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정말 나아지고 있을까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아직 오지 않은 학살을 생각하며

1.

아는 형님 하나는 술 한 잔 나눌 때면 꼭 사육신 가운데 하나인 성삼문 이야기를 꺼낸다. 성삼문이 하도 말을 안 들으니 수양대군이 성삼문 아버지를 잡아다 놓고 아들 앞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로 몸을 지졌다. 눈앞에서 아버지 살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성삼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는 온몸이 검붉게 익어 죽었다. 이어 수양대군은 성삼문의 어린 아들을 데려와 자루 속에 처넣고 몽둥이로 마구 두들기며 온몸을 짓이겨 죽였고 그제야 성삼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수양대군이 그걸 보고는 손가락질을 하며,
“지 아버지는 인두로 지져도 가만히 있더니 지 새끼를 죽이니까 눈물을 흘리는구나!”
그러자 성삼문은 이렇게 말했다.
“제 아버지는 자기가 왜 죽는지는 알고 죽지만 저 어린놈은 자기가 왜 죽는지 모른 채로 죽지 않았습니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그 형님은 꼭 이렇게 덧붙인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를 산 채로 깨트려 죽이던 그 시절보다 지금이 조금쯤은 나아졌을 거야. 그걸 믿고 가야 하겠지?”
나는 형님의 말에 맞장구를 친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이 세상은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나아졌다면 누구의 삶이 얼마큼?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소설 <쿠오 바디스>에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교도들을 한데 모아 잔인하게 학살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대경기장에 풀어 놓은 사나운 짐승들에게 밥으로 주기도 하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도 하고, 기둥에 묶은 뒤 불을 붙여 산 채로 인간 횃불을 만들기도 한다. 로마의 귀족들은 그런 꼴들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떼 지어 구경하러 온 평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학살을 즐겁게 감상한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학살은 먼 옛날에 벌어진,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 여겨질 것이다. 어쩜 그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지금으로부터 오백 년쯤 지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돌이켜 보게 된다면, 우리가 죽는, 혹은 죽임을 당하는 방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학살이라 생각하는 것을 먼 옛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먼 미래 사람들은 우리가 평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주 끔찍한 학살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거죽만 달리 뒤집어 쓴 채로 돌고 도는 것은 아닐까?
많은 숫자를 단번에 잔인하게 죽이는 것만이 학살일까?
학살과 학살이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

2.

세상에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죽어 가지만 나는 그 가운데 몇몇 소식들만 접할 수 있다. 죽음들마다 사연 없는 죽음이 없겠지만 내게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은 딱 두 죽음으로 나뉜다. 나의 죽음과, 나를 뺀 다른 사람들의 죽음.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죽음을 ‘소식’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소식으로 전해지는 죽음은 반드시 주검과 함께 오지는 않는다. 주검이 없는 죽음도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길로 내몰린 사람들의 어두컴컴한 얼굴은 오히려 죽음보다 훨씬 더 섬뜩하다.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접할 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뭔가 옳지 못한 특권이라도 쥐고 있는 듯 거북해지기도 하고, 어차피 죽여서 먹는 건 똑같은데 고통 없이 도살하는 것이 짐승을 위한 도리라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위선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떻게 죽든 죽음은 죽음이다. 어떻게 내몰리든 죽음으로 가는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헤살을 놓는 바람에 자신이 바라는 즈음에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죽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로마 시대든 조선 시대든 지금이든 여전히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지금 얼마 전부터 다니게 된 어느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이 굶으라는 법은 없는지 또 용케 일자리를 구해서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오늘(16일) 오전에는 사무실 사람과 함께 ‘밀양 송전탑을 보도하는 언론의 양심과 역할’ 토론회를 다녀왔다.


그렇다. 밀양이다. 언제부턴가 밀양이라는 땅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광주’나 ‘제주’, ‘부안’, ‘용산’ 같은 이름처럼 뭔가 아프면서도 비릿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밀양 아리랑의 밀양도, 배우 전도연이 나오는 영화 밀양도 아닌, 죽음의 땅 밀양. 아직 오지 않은 죽음으로 가득 찬 밀양. 멀쩡히 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고 있는, 군홧발과 송전탑의 땅 밀양.

