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2014년 5월 8일 저녁부터 9일 아침까지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우리는 인간이다, 거리에서 고민하자

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지금 시간은 아침 다섯 시 오십팔 분이다. 밤을 꼬박 샜지만 어딘가에 드러눕지 않고 굳이 글을 쓰겠다고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어제, 그러니까 5월 8일 저녁 나는 광화문에 있었고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들렀다가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와, 결국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처음부터 글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어서 수첩을 꺼내지도 않았고 사진기를 들이대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보고들은 것들이 정말로 있었던 일과 남김없이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헷갈리거나 흐릿한 것들은 죄다 빼 놓고 쓰기로 했다. (사진은 칼라TV 활동가가 찍은 것을 빌려 왔다.)


광화문에 다다르니 저녁 여덟 시 반쯤 되었다. 썩어 빠진 인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인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이 내건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사람들이 무대로 나와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털어 놓았다. 자본주의를 쓸어 버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노동당이든 진보당이든 다 집어치우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는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청와대 이야기가 나오자 가까이 늘어서 있던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조금씩 사람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송경동 시인이 청와대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자 만민공동회는 끝났고 벽처럼 버티고 선 경찰들과 맞서려는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청와대로 가는 다른 길을 찾아 그곳을 떠났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경복궁역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경복궁역 쪽은 경찰들이 바늘 하나 찔러 넣을 틈 없이 막고 서 있었다. 화를 못 이긴 사람들이 경찰들에게 거친 말을 퍼부어 대며 삿대질을 하자 좀 오래 묵은 듯한 경찰 하나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대거리했다. 그쯤에서 나는 유가족들이 와 있다는 여의도 KBS로 발길을 돌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열한 시쯤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 나는 KBS 앞에서 촛불을 들고 관제방송 물러가라고 외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지난 수요일에는 MBC 앞에서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 너무나 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저질러지고 있었다. 공영방송이라는 말은 아득히 먼 옛날 신화 속에나 나오는 어떤 착한 신의 이름처럼 느껴졌다.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대통령을 떠받들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대통령을 위한 보도만을 내보내는 인간들이 방송국을 온통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KBS 김시곤 보도국장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에 비하면 세월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숫자라고 입을 놀렸다. 유가족들은 당장 안산으로 김시곤이가 와서 사과하라 했지만 보도국장은 KBS 안에 틀어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유가족들이 고속버스를 빌려 여의도에까지 올라오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KBS의 거짓 보도에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유가족들이었다. 내가 지난 주 금요일에 KBS 앞에서 외친 구호 가운데 하나는 이랬다. “관제방송이 아이들을 죽였다.”

KBS 앞으로 가 보니 이미 본관은 경찰 버스들이 빙 둘러 벽을 쌓았고 유가족 한 명이 그 버스 위로 올라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보도국장은 나와라!”
“너희들이 그러고서 언론이냐!”

서늘한 밤바람에 담요를 뒤집어쓴 유가족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었고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패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기자들이었다. 유가족들은 거짓 보도만 일삼은 언론사의 기자들을 하나 둘 그 자리에서 내쫓았다. TV조선, 채널A, YTN, 연합뉴스, MBC, SBS 기자들은 유가족들이 온갖 막말을 퍼부어도 뭐라고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달아났다. 반면 JTBC 기자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반갑게 맞았다. 뉴스타파와 팩트TV, 국민TV, 오마이TV 기자들도 유가족들 사이에 어려움 없이 섞였다.

