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의 생명도 못 건진 “대한민국 선장 퇴진하라”

[양규헌 칼럼] 총체적 모순 민낯으로 드러난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과 비탄의 늪에 빠졌다. 눈앞에 뻔히 침몰해 가는 배를 보면서도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과 승객들을 단 한명이라도 구조해 낼 수 없는 무능한 나라에 너나없이 분노했다. 꽃을 피워보지 못한 아이들이 승객 중 대부분이었으므로 어른들은 이러한 나라를 만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며 자책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안산의 올림픽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합동분향소와 단원고등학교 정문엔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 가라는 기원과 지켜주지 못한 분노가 적힌 노란 쪽지들이 가득했다.

하나의 사건에 이렇게 많은 총체적 모순이 연기처럼 피어나오다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부실이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다. 하나가 나왔다 싶으면 과거로 이어지며 끝도 없이 나오는 유착과 부패와 기득권의 고리들. 해방이후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재난을 당해온 민중의 삶과 기득권층의 강고한 먹이사슬, 그 먹이사슬이 키워온 나라의 허약함과 천박함이 그대로 민낯으로 들어난 사건이다.


대통령의 엄포 재앙...따로 국밥 정부부처

촌각을 다투는 재난의 상황이 엄중함에도 구조 초기부터 어이없게도 대통령의 무지는 빛을 발했다. ‘구명조끼를 다 입었는데 왜 구조를 못하느냐’, ‘특공대를 투입시켜서라도 구조에 임하라’고 명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감동을 받았다.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공대를 투입시키라는 명령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는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는 그야말로 재앙을 불러왔다. 언론은 연일 엄청난 물량의 헬기와 잠수구조대를 들먹이며 구조를 하는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가족들이 접한 현실은 너무나 조용하고 억울한 구조 현실이었다. 이 추상같은 명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걸까? 현실과 현장을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과 너무도 열악한 환경(열악한 예산에 조악한 구조 배들)에 놓인 해경의 간극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구름위로 올라가서 현장과 다른 명령을 내리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일할 공무원은 아무도 없단다. 일을 해서 망쳐놓느니 일을 안 하고 자리를 지키려는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깊이 들어가 사정을 파헤쳐보면 특공대를 파견하라는 이 명령도 얼마나 어이없는 명령이었는지 곧 드러난다. 해군선이 아닌 여객선의 해난 구조는 전쟁에 능한 특공대보다는 오히려 민간 잠수부가 뛰어난 역할을 해온 게 오랜 관행인데, 대통령의 그 명령이 민간 잠수부를 막았다고 한다. 배가 침몰해 가는 상황에서는 특공대의 헬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고, 관은 함부로 명령 없는 일을 할 수가 없었기에 끊임없이 가족의 요구를 묵살했고, 구조작업은 구역과 돈을 따지느라 지지부진해진 것이다.

민관군이 구조작업을 한다고 떠들어댔는데 이것은 언론이 한 거짓말 가운데 일부이다. 그다음 부처들의 따로 국밥 대응은 우리가 언론에서 본 그대로이다. 정말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 그 옛날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혼자 도망가서 한강다리를 끊어 많은 시민을 죽이게 한 미국박사라던 이승만이 생각난다. 대통령도 부처의 장관들도 국민들의 삶과 현장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오죽하면 현장전문 용어를 몰라 물어서 대처를 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현장도 모르고 절대적 비극에 공감도 못하는 무능한 싸이코패스 들인 것이다.

스크린에서 사라진 ‘구름 위의 여왕’

초기 골든타임을 다 허비해 버리고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한 그들이 택한 전략은 면피용 범인 찾기였다. 외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대통령의 ‘선장 살인자’ 발언은 정말 저급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언론은 온통 패륜 선장과 선장의 주인인 악덕재벌의 범죄 같은 재산축적 행위(이 정도는 이건희 등 다른 재벌들도 다 하는 거 아닌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그를 잡아들일 듯이 말이다.

그런데 정말 감쪽같은 일이 벌어진다. 짐이 국가인 여왕 박근혜가 언론과 지상파 방송에서 사라진 것이다. 실소유주가 죄를 지었다면 왜 이전에 잡아들이지 않았는가? 정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다. 선장이 승객을 버린 책임은 명백하게 있으므로 그가 합당하게 사법부로부터 죄를 받으면 된다. 그것은 명약관화한 일인데 정부의 엄청난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위상이 필요해서일까? 선장과 더불어 신예로 등장한 악덕재벌은 스크린에서 빛나던 박근혜를 사라지게 했다. 그러는 사이 박근혜는 더욱더 짐은 국가인 구름위의 여왕으로 올라가 버렸다. 대한민국은 마땅히 대통령제 나라인데 대통령이 없어진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구조를 단 한명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합니다’라고 절대 말할 줄 모르고, 아니 안하고 ‘구조에 최선을 다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명령조의 오만한 말을 습관성으로 한다. 자기가 그 주체의 수장인지 모르는 것일까? 이 엄중한 비상사태(시민들은 집단 트라우마에 빠져들었다)에 청와대가 재난컨트롤타워가(재난을 그렇게 강조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는 데만 몇 천억의 돈을 썼다고 한다) 아니라고 하는 거 보면, 그들이 탄 배만 여왕내각제 나라에 가있는 거 아닐까라는 착각이 생길 정도다. 그러니 구름 위의 여왕이라는 말로 서구세계에서까지 조롱받는 것이 아닌가.

