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활동가, 너는 누구냐?

[우리사회의 빈민운동사] (15)

들어가며1)

지난 밤새 또 누군가들 몰려와서 밤새 화투를 쳤나보다 탁자에는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수북하고 문가에는 자장면과 짬뽕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창문을 열어 제키고 환기를 시킨 후 화장실에 걸어놓은 대걸레에 물을 적시고 청소를 하기 시작 한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출근을 하느라 식사도 거른 채 사무실에 도착을 했더니 속이 출출하다. 서랍을 열어 먹다 남은 초코파이 한 개를 찾아내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찾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전화가 걸려 온다. 오늘은 시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개최하는 날, 어제 주문한 현수막과 유인물을 확인하고 지역의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 1시까지 서울역으로 모여 줄 것을 요청한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 부 술 내리기 시작하고 하늘은 축 내려 앉아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오늘 또 하루의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며칠 전 과거에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만나 술좌석을 갖은 적이 있다. 게중 에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왕성하게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일부는 취직을 준비하거나 별다른 활동 없이 일상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도 있다. 자연스레 이런 모임이 열리면 운동에 대한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내고 앞으로 어떻게 실천을 할 것인가 당당하게 내 자신의 주장을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런 결의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직도 빈민운동을 하는 나에 대해 모두들 대견스레 하는데…….

도시빈민 활동가는 배고프다

“야 너는 맨날 남에 커피 뺏어 먹냐? 나도 좀 먹고 살자”
“커피한잔으로 우리의 우정과 연대가 흔들려야 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처장님 ㅋㅋㅋ”
건물 한 귀퉁이 계단에 쪼그려 앉아 사무처장이 마시던 커피를 뺏어 먹는다.

오늘도 무사히 집회를 마쳤다. 집회를 마치고 삼삼오오 집으로 또는 지역으로 흩어지는 회원들을 바라본다. 다 식어버린 달작 지근한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이사 갈 집은 마련했어?”
“아뇨 아직”
“거참 큰일 났네…….”

이사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혼을 하고 벌써 몇 번째 이사인지 모르겠다. 올해는 정말 죽을 맛이다. 전세 대란이란다. 집 문제 만 해결 되도 한시름 놓겠는데, 솔직히 활동가 부부라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지방선거에 빈민후보로 구의원에 출마해서 부채도 더욱 늘어난 상태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일을 한다. 아내는 직장을 마치고 지역 청년회활동을 한다. 청년회는 청년회 나름대로 바쁘다 저녁 12시가 다 되어서야 서로 피로에 지친 얼굴을 볼 수 있다. 아~ 이 모든 게 간 때문인가?

아 옛날이여

어느 때는 정신없이 이런저런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때로는 집행부들과의 역할분담이 되지 않아 업무가 몰리기 일쑤고, 자질구레하고 불필요한 전화는 왜 그리도 많은지, 회의자료 준비하랴, 외부회의 나가랴, 집회라도 열리면 식사도 거른 채 일을 하기 일쑤다. 오늘은 회계장부에 돈이 맞지 않아서 하루 종일 계산기로 눈알이 빠지게 회비를 맞추고 있다.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모든 비난과 책임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거 같다.

회원들이 걷어서 내준 회비로 상근을 하면서 업무를 보니 감수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말 섭섭할 때는 단체 안에서 쟁점이 생겨서 말들이 무성해 질 때다. 그때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면 슬그머니 “네가 뭘 아느냐?” 하는 식이다.

“네가 철거 당해봤어? 네가 노점을 해봤어? 네가 노숙을 해봤어? 회원들의 정서를 알아?”
“아니 뭐 꼭 당해봐야 아나요? 꼭 그래야 정서를 아냐고요?”
“뭐야?”

초창기 단체를 건설하던 시기에는 젊은 활동가들의 위상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제 단체의 역사가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 간부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 한 거다. 운동권 출신 활동가들의 판단을 훌쩍 앞서 나간다. 결과적으로 잘 된 거지만 그러다 보니 이러저러한 판단을 둘러싸고 활동가와 일반현장 출신의 간부들 간의 의견 대립이 생길 때도 있다. 나는 좀 더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의 연대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그 공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운동적으로 풀어가고 싶은데 조직의 현실상 잘 되지 않는다.

“그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로 직결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때 뿐 “우리는 우리의 생존권만 지키면 된다” 는 식으로 허공에 메아리다.