유가족들은 영정 사진 하나씩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액자마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들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영정 사진을 실제로 보게 되자 갑자기 숨이 막혔다. 나는 학교에서 몇 년 동안 선생질을 해 본 탓에 저 나이 또래 아이들이 뿜어내는 밝고 싱그러운 기운이 어떤 건지 조금 안다. 그런데 저 액자 속 아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소란스런 통에 액자를 잃어 버렸던 어느 유가족이 힘들게 액자를 되찾자마자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품에 안는 모습을 보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유가족 대표단이 KBS 안으로 들어가 보도국장과 사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경찰 버스가 조금 옆으로 물러섰고 석고로 빚어진 듯 꼼짝 않고 있던 경찰들이 사람 지나갈 틈을 내 주었다. 유가족들이 경찰 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안산에서 여기 오는 데 한 시간밖에 안 걸렸어! 근데 벌써 이렇게 쫙 깔렸잖아! 너희들 진도에서도 이렇게 했으면 애들 다 살릴 수 있었어!”

그 말에 다른 유가족들도 맞받아 소리를 질렀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몇몇 기자들이 욕만 흠씬 먹고 현장에서 쫓겨났다. 나는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 욕설을 지금껏 들은 적이 없다. 자기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죽든 말든 오로지 정권을 감싸고도는 데에만 마음을 쓴 언론사들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건 분명 욕설이었지만 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느냐는, 왜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느냐는 처절한 부르짖음이기도 했다.

유가족 대표단이 KBS 본관으로 들어갔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바란 건 딱 하나였다. 보도국장과 사장이 유가족들 앞에서 사과하고 다시는 그 따위 막말과 왜곡 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그러나 두 시간쯤 뒤에 지친 모습으로 본관에서 나온 유가족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도국장이랑 사장 만나러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출입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더라. 또 일일이 출입자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우리가 KBS에 지금 견학 왔느냐고 했더니 어쨌든 그게 절차라고 하더라. 그래서 로비에 앉아 있을 테니 그분들 보고 내려오라고 했는데 막상 내려온 건 보도본부장과 스포츠국장, 해설국장 같은 사람들이었다. 당신네들과는 할 이야기 없다고, 어차피 당신네들은 우리가 뭘 이야기하든 위에 보고하겠다고 할 게 아니냐고, 당장 사장과 보도국장 내려오게 하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래서 기다렸다. 근데 안 내려왔다. 보도본부장이 보도국장 전화번호도 모르더라. 보도본부장이 사장 전화번호도 모르더라. 비서실을 통하지 않으면 연락할 수 없다고 하더라. 이게 말이 되느냐. 보도본부장에게 김시곤 보도국장의 망언에 대해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정말 그런 발언을 했는지 진위 파악을 해 보겠다고 했다. 이제 와서 무슨 진위 파악이란 말이냐.

다른 유가족이 앞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뻔하다. 이렇게 시간 끌면서 우리가 점점 더 흥분하기를, 그리고 흥분을 못 이겨 막 행패 부리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청와대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지금쯤 퍼져 있을 테니 정권에 잘 보이려는 KBS는 여기서 자꾸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우리가 청와대로 가는 시간을 늦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사장과 보도국장이 정말 KBS 본관 어딘가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 유가족이 앞에 나와서 말했다.

“우리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아이들 영정 사진 들고 여기 시위하러 왔습니까? 우리는 그저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경찰들이었습니다. KBS 사장은 우리를 국민으로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물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국민입니까?”

유가족들은 KBS를 향해 거푸 목 놓아 외쳤다. 우리가 국민입니까? 그 울음 섞인 외침들을 듣고 있자니 발밑이 천 길 만 길 밑으로 훅 꺼지는 것 같이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 유가족이 품에 안고 있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액자 속 얼굴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침을 꾹 눌러 삼켰다.

마침내 KBS 쪽에서 보도국장은 사과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유가족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곧 유가족 대표단이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요구 사항을 변경합니다. KBS 사장은 공개 사과를 하고 그 사과 내용을 보도하십시오. 그리고 김시곤 보도국장을 즉각 파면하십시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이곳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 청와대로 갈 것입니다. 거기 가서 박근혜 대통령님과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대통령님이라면 우리를 꼭 받아 주실 거라 믿습니다.”

