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에 맞서는 용기로 행복을 찾아가는 투쟁

[오늘, 우리의 투쟁]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스스로를 위한 ‘미래의 선택’은 부당해고 복직 투쟁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미래의 선택”에서 별다른 비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주인공 미래는, 인생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아주겠다며 홀연히 나타난 ‘미래에서 온 자신’과 매 순간 갈등을 벌이며 좌충우돌하던 끝에 방송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미래에서 온 자신’을 만난 시점 주인공 미래의 직업은 텔레마케터, 대기업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콜센터 노동자다. 하루 종일 헤드셋을 끼고 앉아 관리자의 닦달을 견디며 온갖 고객을 응대하면서,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붉은 노을”을 불러달라는 진상고객에게 건성의 열창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서른 두 살의 감정노동자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사슬을 끊어낼 용기가 없었던 미래는 스스로를 속이며 나날을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맡겨놓기라도 한 듯 노래를 불러 달라 요구하는 고객에게 “붉은 노을” 대신 속 시원하게 한 바탕 욕을 퍼붓고 사표를 내던진다.

서비스노동자의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환기 덕분인지, 드라마에서도 고단한 콜센터 노동의 일면이 단편적이나마 드러났다. 그렇다면 현실의 노동자들은 어떨까? 물론 현실은 언제나 드라마처럼 간편하지 않다. 크게 마음을 먹는다고 미래처럼 진상고객에게 맞장을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쉽게 사표를 내던질 수도 없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반전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낭랑한 목소리로 ‘고객님’을 응대하고 관리자의 부당함에 숨죽이던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이 노동조합으로 뭉치고 있다. 투쟁의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는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의 현희숙 부지부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사장을 파견하는 (주)한국고용정보, 사장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한국교직원공제회

민주노총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의 조합원은 다섯 명, 현희숙 부지부장은 그 중 유일한 해고자다. 13년이나 콜센터 노동자로 일해 왔고, 2011년 1월부터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에서 1년 8개월을 일했다. 지난 9월 11일 저녁 여의도 한국교직원공제회 사옥 앞에서 ‘해고자 직접고용 쟁취 1주년 문화제’를 진행했으니, 내년 봄이면 일한 기간과 복직투쟁을 한 기간이 같아진다. 오십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부당해고의 당사자가 된 13년 경력의 텔레마케터는 이제 투쟁하는 노동자가 되어 쉽지 않은 싸움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현희숙 부지부장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하는 콜센터의 보험사업부에서 일했다. 간접고용이었고 (주)한국고용정보라는 회사의 파견노동자였다. 그런데 현희숙 부지부장을 비롯한 (주)한국고용정보가 파견한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 상담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파견업체인 (주)한국고용정보가 위촉계약을 통해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사장을 파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전화기와 헤드셋만으로 사장이 된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한다.

이렇게 노동자성의 부정과 왜곡을 통해 엄청난 중간착취를 일삼는 (주)한국고용정보는 외환위기 당시 'KBS 범국민 일자리 만들기 캠페인'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노동부 및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설립한 인력파견 회사다. 15년 간 금융권 콜센터를 비롯한 수십 개 업체와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해 노동자들을 위장 자영업자로 만들어왔다. 2011년에는 일자리창출지원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12년에는 고용노동부의 '반듯한 시간제일자리' 사업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노동자들을 특수고용화해 불법파견하고 사용자의 책임을 저버리는 한국교직원공제회는 20억 이상의 자산규모에 2011년 대한민국 지속가능경영 대상 수상, 공공기관 청렴도 2년 연속 1위, 소비자중심경영 인증 획득 등을 자랑 삼는 교직원 복지기관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한국교직원공제회가 각종 SOC사업과 해외 투자에서는 적자를 본 반면 보험사업 관련해서는 일반 민영보험사보다 5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에는 사옥을 신축하겠다며 무려 3,400억의 예산을 책정했다. 교직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한국교직원공제회, 그러나 콜센터 상담원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을 수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둔갑시켜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 보장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비윤리적인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현희숙 부지부장이 처음 콜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텔레마케팅은 나름 유망한 직종이었고 실제로 노동조건도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급속하게 용역업체가 늘어나고 간접고용이 전면화되면서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절대다수가 비정규직인 것은 물론, 보험 판매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내몰기 위해 자본은 혈안이 되어 있다. 게다가 업무상의 모든 책임을 아무 권한도 없는 콜센터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구조가 이미 자리잡았다. 노동조건은 열악하고 임금은 낮고 고용은 불안한데도, 고객과의 마찰도 과열된 경쟁으로 성과가 나지 않는 것도 모두 말단 노동자의 책임이다.

현희숙 부지부장이 십여 년을 콜센터 노동자로 일하면서 뚜렷하게 기억나는 고객 민원은 고작 서너 건 정도라고 한다. 일부 악질적인 고객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설령 상담원의 실수가 있더라도 진심으로 대한다면 대다수는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물론 고객을 직접 접촉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노동 문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너도 나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힘도 없고 저항의지도 없는 이들 중에는 만만하다고 생각되거나 대면할 일이 없는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거나 악질적인 언행을 일삼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을 상대로 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들은, 일터의 노동 조건이 안정적이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현희숙 부지부장은 생각한다. 직접고용으로 일할 때 정말 악질적인 고객이 있을 경우에는 회사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관례였고, 관리자들의 태도나 상담원들에 대한 관리 감독 역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게 참 괜찮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변함없이 콜센터 노동자로 일해 온 십여 년 사이에, 변한 것이 너무나 많다. 관리자의 부당하고 편파적인 업무 배정에 시정을 했다는 이유로 현희숙 부지부장은 두 번의 해고를 경험했다. 첫 번째 부당 해고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개인사업자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이므로 (주)한국고용정보가 해고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판정했다. 지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으로 업무에 복귀했지만 사측은 2012년 말 계약 만료를 이후로 다시 해고를 했다. 이후 노동조합을 결성해 사무연대노조와 함께 한국교직원공제회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13년 1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위촉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해고를 정당화하며 (주)한국고용정보와 한국교직원공제회의 불법파견도 인정하지 않았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평범하고도 성실하게 일해 왔지만, 관리자의 부당한 처사에 대항한 괘씸죄로 해고가 되자 법은 현희숙 부지부장을 특수고용노동자라고 규정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싸운다. 유불리만을 따졌다면 그쯤에서 접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함을 감수할 수 없어 용기를 냈다.

그렇게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침이면 여의도 빌딩숲 한복판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수요일 점심시간이면 사람이 많든 적든 집회를 이어간다. 이제 두 번째 투쟁의 겨울을 맞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한국교직원공제회와 한국고용정보는 오히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빌미로 현장을 압박하며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수의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양측은, 12월 말 계약갱신 시기 앞두고 현장의 비조합원 상담원들을 상대로 양심을 파괴하는 관제 서명을 받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고,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을 내세워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와 조합원들에 대한 집회금지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희숙 부지부장과 조합원들은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더욱 질기게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희숙 부지부장의 싸움은, ‘나의 부당해고’에서 시작되어 어느새 ‘콜센터 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니다’로 확장되었다.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로 행복을 찾아가는 투쟁, 자존심을 지키고 조금씩 빼앗겨온 권리를 되찾으려는 투쟁이다. 이제 우리의 싸움으로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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