밀양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잘 살기 위해서이다. 살기 위해 죽으려 한다. 왜? 그 길 말고는 남은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밀양이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입에서 피 맛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제도 오늘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살아가고 있다.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송전탑이라는 괴물에 온몸으로 맞서는 밀양 주민들을 ‘종북 빨갱이’ 또는 ‘보상금 사냥꾼’으로 그리는 몇몇 부자 언론들을 모조리 도마에 올렸다. 심보가 고약한 밀양 주민들이 자기 땅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해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큰 도시가 마음껏 갖다 쓸 전기가 필요하니 지방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군소리 말고 송전탑 밑에 깔리면 된다고 우기는 정부와 한전이야말로 이번 일을 일으킨 나쁜 놈들이라는 말도 나왔다.


손자뻘인 경찰들과 싸우다가 언제 뒷목 잡고 세상을 등질지 모르는 어르신들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에 밧줄을 걸었다. 구덩이와 밧줄은 눈에 빤히 보이는 것들이라 그것들을 가지고 얼마든지 말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10월 7일자 조선일보 1면을 보면 ‘통진당 당원들, 밀양 송전탑 현장에 무덤 구덩이 파고 올가미 줄 내걸어’라는 식으로 기사 제목을 뽑아 놓았다) 나는 그 어르신들이 품고 있을 절망의 깊이가 과연 얼마나 될지 구덩이와 밧줄만으로는 조금도 헤아려 볼 수 없기에 감히 어르신을 위한답시고 함부로 뭐라 지껄일 수도 없다. 허나 죽음으로써 살아야 할지 살기 위해서 죽어야 할지 몰라 치가 떨리도록 괴로워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토론회에 나온 경남도민일보 지부장은 밀양 주민들의 싸움이 자그마치 8년을 끌어 왔다고 했다.

8년. 늦게나마 정부와 한전이 정신을 차려 송전탑이고 뭐고 죄다 집어 치운다고 해도 이미 바닥이 안 보이도록 깊숙이 파인 절망의 구덩이가 과연 얼마큼이나 메워질 수 있을까? 8년 동안이나 파헤쳐진 절망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아마 이런 글조차 밀양의 어르신들은 쓸데없는 짓거리라고 생각하실지 모른다.

차라리 밀양을 몰랐다면 나는 다른 굵직한 화젯거리에 마음을 기울일 있었을 것이다. 힘센 무리들이 편을 짜서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때려누이는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 맛있게 먹을 밥과 편하게 잠 잘 집을 여전히 소중하게 끌어안고 살고 있는 나는 쌍용차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는 장애인들, 일터에서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길거리에 납작 엎드려 손만 벌리고 있는 노숙자들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 양심을 달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죽임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학살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학살당하는 중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밀양이 더해졌다. 죽음은 학살의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누군가가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기로 뜻을 세운 순간 이미 학살의 톱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고,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이 스스로 목을 매거나 경찰들의 방패에 찍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숨통이 끊어진다고 해도 학살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놈들은 금세 다음 먹잇감을 찾아 핏발 선 눈으로 두리번거릴 것이다. 죽음은 학살이 훑고 지나가는 길목 곳곳에 자리한 돌부리 같은 것이다.

즉 길에 잔뜩 널린 학살 무더기에 밀양이라는 학살 하나가 더 굴러 떨어져 박힌 것이다. 나는 내 삶과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수많은 학살들 가운데 가장 사소한 학살도 막지 못한다. ‘학살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디게 흐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비둘기가 물 쪼아 먹듯 조금씩 할 수 있을 뿐이다.

밀양 송전탑이 기어이 세워진다고 해도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뒤흔들리거나 거꾸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송전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밀양이든 뭐든 다 잊어먹은 채 결국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밀양이 아닌 다른 어딘가의 학살에 마음을 쏟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아예 신경을 꺼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신경을 쓸 수 없도록 술에 흠뻑 취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든 끼어들어 글이라도 써야 하는지, 백 년 전 사람들처럼 도시락 폭탄이라도 만들어 나쁜 놈들한테 던져야 하는지, 남극으로 훌쩍 떠나 얼음집 안에 웅크려야 하는지, 지금이라도 악기 하나를 배워 음악이나 만들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대마를 몰래 구해 피우며 시름 걱정을 죄다 잊어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맑스의 <자본>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종이에 적어보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가는 것으로 내 양심을 가라앉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이미 와 버린 학살과 아직 오지 않은 학살 사이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하느냐고.

