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대표적인 '안티조선' 매체인 오마이뉴스의 다툼이 그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의 마찰은 조선의 결식아동 연재 기사를 둘러싼 공방이다.
지난달 27일 조선은 1면에 결식아동 실태를 다룬 기획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서울 사근동에서 기초생활보장비 29만5000원으로 연명하는 가족이 등장한다. 담벽에 '배고파아'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인 집 앞에 한 아이가 배를 움켜지고 앉아있는 사진까지 함께 실렸다. 이로부터 나흘 뒤인 31일 오마이뉴스는 이 기사가 일부 사실을 왜곡했다는 내용의 기사('조선, 가난한 이웃의 고달픈 삶조차 상품화하나')를 싣고, 이튿날 다시 주변 관계자들을 취재한 후속 기사('조선, '굶는 아이들'서 과장, 왜곡 말썽')를 실었다. 이에 질세라, 조선일보 인터넷사이트(조선닷컴)는 1일 밤 굶는 아이들을 취재한 기자의 반론('오마이, 결식아동보다 공무원 편드나?')을 싣고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고 발끈했다.
그런데 이 공방은 아주 기묘하다. 조선은 저소득층 결식아동의 비참함을 강조하고, 오마이는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다고 맞서는 양상이다.
오마이는 전국적으로 결식아동이 30만명이라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보건복지부의 해명을 소개하고, 기사에 나온 사근동 가족의 지원금이 29만5000원이 아니라 34만여원이고 5월말부터는 53만원으로 늘어났다는 사근동사무소의 설명을 인용하고 있다. 반면 조선은 "29만5000원이라고 쓴 것은 분명 기자의 실수이며, 반성한다. 그러나 돈 4만여원 차이가 이들의 고단한 삶은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며 "결식 아동들이 전국에 30만5000명이라는 것이 정부 집계이며,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는 결식 가능성 등으로 사회보호가 절실한 아동이 117만명이라며..."라고 반박했다.
이 양상을 보면, 조선일보가 약간의 과장을 한 건 분명하지만 오마이가 '오버'했거나 엉뚱한 맥락에서 정부를 편드는 꼴이다.
하지만 결식아동을 둘러싼 이 논란은 구도부터 잘못됐다. 문제는 조선이 사실을 일부 과장했느냐가 아니다. 한겨레가 인용 보도한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추정을 보면 지난해말 결식 어린이는 16만명이고, 전체 빈곤층 어린이는 100만명을 훌쩍 넘는다. 복지부 주장과는 워낙 거리가 크다. 진정한 문제는 조선이 이 사회 빈곤층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느냐는 것이다. 조선이 사회복지 예산 확충 정책을 지지하고 빈부 격차를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한 적이 있는가? 가장 선의로 생각하더라도 빈곤층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두 매체의 공방속에 이런 진실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건 현재 안티조선 운동의 이념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점은 지난 3, 4월 오마이, 한겨레를 중심으로 한 탄핵반대 대변 언론과 조선을 중심으로 한 탄핵옹호 언론의 공방속에 노무현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데서도 확인된다.
우리 사회 담론의 틀이 이렇게 잡혀가고 있는데, 진보진영, 그 중에서도 좌파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론 초기 안티조선 운동에는 진보진영 인사들도 상당히 참여했지만, 이런 저런 논란속에 거의 모두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이제 진보진영에는 '안티조선=노빠'라는 시각이 적지 않게 퍼져있다.
하지만 이런 도식은 좌파의 직무유기와 무책임을 변명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조선일보는 그렇게 무시하고 넘어가거나 '노빠'들에게 맡겨둬도 될 정도로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오죽하면 국회 개원을 코앞에 두고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시기에,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사무총장이 조선일보 노조를 찾아갔을까? 자신은 조선일보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지 않는가?
조선일보를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야 하는 세력은 노무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아니다. 진보 진영에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민중을 옥죄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부르짖는 그들을 가장 강하게 거부해야 하는 세력은, 다름 아니라 좌파를 자임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조선과 안티조선이 독점하고 있는 이 땅의 담론 구조를 깨기 위한 좌파의 새로운 기획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획은, 탄핵 사태를 계기로 조선일보에 대한 반감이 절정에 이른 요즘 젊은이들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력을 갖는 새로운 좌파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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