조차도 신자유주의적 질서들이 관철이 되고 경쟁과 이윤추구의 장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용산참사와 같은 도시빈민의 투쟁은 잠재되어 있거나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도시빈민운동은 도시와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빈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통해 성장해왔다. 특히 철거투쟁은 무차별적인 개발 사업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잠자리를 위협해 나갔다. 노점상 또한 청계천 복원사업, 또는 동대문운동장 철거 및 거리 디자인화 사업과 같은 공간의 재구성과 상품유통체계의 변화와 맞물려 대대적인 노점단속에 내몰리기도 하였다. 이들의 투쟁은 오랫동안 지역과 직접적으로 연동되어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이밖에도 지역과 공간에서 나타나는 계급 계층별 불평등과 차별은 환경, 교육과 의료에 있어서의 차이를 낳았고 강북과 강남의 격차와 같은 차별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에 비춰볼 때 여전히 지역운동과 빈민운동은 그 역량은 미흡할지라도 계급적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커다란 잠재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다음은 지역운동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실천적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그동안 운동 진영은 90년대 지방자치단체의 부활과 함께 지역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해왔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적 대표성을 통해 국가정책을 대변하기 때문에 문제를 개선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를 은폐하기도 한다. 우선 지역 운동적 관점에서 지방자치제는 낙후된 도시의 불균등한 발전과 차별적 배분, 도시사회공간의 무분별한 재편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환경문제 해결 등 지역의제들에 대해 주민참여를 이끌어내고 이에 따른 요구와 수렴을 부분적으로 가능하게 했지만 반면 국가정책의 입장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지역과 도시의 문제를 적절하게 체제내적으로 순화하면서 지역의 내적 갈등을 무마하거나 회피하게 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그 기능상 자본과 정권의 권력배분을 원활히 하고 중앙정부의 재정문제 등을 도시와 지역 차원으로 환원하거나 분산시켜 지역과 공간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중장기적인 구실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복지정책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의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국가통치를 위한 수단적 장치로 경도되지 않도록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지방자치에 참여하는 것은 소외받고 고통 받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따라서 지역에 대중적 기반을 가지는 조직은 주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에 침투하는 자본의 횡포에 맞서야 한다. 구체적 활동경험을 축적하고 올바른 정치의식을 통해 선전하고 교육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결국 민중의 생활체계를 보호할 주체가 생산영역에서의 ‘노동자’이며 이들은 곧 지역이라는 재생산공간에서의 ‘주민’으로서 주체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둘째 과거 우리운동은 군부독재와 같은 폭압적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대중항쟁과 같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87년 이후 대중투쟁이 소강국면에 들어서자 이러한 운동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과 더불어 뿐만 아니라 90년대 들어 우리 운동진영 내 시민운동의 성장과 이후 진보적인 대중정당의 의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대중투쟁의 필요성에 대해 소극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위해서는 대중들의 거리진출은 여전히 유효하고 항시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문제에 착목을 하여 국가 또는 사회 전체적으로 제기되는 공동의 투쟁에 미온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으로부터 제기되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조건 그리고 재생산 영역으로부터 파생되는 민중(도시빈민)들의 연대를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별 대중조직과 사회단체 간의 지역별 노동자 민중연대체를 통해 지역별 반(反) 빈곤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자본의 지역적 축적전략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계급운동을 토대로 한 대중적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며 지역운동은 이러한 의미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한편 최근 들어 일각에서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듯 사회적으로 인터넷 문화가 확산하고 각종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동일한 지역에 거주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는 지역적 기반보다도 이들 성원간의 원활한 네트워크와 관계망이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모해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역사업을 펼친다는 것은 정보공유 차원을 뛰어넘는 삶을 영위해 나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의 접근이라는 것이며 앞으로도 지역이란 그 특성상 단순히 서로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결과로 차츰 국가의 역할보다도 지역과 공간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지역문제와 갈등을 감소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거나 악화 시켜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운동은 다양한 활동이 요구되어 지는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역통제방식, 도시구조의 특성 파악, 다른 지역운동 또는 타부문운동과의 연대방식 등의 실천이 검토 돼야 한다(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소위 기존의 주민운동과 그 차이와 방식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인식에 있어서도 도시공간과 지역을 아우르며 재생산 영역으로 착취의 영역을 넓혀가는 자본의 본질을 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의 노동 현장과 삶의 현장으로부터 펼쳐지는 다양한 현안들과 시기마다 펼쳐지는 각종 선거와 대중투쟁 또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지역운동과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 우리 사회의 궁극적인 변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역의 노동정치라는 계급적·전략적 조건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글을 정리하며

빈민운동사를 정리하다보니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 모든 운동은 차별과 빈곤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출발을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달려왔다. 그동안 발 딛고 있는 곳의 노점상문제 혹은 철거민문제 나아가 복지정책 뿐만 아니라, 지역과 공간을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영역과 층위에서 작동하는 차별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이를 폭로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노력은 단편적이고 현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답답한 것은 향후 대선을 앞두고 복지문제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문제는 이를 소리 높여 부르짖고 있는 자들 가운데‘빅 텐트 론’이니 ‘복지국가론’이니 ‘진보적 자유주의니’ 하는 부류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신자유주의체제를 앞다투어 받아들였던 자들과의 연대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복지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발판으로 이용해 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이러저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당분간 소위 OECD 국가의 복지수준으로 높일 수도 없거니와 반빈곤, 빈민문제가 혁신적으로 바뀌거나 그럴 가능성조차 없다. 다만 이러한 흐름을 잘 이용하여 일보전진 할수록 해야 할 것이다.


각주)-----------------

1) 최근 신빈곤의 특성과 관련하여 사회적 단절과 문화 심리적 소외가 결합한 다차원적인 문제로 변모하고 있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배제로 대처하는 흐름이 있다. 관련된 자료로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사회의 신 빈곤』과 국가인권 위원회에서 펴낸『사회적 배제의 관점에서 본 빈곤층 실태 연구』.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펴낸『빈곤정책의 전환모색』등을 참조하였다.

2) 한국 사회복지의 정치경제학 양서원 / 한편 사회투자국가론은 1990년대 말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가 신자유주의도 전통적 사민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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