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시스템, ‘고용허가제’

[낮은 목소리](6) 고용허가제 7년의 풍경

이주노동자 K씨가 최근 노조에 찾아왔다. 그는 일하던 공장에서 계약이 7월 말로 끝나는 걸로 알고 8월 초에 고용센터를 찾았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얘기를 들었다. 6월 말일자로 이미 계약이 끝나 있고, 한 달 안에 구직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비자를 잃었다는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은 형식상 공장을 두 개 갖고 있던 사장이 서울의 공장을 닫고 소속 노동자들을 모두 양주 공장으로 등록하면서(그러나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양주 공장에서만 일을 했음) 퇴직 처리를 하고(노동자들에게는 얘기해 주지 않았음) 새로 계약서를 쓰게 했다. 그런데, K씨는 새 계약서에 사인하면 1년을 더 일해야 하므로 그냥 기존 계약서대로 일하고 끝나면 옮길 요량이었던 것이다. K씨가 새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으므로 사장은 6월 말에 이미 퇴직 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7월 말까지 고용센터에 구직신청을 하게 했어야 하는데 알려주지도 않고 7월 말까지 그냥 일을 시킨 것이다.

졸지에 황당한 사태를 당한 K씨는 백방으로 다니며 해결하고자 했지만 고용센터는 이미 비자를 잃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이주노조와 함께 다시 진정을 제기했다.

고용허가제는 눈물의 씨앗...7년 내내 이주노동자들 저항해

  고용허가제 때문에 9개월만에 자결한 故 던 라즈 갈레 씨.
이 사례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모든 권한과 정보가 사업주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노동자는 뭘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실상의 강제노동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는 2004년 8월 17일부터 시작했으니 어언 7년이 지났다. 고용허가제는 무수한 인권유린과 착취로 지탄을 받았던 산업연수제도를 대신하여,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대우하고 미등록 체류자 숫자를 줄이는 개선된 제도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고 나서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2003년 하반기부터 정부가 몰아붙인 대규모 단속추방과 각 사업장에서의 해고사태는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는 11월부터 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에서 단속추방 반대와 합법화를 요구하는 농성이 전개되었고 전국 100여 곳에서 농성이 시작되었다. 특히 명동성당 농성은 2004년 12월까지 380여 일간 진행되면서 대규모 이주노동자 활동가 육성, 한국 노동사회운동과의 연대 강화, 한국사회 내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발언과 운동 발전, 이주노조 건설 등의 성과를 낳았다.

고용허가제는 그 도입시기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노골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에 큰 저항에 부딪혀서 생채기를 입었던 것이다. 고용허가제 도입을 반대하고 노동허가제를 옹호하면서, 당시 농성단은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제도의 문제점을 비슷하게 만들어 낼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하였다.

고용허가제 7년, 착취의 세계화 7년

7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취업이 자유롭지 못하니 사업주에 구속되어 노동을 할 수밖에 없고, 사업장 내의 불합리, 비인간적 대우, 인격 무시, 착취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가 극히 어려워졌다. 뭐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자꾸 그런 소리하면 너네 나라로 돌려보내버릴 거야”라는 식의 협박이 돌아온다(사업주는 노동자를 본국에 강제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2011년 외노협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업장 내 차별은 욕설, 문화 차별, 폭행, 종교, 성희롱 순으로 나와 있다. 특히 욕설은 거의 80%에 달한다.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족도 고충처리, 인격적 대우 문제가 가장 높다.

뭘 어찌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 노조에서 전화를 해 문제제기라도 할라치면 사업주측은 대부분 “우리는 법대로 하고 있다”거나 “가족처럼 잘해주고 있는데 뭔 소리냐” 혹은 “그 놈이 문제다”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면서 중소기업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늘어놓는다. 물론 재벌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다단계 하청체계 속에서 맨 아래에 있는 소규모 사업장들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에는 대체로 “못사는 나라에서 데려와서 일 시켜주고 월급 주는 게 어딘데 불평하냐”는 식의 심리가 깔려 있다. 본국에는 일자리도 별로 없고 임금도 한국에 비해 몇 배 적으니 여기 와서 일해서 돈 버는 것 자체를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도 참고 뼈빠지게 일이나 하라는 것이다. 참 후안무치한 소리들이다. 3D 업종에서 일할 내국인이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불러 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도움을 주러 온 이웃같은 사람인데, 손님으로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너네 집이 못사니 내가 마음대로 부려먹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결국 잘못된 제도가 잘못된 현실과 인식을 강화하고 이는 또 다시 잘못된 제도를 정당화해서 유지시키는 악순환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토론회에서 장기 체류를 허용할 시 사회적 비용이 커지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노동부 측의 논리에 대해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보내는 본국에서 그 성년 노동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들인 사회적 비용은 왜 생각하지 않느냐”며 일침을 가했다. 즉 몇 년 쓰고 돌려보내고 다시 새 노동력을 쓰는 단기순환 이주노동 정책은 본국사회가 들인 노동력 육성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면서 만 18세~39세 사이의 절정 연령 노동자들의 노동력만 곶감 빼먹듯이, 그것도 권리는 주지 않는 강제노동의 형태로 쓰다가 보내버리는 ‘착취의 세계화’의 하나인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고장난 시스템, 대안 마련 시급

단기노동이라는 불안한 지위를 강제하는 고용허가제가 정부의 강력한 출입국통제와 이주민 억압정책과 맞물려 이주민들의 자기조직화와 사회세력화를 가로막아 온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입국 자체가 너무나 힘들고, 여차하면 비자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주민들이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더 이상 이 고장난 시스템의 대안 도입을 미뤄서는 안되며, 그것은 고용허가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출입국 규제와 이주민 통제정책을 개선하는 것을 함께 도모해야 함을 가리킨다. 대체로 그것은 장기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허가, 취업 활동의 자유, 결사의 자유 보장, 이주민의 자기조직화 옹호 및 지원 등이다. 노동운동 진보운동 진영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러한 논의와 실천에 함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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