3.

처절한 기타맨 형님께

형님. 음반 녹음은 잘 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대머리 살인마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날인 12월 12일에 첫 음반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하셨으니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네요. 이 넓은 세상에 형님의 노래 한 자락이 가 닿을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노래란 바람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곁에만 잠깐 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고 또 그것으로 족하겠지요.

어제(19일)는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서울 시청 광장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라 해거름이 빨리 지나 버린 탓인지 어둠침침한 광장에 가득 모여 있는 촛불들이 꼭 반딧불 떼가 모여 있는 것 같았지요. 국정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곳은 이제 더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하지 못하나 봅니다. 하긴 철없는 꼬마 애들이나 할 짓을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는 형편이니 국정원인지 개밥그릇인지 하는 것을 두려워 할 이유는 전혀 없겠지요. 국정원과 대통령은 사람들이 저마다 들고 있는 새빨간 손자보에서 이러저러한 말본새로 신나게 씹히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가 보았더니 머리털 허연 분들이 잔뜩 모여 있더군요. 무대 위에서는 웬 양복쟁이 아저씨 한 분이 마이크를 집어삼킬 것처럼 입을 쩍 벌리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데 낱말들 몇 개 말고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북, 빨갱이, 민주당, 통진당, 전교조......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현수막에 씌어진 ‘대한민국재향경우회’, ‘한국고엽제전우회’ 같은 이름들이 보였고 군복을 갖춰 입고 나온 할아버지들이 그 곁에서 고대 화석처럼 꼼짝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집채만 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는데요. 크레인에 높다랗게 매달아 시청 광장 쪽으로 대놓고 돌려놓은 스피커였습니다. 이 할배들이 누굴 엿 먹이려고 이러는지 뻔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이었지요. 저는 대체 뭘 바라고 이 많은 어르신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우르르 몰려 나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돈 몇 푼에 동원된 게 아니라 차라리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발길을 옮겨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불쌍했거든요. 살아갈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까지 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더 불어나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온 사람들과 자리를 잡고 앉아 우두커니 무대를 바라보았지요.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건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는 소리를 한껏 높인 군악대 행진곡 같은 노래들이 거푸 흘러나왔지요. 시끄러운 소리가 어찌나 그악스럽던지 촛불 집회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목청을 높이느라 목소리가 다 갈라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6.25 노래가 꽝꽝 울려나오는 걸 들으면서는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는데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던 단과대학의 학생회장 놈과는 친한 사이여서 회의가 끝나면 학생회실에서 자주 술을 마시고는 했는데요. 그날도 둘이서 오붓하게 한 잔 하고 있는데 마시다 제법 취했는지 이놈이 갑자기 팔뚝질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보통 때는 ‘주한미군 철거가’나 ‘국가보안법 철폐가’ 같은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왜 이 따위 노래를 부르는지 처음에는 뜨악했지요. 웃음 걷힌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실실 웃으며 조금만 더 들어보라는 듯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여기서 녀석은 부르던 빠르기를 늦추더니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발음했지요.

미제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저와 친구 놈은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낱말 하나 바꾼 것뿐인데 가사 내용이 180도 달라졌으니까요. 이렇게 살짝 가사를 바꿔 저쪽에 계신 애국 할배들 앞에서 6.25 노래를 불러 보면 어떨까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무대에는 어느덧 전교조 선생님들이 올라와서는 짤막한 연극과 노래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광장 한구석에 세워진 천막 농성장에서는 정권의 전교조 탄압에 맞서는 ‘단식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지요. 생각보다 높게 나온 투표율도 놀라웠지만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즉 전교조가 ‘불법’ 노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합원이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은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수원 쪽 학교에서 일하며 전교조 조합원으로 살고 있는 친구 놈 하나도 집회에 왔다고 해서 연락을 해 보니 광장에 오자마자 급한 집안일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하더군요. 저는 ‘니가 전교조를 살렸다’는 손전화 문자를 보내주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광장을 빠져나갔고 같이 온 사무실 사람들도 인사를 나누고는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저는 광장 한구석으로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어느새 고즈넉해진 광장을 바라보았지요.

