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성]의 건강으로 희망찾기

끊을 수 없는 것들

항암제 후유증으로 몸이 고통스러울 때는 만사가 귀찮고 몸이 좀 회복되고 나서는 먹고 놀고 자는데 지장이 없게되니까 '투병일기'를 쓰기도 머쓱합니다. 2월 24일 2차 입원을 해서 26일 다시 시술을 했습니다. 1차 때는 시술 잘 끝난 것만도 다행이지 하면서 울렁거리고 메스꺼운 고통을 잘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항암제 후유증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마 이제는 살겠구나 싶으니까 긴장감이 떨어져서 더 그런지도 모릅니다. 내 자리에 먼저 있던 환자는 3일 낮밤을 잠도 거의 못자고 고통스럽게 구토를 하다가 퇴원을 했다고 하는데 저는 26일 시술 끝나고 27~28일 낮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게 지났습니다.

다른 환자 담당 레지던트가 술 많이 마시던 사람은 구토없이 잘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술이라는 독성의 화학제품에 단련이 돼서 그렇다는 말인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래서 술에 익숙해 있던 나는 괜찮은가 싶었습니다.

웬걸 닝겔을 빼고 후유증 방지 주사약 기운이 떨어져서 그런지 28일 밤 10시 반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깨어나 낮이 밝도록 끊어질 듯한 배를 움켜쥐고 변기를 부여잡고 쓴 물까지 토해냈습니다. 다른 환자들이 잠자고 있어 신음 소리를 낼 수 도 없고 아내는 집에서 밥해오려 가고 없고...

29일도 퇴원해 집에 온 날 밤도 비슷하게 힘들었습니다. 70년대 80년대 고문과 감옥살이하면서 겪었어야 할 고통을 다른 식으로 겪는거지 하면서 위로를 해봐도 몸이 들어주질 않았습니다. 이런 고통을 보름 이상씩 내내 겪어야 하는 암환자들은 암 때문이 아니라 항암치료 후유증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답니다. 그러고 나서 3.4일 지나자 후유증이 가셔지면서 다시 밥맛도 돌고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이 2차 입원하기 전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경과가 좋아서 암 종양 세 개 가운데 두 개가 보이지 않고 하나도 많이 작아졌답니다. 2차 시술 결과도 좋답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담당 의사 얼굴 표정에서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버텨야할 시간이 몇 년은 남아 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분들 도움 덕분에 경과가 이렇게 빨리 좋아지고 있구나... 고맙고, 감사하고, 좋아서 아내와 함께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4월 1일 또 검사를 하고 4월 7일 의사와 면담 약속이 잡혔습니다. 지금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경과가 좋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를 아껴주는 많은 분들의 좋은 기운들을 듬뿍듬뿍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압니다.

제 투병일기에 김진균 선생님이 '투병은 고생스러운 것-위안만이 필요하다'면서 달아주신 댓글입니다.

"기다리면서 '좀 병들면 어때' 하지 마세요. 어째튼 일어나는 방도를 찾아 모두 함께 노력하도록 합시다. 투병은 역시 고생스러운 거죠. 오직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그리며 일어나도록 해야겠지요. 정말 명상을 통해서 용기를 얻고 시간을 차지하세요. 참, 마음 아프다"

다시 읽어 볼 때마다 제 마음도 참 아픕니다. 노동자교육센터 동지들이 병문안을 갈 때는 제가 1차 입원을 해 있을 때라 못가 뵙고 퇴원해서 찾아뵈려고 할 때는 선생님이 병원에 가셔서... 끝내 못 뵙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그리며 명상을 통해서 용기를 얻고 시간을 차지하라'는 말씀 명심하려고 합니다.

투병의 과정은 그동안 좋아하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끊고 천천히 기억 속에 묻어 두었다가 때때로 과거를 뒤적여 그리워하면서 차츰차츰 새로운 것들과 익숙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끊을 수 없고 끊어서도 안되는 더 많은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인사시켜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니 언제까지가 끝이고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 아니라 끊어서는 안되는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섞어 살아가는 지금 여기 이 시간들이 바로 일상이고 삶이고 투쟁입니다. 꿈이고 희망이고 해방입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집에서 가까운 검단산에 갔습니다. 몸 상태를 아직 가늠할 수 없어 예전 같으면 쉬지 않고 한걸음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던 산을 지팡이 두 개를 짚고 평소보다 천천히 걸어 넘었습니다.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3시간 동안 크게 힘들지 않게 넘었습니다. 매일 옆 동산을 한시간 이상 걷는 운동 효과가 컸습니다. 3월 14일(일)에는 역사와 산에서 가는 충청도 금수산행에 가려고 합니다. 아직 무박 2일은 부담스럽지만 이번 산행은 당일 산행인데다 걷는 시간이 5시간 남짓 밖에 안돼서 갈만 하겠습니다.

간에 부담이 안될 정도의 속도와 잠자리가 문제이지 무리하지 않게 쉬엄쉬엄 가면 어느 산도 괜찮다고 합니다. 금수산 잘 갔다오면 무등산도 잘 갈 수 있겠지요. 결별할 수 없는 많은 것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사'와 '산'이고, 꿈이고 희망이고 해방입니다.
(2004.3.9)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준성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likebau

    탄핵과 총선 국면에서 민주수호를 외치면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고 대중을 기만했던 논자들은 이 변화된 상황을 설명해야 할 뿐 아니라 이론의 오류, 정세분석의 오류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말이 없다. 시민단체의 인물들도, 민주노동당의 주류파도, 남구현・이해영・최형익 3인의 좌파 교수도, 또 다함께도...