유가족들이 손뼉을 쳤다.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도 유가족들에게 힘내시라고, 끝까지 응원하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길가에 서 있던 고속버스에 유가족들이 먼저 타고 나머지 사람들이 나중에 탔다. 고속버스를 얻어 탈 수 있었던 나도 청와대까지 가기로 했다. 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KBS 윗대가리들은 유가족들도 그곳에 함께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국민으로 보지 않았다. 아니,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니 나도 그치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쓴 다른 무언가라고 여길 것이다. 붉은 피가 아니라 차갑고 축축한 뭔가가 핏줄 속을 흐르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고, 아니, 결코 인간이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라고 못 박을 것이다.

버스는 광화문에서 멈췄다. 광화문에서 유가족들은 세 줄에서 네 줄로 늘어서서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해 갔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청와대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어서 몰랐는데 청운동 주민센터 앞이 바로 청와대 코앞이라고 했다. 골목마다 서로 팔을 굳게 얽은 경찰들이 한 줄로 서 있었고 주민센터 앞은 아예 경찰 버스로 막아 놓았다. 버스로도 막지 못한 좁은 길목에는 역시 경찰들이 마스크를 쓴 채 우뚝 서 있었다. 유가족들은 더는 갈 수 없게 되자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채로 그 자리에 앉았다.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찰칵거리며 불빛을 터뜨렸고 나는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를 잃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기를 들이댈 수 있는 기자들이야 말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맞은편 길가도 경찰 버스로 막혀 있었는데 버스 너머에서 웬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까 광화문에서 계속 경찰들과 맞서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버스 너머에서 경찰들에게 꽁꽁 에워싸여 발이 묶여 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이 다시금 소란스러워져 그쪽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들이 경찰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영정 사진을 경찰들이 볼 수 있도록 두 손으로 곧추세워 들고 있는 어머니들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했어요. 제발 길 좀 열어 주세요.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제발 길 열어 주세요. 대통령님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다른 어머니 한 분이 화를 냈다. 왜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러자 경찰들에게 잘못을 빌던 어머니가 말했다. 경찰들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렇게 여기 서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잘못한 게 많으니까, 애들을 먼저 보냈으니까, 이렇게 빌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우리가 이래야 하잖아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침을 꾹 눌러 삼켰다. 대체 이게 뭘까?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러자 화를 내던 어머니가 이번엔 경찰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 아이가 죽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요? 사고 나고 처음 며칠 동안엔 그래도 희망이 있었어요. 근데 하루 이틀 사흘 지나면서 그 희망이 다 사라졌어요. 아직도 아이 못 찾은 부모들은 아이가 죽어서라도 돌아온 부모들을 부러워해요. 알겠어요? 아이가 죽어서 돌아온 부모들을 부러워 한다구요! 너무 미안해서 아이 찾았냐고 물어보지도 못해요! 우린 죽은 아이 붙잡고 울면서도 미안해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기분을 알아요? 우리가 대체 왜 미안해해야 하는데요?”

경찰들을 보았다.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내놓은 얼굴이 조금 실룩거리는 것도 같았다. 빨개진 눈동자 위로 물 같은 것이 고이는 것도 같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경찰들 앞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이 무릎 꿇고 앉아 길을 열어달라고 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정 사진이 든 액자 뒤로 아이들의 이름이 보였다. 이제는 이 세상에 살지 않는 이들의 이름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맞은편 길가로 가서 하염없이 줄담배를 피우는 것밖에 없었다.

옆으로 길게 길을 막고 있는 경찰 버스 앞에 영사막이 세워졌다. 아이들이 손전화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유가족들도 아직 보지 못한 영상이라고 하니 얼마 전에야 확인한 영상인가 보았다.

