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심심할 때면 인터넷 만화나 자질구레한 개그마당을 훑어보곤 한다. 사실 상상력의 총아들은 죄다 이쪽에 몰려 있다. 완전 깨는 생각들도 많고, 그냥 웃고 지나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이야기들도 꽤 있다. 또는 활동의 방법을 이런 곳에서 얻기도 한다. 그런데 만화사이트나 개그마당들 상당수가 회원가입제 아니면 유료다. 주민등록번호 치라고 하는 것도 성질나고 해서 대부분 그냥 패스. 무료 제공되는 사이트 정도나 들어가서 보고 나올라치면 그 아쉬움이 상당하다. 이 와중에 회원가입도 필요 없고 유료도 아니면서 항상 유쾌하게 웃고 나올 수 있는 컨텐츠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사이트가 하나 있었다. 언제나 황당한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사이트가 있었다.
그런데 그만 그 사이트가 차단되었다.
아아, 아쉽도다. 정보통신부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가기관들은 웃음의 미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넘들은 항상 진지하고 차분한 이야기만 해야 좋은 것인줄 아는갑다. 그리하여 이 덜떨어진 근엄주의자들은 오늘 나의 즐거움 하나를 앗아가고야 말았다. 그 즐거운 사이트, 주관적 진지함으로 객관적 즐거움을 한껏 자랑했던 그 사이트가 사라지고야 만 것이다.
그 사이트는 http://www.ournation-school.com/라는 도메인을 가진 사이트였다. 일명 김일성방송대학. '위대하신 태양' 장군님이 주창하신 '주체사상'에 대한 설명과 장군님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 등 주옥같은 글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던 그 사이트. 심금을 울리던 강사들의 방울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단 말이다.... 오호, 통제라...
거기 있었던 글들. 창세기를 능가하는 장엄한 역사배경, 스펙터클한 대하서사, 야훼를 무색케하는 전지전능한 영도자의 일대기, 무협지를 능가하는 신묘한 비법들, 70년대 영화관 간판을 보는 듯한 비주얼, "주체사~상"이라며 항상 "사"자를 길게 늘여 발음하던 그 묘한 발성법 등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그 사이트.
이런 사이트를 왜 차단했을까? 남한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주체사상의 신도가 되어 북한을 찬미하고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수령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에게 홀라당 빠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하여 손에 손에 인공기를 들고 광화문 네거리에 쏟아져 나와 북한 찬양에 열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항간에는 북한 주체사상 사이트들이 차단된 배경에는 일부 개신교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는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창세기 버전을 능가하는 기이한 행적들이 도처에 깔려 있고, 전지전능한 수령님의 역사가 시시때때로 나타나고 있으며, 게다가 그러한 이적들을 죄다 모아 인민들을 교화하고 사상으로 체화시킨 주체사상의 교도들. 북한에만 이미 2천만명 이상의 신도를 모아놓고 있는 이 21세기형 종교버전이 남한에 파급될 경우 자신들의 나와바리가 심하게 침해당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일부 개신교세력이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가만히 보면 남한 정부는 남한 국민들보다도 더 자기 체제에 대한 신뢰가 없는 듯 하다. 북한에서 제 아무리 남한에 방송송출하고 인터넷으로 비집고 들어와 주체사상 전파하고 수령님의 전능하심을 알리려고 해도 남한 사람들 대다수는 그거 보면서 그냥 웃는다. 북한 당국의 주관적 진지함이 남한 사람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우습게 보이는 거다.
그런데 이러한 코메디를 즐기지 못하게 하는 남한 정부의 진지함 역시 지들 나름의 주관적 진지함에 그치고 있다. 그러한 남한 정부의 주관적 진지함은 나같은 사람들에겐 객관적으로 개코메디가 된다. 아, 물론 북한의 주관적 진지함 만큼 매우 진지한 주관적 관점을 보이고 있는 조선일보나 기타 극우세력이 있기는 하다. 그 인간들도 남한에 거주하는 남한 국민으로서 "조국과 민족"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자. 지금 조선일보, 한국논단, 극우집단 들의 그 눈물겹도록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뭐 분개할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 기가 막혀서 웃고 만다. 조선일보, 끝까지 진지함을 관철하다가 결국 충청권에서 왕따당하게 생겼다. 극우집단들,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돈 대주고 신도 끌어다 주지 않으면 집회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한다. 김일성이 죽인다고 생 난리를 치던 신혜식이 같은 또라이들은 미 대사관에 부르심을 받고 쫓아가서 키들거리고 있다. 이런 꼴들이 정말 진지해 보이나? 이런 게 코메디가 아니면 뭐가 코메딘가?
코메디는 코메디일 뿐이다. 보면서 웃어주면 그만이다. 웃음이 나오지 않으면 그 코메디 문 닫는다. 웃기질 못하는 코메디는 자연스럽게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그걸 굳이 권력을 동원해서 막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는 거다. 왜 쓸데없이 난리를 피워서 나의 즐거움 하나를 앗아가는 걸까? 내가 웃는 게 그렇게 싫었나??
암튼 이렇게 북한 코메디를 보면서 웃던 나, 오늘 남한 코메디를 보면서 웃는다. 하는 짓들이 어째 이렇게 유치찬란한지... 지금이 박정희가 멸공통일 반공방첩 외치면서 한강다리 건너던 1961년이냐, 김일성이가 김신조 내려 보내던 1968년이냐? 어차피 간첩질을 하던 게릴라질을 하던 이젠 남한 사람들이 북한 쳐다보면서 북한처럼 살고 싶다고 할 사람 없다. 하다 못해 통일운동한다는 사람들만 봐도 북한처럼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질 못하는 상황이다.
사이트 다시 열기 바란다.
친북사이트 다 열기가 쬐까 거시기 하면 http://www.ournation-school.com/ 이거라도 다시 열어라. 그래야 가끔가다가 나도 좀 웃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나저나 이거 완전히 국가보안법 위반이지? 북한 인터넷 사이트 열어봤으니 회합통신에, 수령님 높이 받들었으니 고무찬양에, 사이트에 있는 내용들 읽어봤으니 불온문서 탐독에 아주 가지가지로 걸리겠다. 자, 나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했다. 이제 어쩔래? 하여튼 이래 저래 죄다 코메디다 코메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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