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을 추운 거리로 불러냈는가

[뚜벅뚜벅](3) 2월 7일(9일차) 희망뚜벅이 안산 도심을 걷다

내려간 수은주, 그래도 뚜벅이는 희망을 싣고 간다

뚜벅이의 하루는 보통 7시에 일어나 걷기를 마치면 방문한 지역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겸한 뒤풀이를 하고 조별 평가를 마치면 12시쯤 끝난다. 하루 종일 걷는 것 치고는 빡센 편이다. 9일차 7일은 더욱 빡셌다. 며칠 봄날처럼 잠깐 풀렸던 날씨는 7일 아침부터 수은주를 끌어내려 체감온도 영하 21도까지 떨어뜨렸다. 7일 아침엔 한 시간을 당겨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안산지역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매일 혼자 출근투쟁(출투)과 선전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뚜벅이 모두가 7일 아침엔 그 노동자의 출투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6시에 일어나 6시30분부터 시작한 출투 선전전을 마치고 아침을 먹고 오전 9시 안산역에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저녁에 진행할 시 낭송회와 백일장을 위해 작가들의 모임인 리얼리스트100 동지들이 대거 새 얼굴로 등장했다. 작은 깃발까지 준비해 시작부터 함께 했다.

  뚜벅이들이 7일 오전 안산역을 출발하면서 탬버린 등을 챙겨들고 9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출처: 이정호]

희망 뚜벅이, 안산 도심을 걷다

안산역 일대는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곳이다. 일요일 낮 안산역과 주변 시장과 공원엔 한국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여러 나라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

영화 방가방가의 주무대도 이 곳이었다. 안산시 안산역 맞은 편 재래시장길을 다문화 거리로 조성하기도 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주로 모여 있다. 그런 만큼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간판들이 즐비하다.

  가다가 힘들면 노래에 맞춰 율동도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춥다 [출처: 이정호]

8km쯤 걸어 안산시청에서 낮 12시 거리 선전전을 했다. 점심을 해결하고 2시부터 중앙대 박창은 교수의 글쓰기 이야기를 듣고 참가자 전원이 한 시간 남짓 자기 생각을 정리해 글을 썼다. 다 쓴 글은 심사위원을 맡은 작가들의 손에 들어갔다.

누가 20살 청춘을 거리로 불러냈는가

3시반 다시 걸었다. 어제 야간작업을 마치고 잠 한숨 못자고 아침에 결합했던 3M 조합원들이 다시 야간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돌아갔다. 포스트잇과 수세미 등을 만드는 한국3M의 기업 이미지는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3M은 악질 노조탄압 사업장이다. 해고자도 많이 만들었다. 이번 주부터 결합해 후반기 일주일을 함께 한 예비 대학생은 “밤을 새운 야간작업 사이의 휴식을 하루 뚜벅이로 모조리 헌납하고 가는 3M 노동자들에게 깊이 감명 받았다”고 했다. 이 학생은 다음 3월이면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이 된다.

함께 걷는 뚜벅이 중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도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벌써 이틀째 낯선 발걸음을 옮기는 그 녀석이 대견하다. 아니, 부끄럽다. 누가 20살 청춘을 거리로 불러냈는지. 그와 나눈 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에 글에서 한기로 한다.

  서울대 입학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뚜벅이가 되겠다고 참가한 노상균 군 [출처: 이정호]

자본가가 먹어야 할 술, 귀밝이술

저녁 7시까지 걸어 안산중앙역에서 낭송의 밤 행사를 열었다. 작가들의 시는 희망버스 구속자 송경동 시인의 시로부터 시작했다. 작가들은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 세종호텔 등 4명의 뚜벅이가 쓴 글을 당선작으로 뽑은 뒤 자신들의 시집을 여러 권 상품으로 내놨다.

  (사진 왼쪽) 안산시외버스터미널 옆 재벌회사의 대형할인마트엔 ‘혁명’이 상품이 돼 팔려 나간다. ‘가치상품’도 좋고 ‘1등품질’도 좋지만 ‘물가안정’은 좀 그렇다. 재벌 회사 물건 많이 사주면 물가가 안정되나? (사진 오른쪽) 새누리당(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날 아침, 식전 댓바람부터 “비정규직 문제, 정말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긴가민가 했는데 뚜벅이들의 저녁 시 낭송회가 열린 안산중앙역 앞에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던 한 예비후보가 ‘비정규직 임금 근로조건 격차해소 특별법 제정 추진’이란 선거용 현수막을 걸어 놨다. 이것들이 진짜 미쳤나 보다 [출처: 이정호]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 동지는 <귀밝이술>을 소재로 글을 썼다. 어제였던 정월대보름에 마신다는 귀밝이술을 자본가에게 좀 먹이자는 주문이었다. 코오롱 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은 아이 학교에 아버지 직업을 뭐라고 써야 할지를 놓고 벌인 아내와 딸, 자신의 작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았다.

내일은 더 춥고, 오전에만 수원까지 18km 넘게 걸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밤 숙소는 찜질방이다. 몸이라도 좀 녹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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