간부회의라도 열리면 회원들이 결정한 안건을 처리하거나 실천하는 몫은 중앙 집행부 활동가들에게 떨어지기 일쑤고, 자발적인 참여를 발견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조직 내 관료주의적인 모습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 한 거다. 이게 어디 빈민운동 뿐이랴 만은 자기 자신의 해결만을 위해 이해득실만 따지는 실용주의로 흐르기 시작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참 걱정된다. 하지만 활동가의 위치라는 게 마치 진골과 성골을 따지듯 현장출신이냐 아니냐, 당사자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조직 체계 상 서열 관계에 한계가 있어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는데 발언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눌려있기도 하다. 게다가 과거의 열정과 활력은 사라지고 이제는 단순 업무에 매몰되거나 바쁜 일상에 내몰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활동가들의 역할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실무일 만 남았다. 이러다 월급쟁이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살맛나는 세상은 저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그날

사무실에 들어와 오늘 집회에 대한 평가를 하였다. 꼼꼼한 우리 사무처장은 초장부터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 인간 빈민운동 구력 20년을 바라보니 한마디로 능구렁이다. 자기 입으로 “앉아서 천리를 바라 본 다”나 어쨌다나. 맨 날 “과거 선배들은 어떻게 싸웠다”는 둥, “내가 왕년에 말이야?” 를 입에 달고 산다. 작은 키에 고집과 아집이 얼굴에 덕지덕지 쓰여 있는 지독한 이 인간 맨 날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빈민운동 하기 전에는 천사 같은 고운 마음씨를 갖았다는 둥 답답한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둥 되지도 않는 소리를 혼자서 궁시랑 거린다. 내가 보기에는 타고난 천성 같은데 말이다.

매일 옛날만 찾는 꼴통 사무처장은 “이거 말이야 제대로 일은 처리하지도 않고 말만 앞세우고 말이야, 하루 종일 컴퓨터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지난번 지역에 새로 온 친구는 어디 갔어? 벌써 그만뒀어? 야 왕년에 활동비가 어디 있어? 다 지 돈 써가며 운동했지 요즘같이 편하게 운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빈민운동가라는 탈을 쓰고 그동안 빈민운동 판에 들어와서 개판을 치고 사리진 인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이러니 회원들이 새로운 활동가가 들어와도 속으론 “얼마나 버틸까?”하는 시선으로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통일행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무처장이라는 인간은 도통 관심이 없다. 회의 때 보고를 해도 대충대충 이다.

“이거 제대로 진행이나 되겠어?” 하고 냉소적인 반응이다.
“왜요?”
“소위 운동에 다수파의 패권이지 그냥 밀어붙이기식이야”
“아니 뭐 전체 운동진영이 모여서 뭔가를 해보자는 건데 사소한 차이는 좀 덮고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올해는 빈민운동이나 열심이하자구”

아 지긋지긋한 소위 정치적 입장차이 도대체 저 사람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 수도 없고 사사건건 생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니, 저인간만 아니면 좀 살겠다.

사실 사무처장도 알고 보면 불쌍하다. 나름 빈민운동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성질머리 바꾸지 않으면 저 인간 평생 손가락질 받을 거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역깡패와 맞서며 투쟁하다 보니 나도 깡패 다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순 거짓말이다. 그건 어디서 주서들은 말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주인공이 “동물을 잡겠다고 동물이 되어서 되겠냐?” 하는 대사를 갖다 붙인 게 분명하다. 가증스런 인간 갖다 붙이긴. 아무튼 이 땅에 빈곤이 사리지는 날은 와도 저 짐승 같은 사무처장이 사람 되는 그날은 영원이 오지 않을 것이다. 내 확신한다.

빈민 활동가, 너는 누구냐?

빈민 활동가를 도식적으로 분류 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들은 중앙이나 지역의 실무를 담당하거나 반 빈곤 관련된 단체의 상근활동을 통해, 상담과 기획 및 대외협력 사업을 맡아 실천과 활동을 한다. 우선 빈민 활동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미 학생운동의 경력이나 단체 활동을 통하여 사회운동과 조직 활동의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로써 빈민 대중조직의 일반 회원들에 비해 정치의식도 높고 실무력도 빵빵한 사람들이다.