언젠가부터 저는 촛불만 들고 모여 자기네들끼리 한참 동안 실컷 쿵짝거리다가 행사가 끝나면 촛불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으로 휙 돌아가는 사람들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깨시민’이라는 말이 있죠? ‘좌좀’이나 ‘빨갱이’처럼 너절한 낱말이긴 하지만 저는 얌전히 촛불만 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우르르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도대체 무얼 거꾸러뜨리겠다는 건지, 그런 얌전한 짓거리로 뭘 바꿔 보겠다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어서 ‘흔히 말하는 촛불시민들이 바로 깨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저들은 그저 자신의 양심을 달래기 위해 꾸역꾸역 이 자리에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 자신을 ‘깨어 있는 시민’이라 생각하며 자위를 하는 건 아닐까. 촛불집회에 들렀다 가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그저 자기 먹을 밥과 자기 잠 잘 곳을 소중히 간수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날마다 뉴스에 나오는 국정원과 부정선거 얘기에는 관심이 있으면서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노동자들의 사연은 까맣게 모르고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청와대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앉아 밑엣것들에게 손짓 고갯짓으로만 할 말 다 하는 최고 권력자라면? 정말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시청 광장에 나왔다가 쓰레기만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뭐라 뭐라 부르짖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 봤자 광장에 모인 것들은 경찰의 벽을 뚫을 수도 없고 뚫으려 하지도 않겠지. 마음속에 맺힌 것들이나 풀 수 있도록 촛불 집회인지 뭔지만 하게 내버려 두면 지들이 알아서 신나게 떠들어 대다가 제풀에 지쳐 집에 돌아갈 거야. 몇몇 시위꾼들이 이대로 청와대로 밀고 가자고 앞장선다고 해도 분명 다른 누군가가 비폭력을 외치며 그들을 막아서겠지. 비폭력이라는 것에 사로잡힌 무리들만큼 다루기 쉬운 것도 없어. 숫자가 불어나지만 않게 그것들을 잘 고립시킨다면 걱정할 건 조금도 없을 거야. 촛불만 들었다가 내빼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지. 아버지가 그랬듯 종신 집권을 위해 헌법을 뜯어 고친다고 내가 내일 당장 선언해도 이 나라 사람들은 비폭력만 외치며 우왕좌왕 시청과 광화문 거리만 헤매고 다닐 걸? 다스리기 참 편한 나라야.’ 제가 대통령이라면 아마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근데 오랜만에 광장에 나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니 좀 다른 생각이 들더라구요. 혹시 지하철 타 보셨나요? 버스 타고 다니신다고 했으니 형님은 버스를 생각하면 될 테지만, 저는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타고 일터를 오가거든요. 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저는 사람들로 꽉꽉 채워진 탈것을 너무나도 싫어해서 차라리 잠을 줄이고 아침에 일찍 나와 텅텅 빈 지하철에 타는 편인데요. 그런데도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손잡이만 움켜쥐고 가만히 서서 시꺼먼 차창 밖을 보고 있거나 자리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만 미쳐 버릴 것 같지요. 그래서 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다들 손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심지어 뜨개질을 하거나 하니까요.

