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2)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47) 재능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서울지역 결의대회

일기예보에서는 서울 낮 기온이 7도까지 오른다고 했건만 저녁이라 그런 건지 바람이 불어 그런 건지 제법 춥다. 서울시청 앞, 재능교육 사옥 농성장.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집회 시작할 시간이 되니 연대온 이들이 앞에 나와 박스에 담겨있는 깔판 하나와 무릎담요를 하나씩 알아서 챙겨간다. 농협노조에서 주어 올 겨울 요긴하게 썼던 핑크색 무릎담요가 오늘도 진가를 발휘한다. 농성장에 연대온 동지들의 옷차림은 봄이 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온 것 마냥 가볍다. 장갑 없는 사람들도 많다. 재능지부 조합원들만 두툼한 겨울옷으로 무장 하고, 장갑을 끼고 있다. 하루 종일 농성장에 있어야하는 조합원들의 생존전략일 게다.


“‘여긴 왜 올 때마다 춥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매일 오지 않은 분들입니다. 여긴 매일 춥습니다.”

본인 발언 순서인줄 모르고 뒤에 있던 유명자 지부장이 뛰어나와 마이크를 잡는다.


3월 17일 저녁, 시청 앞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서울지역 결의대회’가 시작된다. 같은 시간, 서울에서는 국민체육공단비정규지부와 금속노조 정리해고 관련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50여명이 참석하여 집회를 하는 시청 재능사옥 앞에도 힘찬 박수소리와 구호소리가 울려 퍼진다.


열흘 전, 남대문경찰서와 중구청의 합동작전으로 농성장이 침탈되고 썰렁하던 농성장에서 규탄 집회를 하던 조합원들의 씁쓸해하던 눈동자와 가림막 하나 없이 침낭을 덮고 밤을 보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작은 천막 하나를 가져가기 위해 전경차 3대와 중구청 철거차량 6~7대가 왔다한다. 그 과정에서 8명이 연행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꽃샘추위가 막 시작되던 때다. “그래도 그렇게 춥진 않네. 한겨울 그런 날씬 아니지?”하며 애써 서로 위로했었다. 혜화동 농성 시절부터 천막농성장 침탈에는 이골이 난 조합원들이지만, 이곳에 와서까지 그것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좋은 자리 잡고, 빨리 자는 게 최고야.”하며 밤 10시도 안 되서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던 유득규 사무처장은 편히 잤는지 모르겠다.

  3월 7일 시청사옥앞 농성장이 침탈되던 날

  3월 7일 농성장이 침탈되고 밤을 보내던 모습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없는 작은 텐트 하나를 쳤다. 그게 안타까웠는지 진보신당 강남서초당원협의회 김현민 당원이 오늘 큰 텐트 하나를 기증하고 갔다. 동행했던 그의 지인 한 명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투쟁기금을 전달하고 갔다한다.

이날 대회사를 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이재웅 본부장은 “오늘 낮에 서울시청 문화재관리과에서 농성장을 철거해달라고 얘기하고 갔는데, 재능교육이 자기들이 할 수 없으니까 민원을 넣은 것”이라며 재능자본이 그만큼 다급해진 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승리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학습지노조 재능지부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전국 순회투쟁을 하고 있다. 작년 12월 말, 재능교육 사측은 15~6년 간 수업을 해온 조합원들을 노동조합 탈퇴확인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해지 했고, 유명자 지부장은 이것을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이야기한다. 이번 순회투쟁은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재능 자본의 심각한 탄압을 지역에 있는 일반 시민과 연대동지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이며, 장소는 해고된 조합원들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이번 주 월요일인 14일에는 재능교육 사옥이 있는 부산 연산동에 가서 오전 집회를 하고, 울산에 내려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롯데백화점 앞에서 100여명이 집회와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많은 힘을 받았다 한다. 어제는 역시 해고자가 있는 원주와 춘천에 가서 선전전을 하고, 춘천에서 연대동지들이 사준 맛있는 닭갈비도 먹고 올라왔다. 순회투쟁을 하면서 각 지역마다 해고자들이 있었으면 더 많이 다닐 수 있었을 거란 유지부장의 이야기에 모두 웃는다.


“순회투쟁이 순조롭게 될까? 그 사이 농성장 사수가 잘 될까? 걱정도 있었지만, 역시 투쟁하는 동지들은 현장에서 맞부딪칠 때 힘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서울과 부천 등 수도권 순회투쟁을 진행하고, 23~25일에는 혜화경찰서에서 4박 5일 집회신고투쟁을 해서 어렵게 따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투쟁이 예정되어 있다. 유지부장은 3월 25일 해고노동자 결의대회를 포함한 3일 간의 본사 앞 투쟁 연대를 요청하고,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4천명 조합원이 있던 힘 있는 지부의 지부장으로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투쟁 경과보고를 마무리한다.

많은 문화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가수 김성만 동지, GM대우차 비정규직지회 홍동수 조합원, 성신여대 몸짓패 ‘메이데이’, 가수 이씬 동지 총 4팀이 함께 했다. 가수 류금신 동지는 문화공연이 너무 많아 노래를 못하고 돌아갔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들의 연대사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앉아있는 이들의 표정은 기쁨 반, 괴로움 반인 듯하다. 조합원들이 타준 따뜻한 차가 메모를 조금 하고 있는 사이 식어버린다. 잠시 후에는 초코파이도 하나 넘어온다. 나에게는 날씨 측정을 할 수 있는 내 나름의 물리적인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취재수첩에 하는 메모다. 가끔 정말 도저히 메모를 할 수 없을 만큼 추운 날이 있다.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중간 중간 손을 ‘호호’ 불어주며 적어야하니 이 정도면 제법 추운 날씨라고 할 수 있다. ‘꽃샘추위’는 꽃이 피는 것을 샘내듯이 춥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는데, 누군가 이 동지들의 투쟁을 시샘하는가 보다.


“처음에는 연대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많은 지역을 다니고, 공동투쟁을 하고, 일인시위를 하면서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겨울, 프랑스대사관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뼈 져리게 느꼈습니다. 저희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동지들도 재능지부 학습지 동지들이 원래 자리를 찾는 순간까지 같이 연대 투쟁하겠습니다.”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김명무 조합원도 투쟁에 대한 포부를 밝힌다. 울산에서 온 공무원노동조합 해고노동자인 최윤영 씨는 경주 금속노조 다스지회에 교육을 갖다가 재능지부 투쟁 소식을 전하고, 즉석에서 모금해온 투쟁기금을 전달한다. GM대우차 비정규직지회도 투쟁기금 전달과 함께 오늘 1박2일 노숙농성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며 유명자 지부장이 환하게 웃는다.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소원과 결의의 말을 적어 농성장에 걸었다. 누군가 “이 현수막 떼면 3대가 저주받아요!”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집회가 끝났지만, 발길을 떼지 못한 사람들이 농성장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내일 날씨는 포근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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