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하루는 보통 7시에 일어나 걷기를 마치면 방문한 지역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겸한 뒤풀이를 하고 조별 평가를 마치면 12시쯤 끝난다. 하루 종일 걷는 것 치고는 빡센 편이다. 9일차 7일은 더욱 빡셌다. 며칠 봄날처럼 잠깐 풀렸던 날씨는 7일 아침부터 수은주를 끌어내려 체감온도 영하 21도까지 떨어뜨렸다. 7일 아침엔 한 시간을 당겨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안산지역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매일 혼자 출근투쟁(출투)과 선전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뚜벅이 모두가 7일 아침엔 그 노동자의 출투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6시에 일어나 6시30분부터 시작한 출투 선전전을 마치고 아침을 먹고 오전 9시 안산역에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저녁에 진행할 시 낭송회와 백일장을 위해 작가들의 모임인 리얼리스트100 동지들이 대거 새 얼굴로 등장했다. 작은 깃발까지 준비해 시작부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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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이들이 7일 오전 안산역을 출발하면서 탬버린 등을 챙겨들고 9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출처: 이정호] |
희망 뚜벅이, 안산 도심을 걷다
안산역 일대는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곳이다. 일요일 낮 안산역과 주변 시장과 공원엔 한국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여러 나라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
영화 방가방가의 주무대도 이 곳이었다. 안산시 안산역 맞은 편 재래시장길을 다문화 거리로 조성하기도 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주로 모여 있다. 그런 만큼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간판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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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다가 힘들면 노래에 맞춰 율동도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춥다 [출처: 이정호] |
8km쯤 걸어 안산시청에서 낮 12시 거리 선전전을 했다. 점심을 해결하고 2시부터 중앙대 박창은 교수의 글쓰기 이야기를 듣고 참가자 전원이 한 시간 남짓 자기 생각을 정리해 글을 썼다. 다 쓴 글은 심사위원을 맡은 작가들의 손에 들어갔다.
누가 20살 청춘을 거리로 불러냈는가
3시반 다시 걸었다. 어제 야간작업을 마치고 잠 한숨 못자고 아침에 결합했던 3M 조합원들이 다시 야간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돌아갔다. 포스트잇과 수세미 등을 만드는 한국3M의 기업 이미지는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3M은 악질 노조탄압 사업장이다. 해고자도 많이 만들었다. 이번 주부터 결합해 후반기 일주일을 함께 한 예비 대학생은 “밤을 새운 야간작업 사이의 휴식을 하루 뚜벅이로 모조리 헌납하고 가는 3M 노동자들에게 깊이 감명 받았다”고 했다. 이 학생은 다음 3월이면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이 된다.
함께 걷는 뚜벅이 중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도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벌써 이틀째 낯선 발걸음을 옮기는 그 녀석이 대견하다. 아니, 부끄럽다. 누가 20살 청춘을 거리로 불러냈는지. 그와 나눈 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에 글에서 한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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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입학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뚜벅이가 되겠다고 참가한 노상균 군 [출처: 이정호] |
자본가가 먹어야 할 술, 귀밝이술
저녁 7시까지 걸어 안산중앙역에서 낭송의 밤 행사를 열었다. 작가들의 시는 희망버스 구속자 송경동 시인의 시로부터 시작했다. 작가들은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 세종호텔 등 4명의 뚜벅이가 쓴 글을 당선작으로 뽑은 뒤 자신들의 시집을 여러 권 상품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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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 안산시외버스터미널 옆 재벌회사의 대형할인마트엔 ‘혁명’이 상품이 돼 팔려 나간다. ‘가치상품’도 좋고 ‘1등품질’도 좋지만 ‘물가안정’은 좀 그렇다. 재벌 회사 물건 많이 사주면 물가가 안정되나? (사진 오른쪽) 새누리당(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날 아침, 식전 댓바람부터 “비정규직 문제, 정말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긴가민가 했는데 뚜벅이들의 저녁 시 낭송회가 열린 안산중앙역 앞에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던 한 예비후보가 ‘비정규직 임금 근로조건 격차해소 특별법 제정 추진’이란 선거용 현수막을 걸어 놨다. 이것들이 진짜 미쳤나 보다 [출처: 이정호] |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 동지는 <귀밝이술>을 소재로 글을 썼다. 어제였던 정월대보름에 마신다는 귀밝이술을 자본가에게 좀 먹이자는 주문이었다. 코오롱 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은 아이 학교에 아버지 직업을 뭐라고 써야 할지를 놓고 벌인 아내와 딸, 자신의 작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았다.
내일은 더 춥고, 오전에만 수원까지 18km 넘게 걸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밤 숙소는 찜질방이다. 몸이라도 좀 녹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