영상이 흘러나오자마자 아이들이 재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가라앉는 중에도 즐겁게 웃으며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유가족들의 등이 일제히 푹 꺾였다. 모두가 울었다. 유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도, 기자들도, 나도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영상에서는 90도로 기울어진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는 아이들이 나왔다. 울음소리가 자꾸만 높아져 갔다. 어떤 영상에서는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너무 무섭다고 눈물범벅을 하고 있는 아이가 나왔다. 어떤 영상에서는 살아서 보자고 인사하는 아이가 나왔다. 아는 아이인지 영사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말하는 유가족이 있었다. 깊은 밤 고요한 거리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영상 속 아이들은 너무나 선명했고 너무나 멀쩡했다. 손만 뻗으면 볼을 꼬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꼬집어 비틀면 아얏 하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영상들이 몇 시 몇 분에 찍힌 것인지 알아 낼 수만 있다면 정부와 해경의 구조 작업(?)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누가 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 유가족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가족 대표단은 찍힌 시간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한 듯했다.

그 뒤로 몇몇 유가족들이 나와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다. 유가족들은 거창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대통령을 끌어내리자는 구호에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유가족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단체들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고 어찌 됐든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힘들다는 생각에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광화문 만민공동회에서 모아진 뜻은 분명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었다. 아마 유가족들도 저마다 다 다른 고민을 품고 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다섯 시가 넘으니 동쪽 하늘부터 점점 밝아져 왔다. 5월이지만 밤바람은 차가워 후 하고 불면 허연 입김이 나왔다. 유가족들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 오들오들 떨었고 나는 줄담배를 피우며 배고픔과 추위를 잊으려 애썼다. 아이의 영정 사진을 보고 또 보는 유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집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버이날인데 집에도 안 들어가고 길거리에서 담배나 피우고 있다니.

“우리가 지금 여기 시위하러 왔습니까? 아이들 영정 들고 시위 하러 온 겁니까? 아닙니다. 우린 대통령님 만나서 하소연을 하러 왔습니다. 우리 이야기 좀 제발 들어 주시라고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날도 밝았으니 대통령님께서 우리 만나 주실 때까지 여기서 버텨 봅시다. 오늘 안 되면 안산에서 더 많은 분들이 올라오실 겁니다. 그때는 우리 유가족들 전부 다 소복 입고 영정 사진 안고 청와대로 갑시다. 대통령님 뵈러 갑시다.”

유가족 대표단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이 시간에 집으로 기어들어가긴 틀렸고, 어쨌든 출근은 해야 했다. 대신 아는 형님 작업실에 들러 출근 시간 전까지 글을 한 편 쓰기로 했다. 뭔가를 쓰지 않고서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경찰들 앞에서 무릎 꿇고 울던 어머님들. 영정 사진 속 초롱초롱한 얼굴들. 기자들에게 퍼부어지던 욕설들. 사과는커녕 모습도 보이지 않은 KBS 보도국장과 사장, 또 온종일 뉴스에서 보게 될 대통령의 얼굴.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숨이 막혔다.

벌써 아홉 시가 넘었다. 출근하려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에서야 내가 이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알았다. 방금 말한 대로 무엇이든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서였고, 또 하나는, 미안하다고 어른들이 잘못했다고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유행처럼 노란 리본을 SNS와 모바일에 걸어 놓으면서, 정작 거리에는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분노를 넘어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대체 무슨 행동을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는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 모름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역사라 해도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과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모르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모르는가이다. 거리에 나와 봤자 답은 없다. 우리는 답을 찾으러 거리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거리로 나와야 하는 이유는 슬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멀리서가 아닌 가까이서.

나도 내가 대체 뭘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대통령 하나 끌어내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좋게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목을 쳐야 하는 허섭스레기 부라퀴 같은 존재들과 그런 존재들이 만들어 놓은 무시무시한 덫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다. 무엇을 할지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 방 안이 아닌, 일터가 아닌, 인터넷이 아닌, SNS가 아닌, 거리에서. 당장 내일 5월 10일 토요일 안산에서 촛불집회가 있다. 안산이 아니어도 이 나라 곳곳에서 촛불이 켜질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거리에서 고민하자. 슬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자.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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