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52) 재능교육 교사 학습지 노동자 故 이지현 조합원을 추모하며

지현아, 너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

“지현아, 너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 고마워.”

유득규 사무처장이 영구차에 들어가려는 관을 붙잡고 오열한다. 잠시 후, 영구차가 출발한다.

“갈게요. 고맙습니다. 잘 보내고 올게요...”


1월 15일 오후 1시, 의정부 성모병원 장례식장. 유명자 지부장이 울면서 발인에 참석한 이들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한다.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유명자 지부장과 학습지노조 강종숙 위원장의 어깨가 작다. 학습지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故 이지현 조합원이 화장터로 떠나고, 돌아서는데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두 눈에 가득 담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고동민 씨가 서있다. 19명의 소중한 동료들을 떠나보낸 그에게 왔냐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 ‘2차 포위의 날’ 행사가 있던 1월 13일, 재능교육에서 14년 동안 재능교육 교사이자 노동조합 간부·해고노동자로 살아온 이지현 조합원이 1년 6개월 간의 유방암 투병 중에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날 오전 집회 중에 소식을 접한 조합원들은 빈소로 달려가고, 쌍용자동차 일정에는 강종숙 위원장만 참석하여 저녁 문화제 중에 발언을 했다.

이 날 강종숙 위원장은 “19분의 죽음이 있어 이만큼 모였는데, 우리는 19명이 안 죽어서 1,500일을 싸우고 있는 거냐”, 정치인들의 발언은 3분을 초과해도 제한하지 않으면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발언은 3분을 꼭 지켜달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아픈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고 이지현 조합원

영구차가 떠나고, 장례식장을 떠나는데 허탈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노동조합장인 줄 알았는데, 가족 예배 후에 바로 화장터로 가는 일정이었다 한다. 故 이지현 조합원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재능교육 교사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했는지... 따뜻한 추도사라도 한마디 들었으면 나았을까? 고인을 위로하는 민중가수의 추모가라도 한 곡 들었으면 나았을까? 내 마음이 이러한데, 가족들과 조합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니가 내 심장”이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1년 4월에 입사해서 가깝게 지내던 3분을 먼저 보냈습니다. 한분은 재능노조 탄압인 급여 가압류에 대한 투쟁 중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정종태 동지입니다. 또 한 분은 같은 지역국에서 1달 같이 일했던 분인데, 사회 첫발을 디딘 너무 어린 분입니다. 매달 50만원의 회비 대납금을 준비해야하고, 그만두려면 3백만 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것에 괴로워하며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故 서동지입니다. 세 번째 분은 14년 간 재능교육 선생님이자 조합 간부로 생활하면서 해고자 투쟁 중에 며칠 전에 돌아가신 이지현 선생님입니다.”

다음날 저녁, 시청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는 어김없이 문화제가 진행되었다. 이 날 사회자인 재능교육지부 오수영 사무국장이 노동조합 활동 중에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로 문화제를 시작한다.


“작년에 단식투쟁 시작하던 날, 삭발하던 날.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노동조합 활동하며 저의 심장 같은 동지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 동지 중 한 명이 이지현 동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현이에게 동지란 말을 실질적으로 하지 못했고, 지현이 앞에서 니가 내 심장이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의식이 있는 동안에 마지막이란 것을 몰라 병문안 가서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장 같은 동지들은 제가 멈추고 싶고, 그만 하고 싶을 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동지가 있어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고, 어려운 일을 견디면서 너무 즐겁게 투쟁했습니다.”

  고 이지현 조합원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유득규 사무처장

故 이지현 조합원과 가장 친했던 유득규 사무처장이 울먹이며 첫 발언을 시작한다. 故 이지현 조합원은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하면 되지.”라고 했고, 본인이 모르는 일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하면 되지. 그게 어려워? 해보면 되지.”라고 할 정도로 밝고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유득규 사무처장은 투쟁 1500일을 앞두고, 단협이 원상회복 되고, 해고자가 전원복직 되는 그때가지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투쟁에 임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또, 학습지교사로서, 노동자로서 노동 기본권을 인정받을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본인이 묻히고 싶어 했던 장소에 올라가며 이지현 조합원이 정말 착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 조합원, 언니의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1시간 동안 도봉산 야간산행을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달빛을 벗 삼아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언니가 있고 싶다는 장소에 도착하니 서울 시내 불빛들이 아름답게 넓게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언니가 조합원들이 평소 몸관리와 운동을 하지 않으니까 1년에 한번쯤 자기가 보고 싶을 때, 한 시간 가볍게 등산을 하면서 자길 만나주길 바랬던 같다는 이야기를 조합원들끼리 나누었습니다. 도착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는 곳에 묻힌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수영 사무국장이 故 이지현 조합원을 도봉산 자락에 모시고 온 이야기를 전해준다.

1999년 재능교육 노동조합을 만들 때 함께 했던 故 이지현 조합원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할 때, 연대투쟁을 갔다가 지지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되었다. 당시 해고된 9명의 재능교육 교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동료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조합원 3,800명이 넘는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을 건설하게 된다. 이후 故 이지현 조합원은 2000년 1월에 복직하여 2003년까지 노동조합 법규부장으로 활동해왔다.