그런데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은 끔찍하지요. 아침에 일찍 나오면 밥이고 단무지고 시금치고 당근이고 뭐고 가득 찬 김밥처럼 온갖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피할 수 있지만 퇴근길 지옥철을 피하겠다고 일터에서 일부러 늦게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몸에서 힘을 빼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이 가득 들어찬 지하철 안에서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으니 책은커녕 음악을 듣기도 힘들어요. 그럴 때는 야한 생각을 한다거나,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한 편 만들어 본다거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역 이름을 외운다거나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시청 광장에 촛불 들고 모이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먹고살 걱정은 없을지언정 바보는 아닐 테니 고작 촛불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정권을 거꾸러뜨리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지요. 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운동’들 있죠? 3.1 운동, 4.19 혁명, 6월 항쟁 등등. 역사 교과서는 이 운동들이 저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쓰고 있지요. 3.1 운동은 일제의 무단 통치를 문화 통치로 바꾸었고, 4.19 혁명으로는 이승만을 끌어 내렸고, 6월 항쟁으로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근데 이 운동들은 하나 같이 무척이나 ‘폭력적’인 집회들이었어요. 일제든 독재 정권이든 군대와 경찰을 몰고 와서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짓밟은 건 똑같았으니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사람들은 비폭력이 아닌 ‘폭력’을 휘두른 셈이 되지요. 역사 교과서는 그 폭력을 굉장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으로 그리고 있구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지요. 폭력으로 짓밟으려 하는 나쁜 놈들은 오로지 폭력으로써만 꺾을 수 있었어요.

정말 정권을 바꾸어 버린 4.19조차 ‘미완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마당에 정권은커녕 경찰청장 하나 끌어 내리지 못한 몇 년 전의 촛불 집회는 혁명도 뭣도 아닐지 모르지요. 아직도 촛불 들고 나선다고 ‘촛불 좀비’라고까지 불리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구호만 외치고 집에 가는 ‘범국민대회’는 일요일마다 있는 기독교 예배와 다를 게 없을 수도 있어요. 바꾸자고 소리는 지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촛불을 들고 있는 자신의 마음속을 일주일마다 한 번씩 새롭게 다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권의 뒷목을 내려찍는 폭력적인 힘으로 모아지지 않는다면야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자꾸만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저 역시 그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어요. 폭력과 비폭력을 고민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그들이나 저나 집과 일터에서 잠자코 웅크린 채로 살기엔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는 점에선 같았지요. 저를 비롯한 모두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 돌아버릴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저는 아내도 자식도 없으니 홑몸으로 돌아다닐 수나 있지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쇠사슬에 묶인 듯 옴쭉달싹 못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 가운데서도 자기 식구들 입에 들어갈 것만 걱정하며 정말 일요일 예배라도 보듯 습관처럼 광장에 촛불 들고 나와 양심만 달래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 한구석에도 도저히 풀리지 못하고 있는 어떤 울분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치 홍수나 지진을 지켜볼 때처럼, 무지막지한 힘 앞에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움츠러들고 만 무언가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이 더러운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토요일 저녁에 굳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을 더 해야 할지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라고 썼지만 사실 저도 마찬가지지요.) 폭탄을 등에 이고 청와대로 쳐들어가야 할까요? 아니면 광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하고 경찰과 맞서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주술의 힘이라도 빌려 나쁜 놈들이 다 몹쓸 병에 걸리기를 바라야 할까요? 이런 것들을 죄다 희떠운 소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가장 ‘과격한’ 투쟁은 바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애국 어르신들이 소리 쩡쩡 울리는 스피커로 내보내는 호통 소리에 맞서 우리도 여기에 이만큼이나 모여 있다고 맞고함 질러주는 것 역시 노동자들의 단식 농성이나 고공 농성만큼이나 소중한 싸움이 될 수도 있는 거지요.

노동자들도 밥을 끊거나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해서 농성을 벌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사측은 노동자들이 굶어 죽든 떨어져 죽든 목소리를 들어 주는 법이 없지요. ‘범국민대회’라는 으리으리한 이름으로 치러지는 촛불 집회 역시 막다른 곳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등 돌린다면 정말 ‘깨시민’들의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게 될 거예요. 근데 저는 설사 촛불 집회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의 자위행위에 그친다고 해도 오히려 그것에는 그것 나름대로의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들은 흔히 골방에서 자위행위를 하지요. 포르노를 보거나 야한 생각을 하며 자위를 할 때 누군가를 불러다 놓고 그 꼴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촛불 집회는 적어도 골방에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비록 전경 버스들이 벽처럼 늘어서서 광장을 둘러싸긴 하지만 시청 부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뉴스를 챙겨 보는 사람들은 토요일 저녁마다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어요. 아마 청와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그분도 알고 있겠지요. (혹시라도 불안해하고 있을까요?) 그건 그 나름대로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자기 글을 잘 팔아먹을 줄 아는 글쟁이라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거예요.