    "***위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어떤 소리를 했길래 민노당 주류파, 남구현, 이해영, 최형익, 다함께가 책임을 져야하는지요?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진행해주시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듯합니다.


    참세상이 좀더 좋은 모습이 될때까지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

  • 이웃

    그리고
    깊이 공감합니다.
    번드르한 말들과 거창한 생각
    책임지지 못할 말들 좀 그만하고
    정말 제 자신,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

  • 김성구

    위의 인물들이 탄핵반대 전선이 열린우리당인가 한나라당인가 하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간의 정파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인가 공화국 위기인가, 또는 민주주의인가 파시즘인가 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으로 호도하였고, 이를 통해 위기에 빠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구해주었기 때문이지요.

    탄핵의 쟁점이 사라진 지금, 모든 게 보다 명백해지지 않았나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개혁과 민주주의는 민중들이 지지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분노와 투쟁의 대상이라는 것이고, 이번 재보선 결과에 그런 민심이 다시 나타났죠. 총선 승리 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행태를 보면서 민중들은 지난 대선에 이어 또 한번 사기 당했다고 질리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이 사기행각에 자칭 좌파라는 자들이 큰 역할을 한 게 아닙니까?

    자칭 좌파라는 조직과 논자들이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 대중들을 선동해서 자유주의자들이 국회를 장악하도록 크게 기여했는 바, 총선이 끝난 후 두 달도 되지 않아 대중들이 지지를 철회하는 그런 정권이라면,공화국의 존망이 걸린거라고 이 정권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던 행태는 씻울 수 없는 과오가 아닌가요?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에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탄핵국면에서 자유주의자를 따라 탄핵반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전선을 강화하는 것이 좌파의 올바른 대응이었다는 겁니다.

    재보선이 끝난 지금 이들의 정세분석의 오류, 전술의 오류는 너무도 분명해진거죠. 지난 총선이 끝났을 때 이들은 수구반동과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 하지 않았던가요. 이들의 정세분석과 전술이 옳다면, 두 달 사이에 민주주의로부터 수구반동과 파시즘 지지로 민심이 이동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왜 그런데도 이들은 이 재보선 결과의 위험에 대해, 수구반동화 되는 대중에 대해 한 마디 발언도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들이 주장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겁니다.

    결국 이들은 변화된 현실에서 자신의 주장의 올바름을 논증하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거지요.

    말을 안한다고 이들의 과오가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이들의 과오는 우리나라 민중운동의 역사에서 끝까지 기억될 겁니다. 그런게 교훈 아니겠습니까?

  • ㅋㅋ

    먼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운동사회 내에서 가치기준이 '하나의' 기준이라는 점과 동시에 '남성적인' 기준이라는 점이 짚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치가 있는데, 그 다양성을 인정하자라고 읽혀질 수 있고, 그것은 현재 운동사회 내에서 여성활동가들이 사라지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공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아, 그때 그

    주은언니!
    오랫만입니다.
    진보민청 소속 회원이었어요.

  • 달군

    미디어참세상에 칼럼니스트로 조주은씨가 계시길래, 기대하고 반가워했는데, 첫글 기대만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주은씨가 하신 문제제기는 정말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변혁의 과정 자체를 삶으로 '살아야' 변혁은 이루어 질것입니다.아니 그때부터 '변혁'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것일 겁니다. 저는 말빨 글빨로 슬로를 주장하는 것 보다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어쩌면 더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반성을 요구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이 칼럼이 고맙습니다.

    하지만 글의 전개가 위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명확한 부분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듭니다.
    장학금과 학사경고의 간극만큼의 남성활동가와 여성활동가의 활동방식과, 가치기준, 관계맺기 방식에 대한 간극을 좀더 세밀하게 짚어내는 글을 앞으로 더 기대해 봅니다.


    덧.

    이렇게 많은 칼럼 필진(18명이네요) 중에 여성필자는 3분밖에 안계신다는것이 소위 운동사회를 반영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도 스칩니다.(과도할지도 모르지만.)

    멋진글~ 날카로운 문제제기 많이 보여주십시오~기대하겠습니다.

  • 이상희

    너무 공감합니다. 이렇게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살기에 우리의 삶이 고달프군요 .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선지현

    연구소에 있을때는 콜로키움 한번 하는 것도 미안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활동도 활발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 한번 전화주십시오. 시원한 맥주한잔 하시죠 ^^

  • 페미맑스

    피울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조주은님의 문제제기가 곳곳에서 곱씹어여 변화의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디어참세상의 변화 된 모습,

    여성주의시각의 도입. 신선하고 좋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요.

  • 냉이

    선생님의 글이 제 마음으로 스미어 들어와 저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정말로요.

  • 정원

    이상적 연애문제에 대해서 논의제기했다가 웃음거리로 전락해봤던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문제는 사소하거나 아니면 굉장히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곤 하는것 같습니다. 특히나 운동권내에서의 연애문제에 있어서는 더욱그러하구요...
    글을 읽으면서 여성주의에 대한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않은, 가볍지만 가벼울수 없는 것들에대해서 생각해보게되었습니다. 다음번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

  • likebau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