  2011년 1월 15일 송파지역에서 빈민현장활동

물론 빈민운동 초기에는 이들의 헌신적 공헌이 운동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한편으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지나치게 목적의식적인 면을 앞세우다보니 활동 초기에는 대중들의 정서와 융합되지 못하고 5년 이상의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거나 장기적인 활동에 미치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자기 인생에 포기할 것이 많은 사람들이라서 그만큼 괴롭고 번민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을 제약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 운동을 둘러싼 방향과 이념의 혼란이 컸고 빈민활동가들의 경제적 생활고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가들은 현재까지도 빈민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빈민운동의 전망을 밝혀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몇 사람을 실명으로 들라면 학생운동 시절 빈민학생 연대 활동을 통해 도시빈민 운동과 만난 사례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의 이경민(남34) 조직국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서대문에 있는 경기대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총학생 회장을 지낸바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경기대 학생이었던 오원택열사의 죽음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고 운동에 참여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저동 철거민 투쟁에 결합을 하며 도시빈민문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경기대 대동제 때 서부노련 주점에 결합하거나 이지역의 노점단속에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습니다. 졸업과 함께 도시빈민조직인 서부노련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이밖에도 학생운동을 거쳐 오랫동안 노점상 운동에 복무하고 지금은 서울 성북지역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파랑새 공부방 인연 맺기’를 이끌고 있는 신희철(남35)과 같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반빈곤연대 단체인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활동가들, 홈리스 행동 활동가들 등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보다는 빈민현장에 투신을 하며 맡은 일들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다음은 당사자 출신으로써 자신의 생존권을 위하여 열심히 뛰어들다가 그만 활동가에 길로 퐁당! 접어든 예다. 알다시피 노점상은 자신이 리어카를 끌고 거리에 나와서 장사를 하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 철거민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들에게 미래가 있다면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돈을 벌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맨주먹인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불이익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이 보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봤던 노점상, 철거민들이 그렇다. 이런 당사자들 중에 활동가로 나선 사람들은 대중의 정서를 잘 헤아릴 줄 알고 비교적 무난한 활동을 벌여 나간다. 고상한 말로 ‘경제투쟁’의 수준을 뛰어 넘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가령 용역반과 현장에서 싸우게 되더라도 이들 과의 직접적인 대립을 뛰어넘어 사회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모순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용산참사 투쟁으로 얼마 전 구속되었다가 나온 전국철거민연합 인태순(여 49) 씨다. 그는 오랫동안 철거민운동에 적극적으로 복무하고 있다. 한때 노숙인 이었다가 그 스스로 이제는 당당한 노숙당사자 모임 ‘한울타리’ 를 통해 활동가로 거듭난 이태헌(남 52) 아저씨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와 같은 이들이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이사회의 힘들고 어려운 구석구석에서 자신의 몫을 채워나가고 있으며 비교적 일상에서도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모습 속 에서 현장 출신인가 아니면 학생 출신인가에 대한 구분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활동가로써 서로 마주보며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 나가거나 실천을 해 가는 이들이기에 서로의 차이란 없는 거 같다. 아마도 활동가라는 공통의 분모가 없었다면 언제든지 우리 사회의 학력이 갖는 기득권 또는 당사자냐 아니냐 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차이와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평행선을 걸었을 것이다.

활동가의 탈을 쓴 건달

물론 여전히 활동가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입으로 활동가 입내하고 돌아다녀도 자신의 입지가 최우선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언제나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면 그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고 처신할 카드가 무엇인지부터 고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빈민운동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 몇 가지 사례를 추상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은 부류들이다.

우선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무수한 넘나들기를 거듭한다. 정말로 눈부신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가급적이면 욕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기에 성격 쿨 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이들도 어려움에 처해지는 때가 있다. 조직 내 쟁점을 둘러싸고 정말로 어떤 냉철한 문제에 처해서 결정적인 판단을 요구해야 하는 시기다. 결국 줄타기를 거듭하다가 대세가 기울어 졌다 싶으면 잽싸게 그쪽에 붙고 최선을 다한다.

물론 목소리도 한껏 커지고 상대편에 맞서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 순간에도 오직 머릿속에는 처신과 관련된 복잡한 계산과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직관과 감각으로 이해득실만을 따질 뿐이다. 왜냐면 세상의 중심은 오로지 자신이기에 자신부터 사는 것이 우선이기에 그렇다. 빈민운동을 거쳐 간 수많은 활동가들 가운데는 분명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일관했던 이들도 있었다.

다음은 맹목적인 활동가다. 빈민운동을 특정정파 운동의 발판으로 삼기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무엇보다도 대상이 누구든 일단 자기사람으로 만들어 보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들은 상대방과의 정서적인 친화력을 우선하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우선 털어놓는다. 그리고 술자리를 빌어 이러저러한 개인사에 대해 늘어놓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본다. 상대방과의 정서적 일체감이 이루어졌다 싶으면 자신이 판단하고 있는 정치적인 방향과 입장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다음단계는 라이벌쯤 되는 사람이나 조직이 갖고 있는 단점을 각인 시키거나 폄하 시킨다. 이렇게 확보된 정서적인 일체감이 그룹을 이루기 시작하면 다양한 생각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이들이 세력화 되면 아무런 고민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조직을 분열로 이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소위 대중성과 친화력이라는 이름아래 친목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빈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반가울 뿐이다. 더 나아가 정서나 감정에 의존하는 정도가 깊어지는 만큼 애초의 목적도 사라지며 도대체 왜 그토록 조직을 하는데 열을 다했는지 의식을 못하게 된다. 이들은 원칙을 문제 삼지 않는다. 대상과 무수한 관계가 있을 뿐이다. 대중성이라는 이름으로 정서적 친화를 무기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은 어느 곳에서 또 한잔의 술을 마시며 가끔은 안주삼아 빈민운동을 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내일의 희망을 결의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또한 가끔 목격하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이론 편향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한마디 지적하고 싶다. 이론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제대로 된 이론 없이 실천을 하는 것은 정말로 맹목적이며 방향 없이 파도에 휩쓸리는 배와 같다. 하지만 자신의 이론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실천을 해나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론에 경도된 잘못된 활동가는 은연중에 실천의 문제는 자신이 아니라 대중들이며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빈민운동 조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오직 자신이 갖고 있는 이론이 현실에 맞아 떨어지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만 연구를 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정세와 맞지 않으면 새로운 이론을 도입해 또다시 대중을 현혹시킨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넘쳐나지만 자신의 이론이 잘 못되었다고 솔직하게 반성하는 일은 드물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의 존립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 시키는 것”이라고 주장을 했다. 세삼 곱씹어 볼 말 인거 같다.