또, 2001년도 임금협약 중에 재능교육 사측의 기만적인 교섭 행태에 대항하는 2차 파업과 그 이후 사측이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조합비를 가압류 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의 급여가 가압류 되었을 때 노조를 지키는 투쟁도 함께 했다. 2003년 이후, 이지현 조합원은 현장에서 재능교육 교사이자 조합원으로 성실하게 생활하였다.

  2007년 봄, 수수료 전면 재개정 투쟁 전에 제주도에서 재능교육 동료들과 함께-가운데가 고 이지현 조합원, 왼쪽이 유명자 지부장

2007년 11월, 故 이지현 조합원은 수수료 삭감에 반대하는 ‘재능교육 수수료제도 전면 재개정’ 투쟁을 위해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 천막을 설치하던 중에 다리 부상을 당해 수업을 할 수 없어 6개월간 휴직을 하게 된다. 재능교육 사측은 휴직이 끝난 후에 이지현 조합원에게 수업을 주지 않았다. 오수영 사무국장은 이 기간 동안 이지현 조합원이 많은 고민을 하며 힘들었을 거라며 재능교육 사측이 이지현 조합원의 죽음에 책임 없다는 태도에 분개했다.

2010년 현장 조합원 집단해고 과정에서 사측은 이지현 조합원을 없는 사람인양 치부하기도 했다. 이지현 조합원은 해직통보서를 받지 못했는데, 보험 관련해서 재능교육에 연락을 했다가 계약해지 사실을 알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그해 12월 그녀는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이지현 조합원은 투쟁하는 다른 조합원들을 염려했다 한다. 오수영 사무국장은 당시 병원에 찾아갔을 때, 몸은 많이 말랐지만 밝은 목소리로 “빨리 해결 돼야 하는데...”라고 이야기하던 故 이지현 조합원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 동지들이 어떤 마음으로 떠나보냈을까?

장례일정을 함께 한 임용현 사노위 서울대표는 이지현 조합원의 죽음에 조합원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많이 슬펐다고 했다.

“저는 돌아가신 조합원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동지가 어떻게 노동조합 투쟁을 하셨는지 역사도 모릅니다. 어제 제가 슬펐던 건... 그간 가깝게 지낸 동지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이 동지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지현 조합원을 떠나보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슬픔일지 모르겠습니다.”

임용현 씨는 48시간 동안 이지현 조합원과 현대자동차 신승훈 동지가 떠나간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두 동지가 떠나갔던 소식을 들으며 할 수 있는 게 고개 떨구고 슬퍼하는 것 뿐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오늘까지는 슬퍼하자는 생각에서 선곡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나온 배경은 달라도 재능동지들의 마음과 비슷할 듯 합니다.”

구자혁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 가수 김광진의 <편지>를 반주도 없이 부른다. <편지>는 가수 김광진 씨의 아내가 자신을 사랑했던 이에게 받은 편지 내용을 가사로 만든 것에 김광진 씨가 곡을 붙인 노래로 알려져 있다.


자신을 ‘비정규직 배우 노동자’라고 소개한 맹봉학 씨도 트위터로 소식을 접했다며, 재능교육 투쟁이 승리하고 사장이 사과할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맹봉학 씨는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과 <식객>,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연극 <반도체 소녀> 등에 출연한 중견배우이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에서 준비한 따끈한 어묵이 문화제 참석자들 앞에 하나씩 놓여진다. 이 날 문화제를 위해 진보신당 서울시당에서는 그 전날부터 홍합과 게 다리, 무와 멸치, 다시마 등으로 국물을 냈다고 한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유명자 지부장이 마지막 발언을 위해 마이크를 잡는데, 눈 옆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눈 밑에 시퍼런 멍 자욱도 있다. 전날, 장지에 도착한 시간이 8시였는데, 그 과정에서 목표지점 2백 미터를 남겨두고 바위에 부딪혀 다쳤다고 한다. 산행을 하기엔 부적절한 복장을 한 상태에서 갑자기 소식을 듣고 빈소에 달려가 2박 3일을 보냈는데, 산행에 부적절한 신발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유명자 지부장이 설명한다. 故 이지현 조합원과 동갑 친구인 유명자 지부장은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해주어 떠나간 지현이도 고마워 할 것 같다.”며 감사인사를 했다.

또, 정말 나을 줄 알고 신경을 못 쓴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주위 사람들에게 폐 안 끼치려 하다 빨리 간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유지부장은 “그 친구 몫까지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 산자락이 내 것인 양 도봉산 끝자락을 보는 게 너무 좋습니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그 자리가 좋습니다. 처음 노동조합을 시작할 때의 긍지를 갖고, 저희도 건강 챙기고, 힘차게 싸우겠습니다.”라는 말로 발언을 정리한다.

<비정규직철페연대가> 합창으로 문화제가 끝나고, 문화제에 함께 했던 연대동지들이 깔판을 갖고 와서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앉아 어묵을 먹는다. 밖에 앉아 있어도 그다지 춥지 않은 포근한 날씨다. 어느새 맥주 한 병과 소주 두병이 와있다. 재능교육 투쟁 1,488일 차,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가 정겨운 겨울밤이다.

  이동수 화백이 그린 고 이지현 조합원 캐리커쳐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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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 재능교육 ,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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