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진실 강조했지만 사실관계 프레임 못 벗어나

투표 부실관리 전제 깔고, 조직적 부정선거 없었다는 여지 남겨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의혹이 상식수준에서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됐지만 이정희 공동대표는 여전히 사실관계와 행위정도에 따른 처벌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3일 오전 통합진보당 대표단 회의

이정희 대표의 이 같은 태도는 2일 당권파의 핵심인 이의엽 정책위 의장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조준호 대표의 발표를 두고 조사의 절차적 문제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의엽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 내용을 두고 이정희 대표와 의논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대표는 3일 오전 통합진보당 대표단 회의에서 “온라인 투표의 안전성을 확실히 보장하지 못해 우려를 드린 점, 부정투표가 이루어질 환경을 만들어낸 현장투표의 관리부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 상황과 이유가 어떠했든 저 스스로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정희 대표의 발언은 이의엽 의장이 강조한 투표 부실관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 조직적인 부정투표는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는 당권파들이 이번 부정선거 논란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정희 대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비례대표 사퇴 문제 등 당권파 전체의 책임과는 선을 긋는 모양새도 드러냈다.

이정희 대표는 이어 진실의 힘을 믿자고 강조했지만 여전히 사실관계를 강조했다. 이는 이의엽 의장이 전날 제기한 ‘선 구체적 부정 사례 적발, 후 책임론’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식으로만 보면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자기 당 당선자의 제수 성폭력 의혹이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정희 대표는 “제가 어떤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떠나서 제 양심에 기초하여 오직 진실의 힘을 믿고 이 사태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어떤 경선 후보자들에게, 어떤 부정의 경과가 담긴 표가 주어졌는지, 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조사결과서를 보기 전에 말씀드린다. 사실을 더도 덜도 없이 낱낱이 드러내고 근거가 부족한 의혹이나 의심에 기초한 추측을 배제한 후 행위 정도에 따라 관련자들이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 부정투표 의혹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기에 논란의 여지없이 사실이 정확히 파악되어서 당원들과 국민들께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정희 대표는 “개인 사이의 관계, 또는 유관단체와의 관계,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실관계를 완전히 밝히고 빠짐없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그래야만 통합진보당에 미래가 있고,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주어졌던 국민들의 기대를 다시 모을 수 있다”고 밝혔다.

투명하게 사실관계를 밝히자는 취지지만 이미 부실한 선거관리와 투표시스템으로 인해 구체적인 부정사례를 찾기 어려운 조건인 상황임을 감안하면, 현 상황에서 사실관계나 행위 정도를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조준호, 심상정, 유시민 공동대표는 당이 어떻게 책임지고 쇄신해야 국민에게 신뢰를 받을지를 주로 강조했다.


유시민 대표는 “이 일들은 누가 했든, 어떤 목적으로 했든, 계획적으로 했든, 깊은 생각 없이 했든, 여하튼 국민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당이 한 일”이라며 “어떤 행위를 한 당원 개개인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하나의 정당으로서 국민 앞에 분명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대표는 조준호 대표의 진상조사결과 발표에 강한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유시민 대표는 “진상조사위원회는 구성될 때 공동대표들의 합의에 의해 저희가 전권을 다 위임해 드렸고, 지극히 독립적으로 조사를 수행하셨다”며 “5월 2일 발표를 하게 된 것은, 이틀 전 대표단 워크샵에서 공동대표들이 2일 오전에 발표하기로 이미 합의했던 사항이다. 실무 착오로 제 때 브리핑되지 않아 발표시점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혼선이 있었던 것처럼 보도가 되었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이어 “저는 유권자와 시민들이 대체로 어제 진상조사위의 자체조사 결과를 신뢰하고 존중하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다만 국민 앞에 책임지기 위해서 밝힐 것은 밝히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혁신할 것은 혁신하는 것이 제대로 책임지는 행동이다.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심상정 대표도 “당의 집행을 주도한 실제적 책임을 분명히 규명하더라도 당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 당 대표단의 도의적 책임은 당연한 일”이라며 “문제는 책임지는 것이 문제를 봉합하는 수준이거나, 쇄신의 의지를 축소하는 것이 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대표는 “그런 문제인식 속에서 저희가 좀 더 신중하고 총체적인 쇄신 고민을 하고 있다”며 “이 사태의 실체적 책임, 도의적 정치적 책임, 개선 방안, 그리고 필요하다면 비대위 구성을 포함해서 재창당의 각오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준호 대표는 “지금 우리 안의 허물이 있더라도 드러내놓고 우리가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단순히 외형적으로 몇 가지를 고친 모습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국민 여러분들에게 맞을 매는 맞고, 변화할 것은 변화하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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