선장과 승무원이 책임지면 비극은 없을까

철저한 면피 행동과 말로 선장과 승무원을 구속하고, 관료사회에 눈 레이저를 쏘아 아무 일도 안하게 하고 국정원을 동원해 인터넷과 개인 정보망을 검열하며, 자신을 추앙하는 언론을 지렛대 삼아 대통령 재임 이후 숱한 위기를 잘 넘긴 것처럼 이번에도 그게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은 온통 ‘죽일 놈의 선장’으로 모아지고 있다.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을 친 선장이나 선원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책임을 회피한 선장과 선원의 처신은 무엇으로도 변명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시기 선장과 선원이 ‘왜 그런 상황에 내 몰렸으며 왜 책임 못 느꼈을까’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또 다시 같은 아픔과 절망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사건의 본질과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장이 도망간 것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만 있고 권리가 없다고 판단될 때, 책임의 무게는 가볍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모든 권한과 책임이 선장에게 집중된다는 상식과 질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없어진지 오래다. 1년 계약으로 불안정한 비정규선장보다 정규직 기관사와 항해사에게 선박운송에 대한 권한이 집중되는 현실에서 선장은 일명 ‘바지선장’이었다. 이는 세월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은 자본의 이윤축적이 모든 가치에서 우선한다. 자본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무한착취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협박까지 한다. 수백 명의 승객의 안전과 생명이 뒷전으로 밀리는 구조적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장과 선원이 노동에, 업무에 자부심과 책임의식이 없다며 모든 책임을 추궁해 난도질하는 것은 잔혹하지 않은가. 권한과 권리는 없고 책임만 추궁 받는 야만적인 구조는 정당하며 책임이 없는가. 불합리한 구조를 만들어 안정된 시스템을 파괴한 정치권과 로비를 일삼는 자본, 그리고 검찰은 마치 사실을 지금 발견한 것인 양 호들갑 떨며 수사하는데, 이전에 벌어진 선박구조변경이나 과도한 화물적재, 재벌의 관행처럼 된 회계조작 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실타래처럼 엉킨 청해진해운의 불법·관행적 경영작태는 과연 새로운 것인가.

“선장과 선원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고가 안 났을까”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총리와 장관을 문책해 교체하고,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사법 처리되면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자본의 탐욕이 계속되고, 권력이 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해 법과 제도적 장치(신자유주의 구조조정)를 보장하고, 대통령이 “짐이 곧 국가”라는 전제적 발상을 이어가는 한,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명백한 인재사고인데 자연재해로 몰아가려는 듯한 청와대 언사도 치졸하다. 어쨌든 가장 극명하게 절망에 떨어진 실종자 가족은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책임을 대통령과 정부에게 두었다. 현장에서 채증조와 녹음조가 작업하다 들켜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이런 행위는 이정부가 시민을 상황에 따라 범죄자나 빨갱이로 몰아가는 못된 버릇을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만원류가 주장하는 정신병적인 극우인식을 설마 그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번에 새누리 양아치들이 보여준 몇몇 사례를 보면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권력의 ‘특수 활동’이 빈번할수록 시민의식이 운동권의식에 눈떠지는 것도 보편화되지 않을까.

어쨌든 그들의 의도대로 재난은 통제되지 않았다. 정부 편향 방송을 한 언론도 거짓이 너무 많이 드러났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뉴스타파 등 인터넷 언론매체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역할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세월호 선장처럼 대한민국호 선장도 내려가라’

사고난지 열흘을 훌쩍 넘긴 지금의 안산은 깊은 침묵과 좌절 속에 잠겼다. 추모조차도 사치로 비춰질까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는 인적이 드물고 거리에는 절망의 한숨들이 스친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촛불기도회는 아직 슬픔에 잠겨 있지만 이 촛불이 분노의 집회로 언제든지 전화될 수 있다는 기운이 느껴진다. 그만큼 유가족이나 실종자가족이 느끼는 아픔을 동일한 감정으로 느끼는 정서가 퍼지고 있다. 분노의 대상들이 조금씩 다르게 표출되기도 하지만, 정부의 늦장대처로 생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은 보편적일만큼 강하다. ‘우리는 나쁘고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시민의 싸움은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다. 스스로 밤마다 모이는 발걸음이 아직은 미숙하지만 말이다. 구조적 모순을 뜯어고치는 첫 타깃은 국민위에 군림하는 나쁜 선장과 그 일족들을 갈아치우는 일이다.

또한 지금부터는 조직된 싸움을 시작할 때이다. ‘세월호 선장처럼 대한민국호 선장도 내려가라’는 요구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의 직접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면 세월호 참사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날 수 있다.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은 분노를 모아 완강한 투쟁으로 슬픔과 아픔, 절망의 반복 고리를 끊는 것으로 나가야 한다. 아픔과 절망에 갇히지 말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지금시기 노동자들의 기본 임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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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슴

    과관이다. 어찌그러냐 정말로 난 정말 박근혜가 죽을 죄를 지은줄 알았더니 이것은 뭐 설명에 타당성이 부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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