견딜 수가 없는 사람들. 하지만 더 견뎌야 하는 사람들. 그래서 견디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 글쎄요. 자위행위가 나쁜 건가요? 따지고 보면 모든 ‘운동’의 시작은 자위행위가 아니던가요? 누구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운동만큼 위선으로 흐르기 쉬운 게 어디 있나요? 노동 운동은 노동자를 위해서,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을 위해서, 빈민 운동은 빈민을 위해서 하나요? 그들과는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게 운동인가요? 저는 그런 말이 참 싫어요. 자기가 좋아서 나선 사람들의 힘이 모아져 적들을 향해 똑바로 겨누어지는 것이 운동 아닌가요? 입장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는 같은 외줄을 타고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운동 아닌가요? 중요한 것은 포르노 보고 자위행위 하듯 혼자서만 잠깐 좋고 말 것인가, 아니면 다 같이 오랫동안 좋아지자고 한데 뭉쳐 노력할 것인가가 아닐까요? 반딧불처럼 날아왔다가 반딧불처럼 날아가는 촛불들도 언젠가는 더 굳센 힘으로 뭉쳐 적들의 가랑이를 냅다 올려 찍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움직임을 어떻게든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 다 가고 텅 빈 광장을 바라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 꼭 꿈처럼 느껴지더군요. 반딧불들은 멀리 날아가 버렸고 바람은 아까보다 더욱 차가워진 광장에 혼자 서서 저는 새삼 학살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미 벌어진 학살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학살들. 평택, 강정, 밀양. 쌍용차, 현대차, 재능교육, 골든브릿지, 콜트 콜텍. 용산 학살의 주범을 공기업 사장으로 꽂아 넣는 정권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우리 앞에 뚫려 있는 수많은 길들이 전부 다 학살로 통하는 길이라면, 이대로 살다가 죽어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대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지긋지긋한 시간들을 견디려면 어떤 책을 펼치고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까요? 지하철을 타면 한 시간쯤 걸려 집에 다다르지만, 저의 삶은 적어도 한 시간보다는 더 많이 남아 있으니, 지하철은 내리고 싶을 때 내릴 수나 있지만, 제 삶은 한 번 내리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이니, 그냥 다 필요 없이 술이나 몇 병 먹고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까요?

형님이 자주 꺼내시는 성삼문 얘기 있죠? 적어도 애새끼를 때려죽이는 그 시절보다 아주 조금은 세상이 나아진 게 아니냐는. 근데 제 생각은 그래요. 한 발짝 나아간다 싶으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우리를 뒤로 확 밀쳐 버린다고 할 때, 겨우 그 사람을 떨쳐 내고 다시 한 발짝 걸어간다 싶으면 또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나서 우리를 뒤로 밀어 버린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든 제자리에 있든 뒷걸음질 치든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달리는 차 안에 있어도 옆에서 같은 빠르기로 달리는 차가 있으면 꼭 자신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지 서 있는지 뒷걸음질치고 있는지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라고 묻지 말고 ‘나는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형님은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분이겠지요. 그래서 거기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 하시는 것일 테구요. 그럼 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그저 비슷비슷한 욕망들이 주인만을 달리한 채 세상 속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건 아닌지. 역사에는 도돌이표 같은 것이 있어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다시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 모든 학살과 죽음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냥 끝없이 투쟁해야만 되는 건 아닌지. 사람 사는 세상이 점점 복잡해질수록 학살도 더욱 정교해지고 보호색을 갖추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나아가는 것도 제자리걸음하는 것도 뒷걸음질 치는 것도 아닌, 어쩌면 아직 첫발조차 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인간의 진정한 삶이라는 첫 발짝을 떼기 위해 더 많은 투쟁과 피바람과 눈물과 절망이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가까운 날에 칼라TV 사무실 놀러가겠습니다. 녹음 다 된 곡 있으면 한번 들려주세요. 곁에 막걸리라도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2013년 10월 20일
후배 박병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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