빈민 활동가들의 헌신성은 정말 눈물겹다. 하지만 아무리 헌신적인 활동을 한다 해도 모두 올바른 것은 아니다. 최근 빈민운동은 내부적으로 많은 분화와 분열을 겪으며 혼란과 어려움을 거치고 있다. 그러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활동가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가지고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우리는 기회주의자를 처신을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 할 수 있고, 맹목적인 활동가는 친화력과 대중성이 있다고 오해 할 수 있다. 운동이라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친화력은 소중하나 고마운 언니, 오빠로 혹은 형으로 누나로 만 남아서는 안 된다. 이론가는 분별이 있는 반면 책임과 겸허가 부족 할 수 있다. 빈민운동의 흐름과 과정은 조직 내 숱한 야사들과 전설의 고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급한 사연 못지않게 별별 희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우리운동 일수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사회든 한 개인이 모든 방면에서 출중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각각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살려 내되 서로의 부족한 면은 활동가 간의 비판과 상호 협력을 통하여 극복이 되는 방법 말고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글을 정리하며

활동가들의 역할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바로 올바른 동료와 조직을 통해서만이 관철될 수 있다’ 부도덕한 사회에 맞서 정의를 부르짖는 것만큼 자신의 동료가 혹은 발 딛고 있는 조직의 모순에도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권위적이고 부패한 조직 안에서도 활동가는 필요하다 그런 조직일수록 활동가의 역할은 분명해 지는 거다.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방기한 채 침묵을 하거나 심지어 잘못된 흐름에 편승해 휩쓸려서는 안 된다. 더욱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결단력 있게 그런 조직에서는 활동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 일반회원과 활동가 간의 신뢰는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덧붙여 빈민운동의 흐름 속에서 투쟁의 역사도 소중하지만 조직 내 저항의 과정도 소중히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모순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는 것은 정말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조직 내 모순을 극복해 나가는 것은 더욱 큰 용기를 요구한다. 나아가 활동가들은 자신의 문제를 끝없이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기에 그만큼 힘든 직업인지도 모른다.

오후 늦게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해서 진 빚 때문에 서대문에서 후원 주점을 개최하였다. 여기저기 지인들을 불러 모아 행사를 치렀다. 오늘은 아내도 참석을 하였다. 사무처장 저 인간 아직까지 퇴근도 안하고 오늘도 오버하기 시작 한다. 술도 못 마시는 인간이 손님 접대에 여념이 없다. 주방에서 식탁으로 다람쥐마냥 들락거리며 음식을 나르기 시작한다. 지난 겨울방학 때 ‘빈민학생 연대투쟁’ 을 함께한 학생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난리 부르스다. 사무처장이 오늘 내 행사에 맞춰 열심히 놀아주니 조금 고맙긴 하다.

“오늘 사람들 많이 왔다 그지?”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계단으로 불러 사무처장이 뭔가를 손에 쥐어준다. 후원금이다.
“도움이 되어야 할 텐대”
헤벌쭉 웃는 모양이 영락없이 머리 빠진 원숭이다.
“우리 힘내자 알았지~ 파이팅”
조막손을 쥐었다 피며 계단위로 총총 사라지는 사무처장 뒤통수에다 대고
“사무처장님 내일 늦지 마세요. 요즘 위원장님 감시가 장난이 아니에요”
“OK 나도 알고 있거든......”

아내는 슬며시 다가와 나의 팔짱을 낀다. 오늘 정말 많은 사람들이 후원주점에 오셔서 격려를 해주었다. 눈물 나도록 고맙다. 살맛나는 세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조금씩 미래를 열어 가는 거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인데 사무처장 말대로 우리 조금 더 힘내자


각주)-----------------

1) 이글은 필자의 2001년 해방수레를 끌며 6호 도시빈민활동가의 역할과 임무를 참조하였으며, 2011년 2월 14일부터 3월 20일까지 도시빈민활동가 약 2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2) 민주노련 신문 당당하게 1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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