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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문화권운동'이 필요한 이유

'장애인문화', 문화에 대한 편견이 대부분 그러하듯,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소수자 뒤에 '문화'라는 단어를 덧붙이는 것에 대해 '부차적이거나'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문화의 관계라는 것이 몇몇 알려진 '장애인 예술가' 또는 '장애인의 취미 활동'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으니 크게 놀랄만한 반응도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우선주의의 규율 속에서 생존해 온 우리에게 문화는 언제나 부차적이고 사치스러운 범주로 규정되어 왔고, 더욱이 비장애인과 달리 최소한의 경제권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문화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문화를 '예술행위'라는 좁은 의미 체계 안에 가두고, 장애인문화를 이에 대한 '장애인들의 접근행위' 또는 '장애인 예술가의 행위' 정도로만 억압해 온 결과이다.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좁은 의미' 또는 '임금노동 이후의 부차적인 행위'로 문화를 억압하지 않는다면, 나아가 문화를 '특정한 사회적 삶의 방식'이나 '인간답게 사는 모습'으로 이해한다면, 장애인문화는 전혀 다르게 의미화될 수 있다.

문화가 '과학기술, 학문, 교육, 예술, 가치 등의 분야에서 인간들이 발현하는 창조성의 발휘와 다양한 잠재력의 촉진 및 그런 능력들이 축적되고 구현되는 사회적 층위'라면, 장애인문화는 '장애인 예술가'와 '문화상품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 수준이 아니라 장애인의 특정한 사회적 삶의 방식 그 자체이다. 장애인문화는 '사회적 주체이자 인간으로서 장애인들의 창조성, 다양성, 차이, 향유 등을 통한 삶의 발전'으로 이해돼야 한다.

장애인문화권운동은 장애인에 대한 자본주의의 억압구조를 전복하기 위한 이중 전략이다. 자본의 경제우선주의와 생산력주의의 관점에서 장애인은 신체적 결핍, 부재, 손실의 주체이고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며,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문화는 임금노동 이후의 잔존하는 비생산적인 그 무엇이며, 경제적 도구이자 부차적 영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문화권운동은 문화적 가치, 문화민주주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실천이며, 이는 사회적 차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경제제일주의 및 생산력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장애인운동과 문화운동의 절합인 동시에 이중 전략이다.

임금노동과 그 생산력으로 모든 것을 위계화하고, 심지어 인간의 신체까지도 권력화하는 지금의 사회구조에서, 장애인문화권운동은 신체를 둘러 싼 권력체계에 도전하는 것인 동시에 신체의 정상화, 획일화를 거부하고 장애인의 다양한 삶을 생산하고 구성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장애인문화권운동은 자본과 신체권력 중심으로 위계지어지고 배제된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를 인간의 다양성과 차이의 관계로 복원시키는 실천이자, 치료와 정상화의 대상으로 규정지어진 장애인의 삶의 지향을 장애인 스스로의 문화 생산과 삶의 발전으로 재구성하려는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문화권은 장애인의 삶에서 결코 부차적인 영역이 아니다. 장애인문화권은 경제권, 이동권, 교육권 등의 권리와 함께 장애인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장애인문화권은 장애인의 구체적인 행위의 연속(자유권)인 동시에 장애인을 둘러 싼 사회적 권리(사회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애인문화권운동은 장애인을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다양한 '권리의 정치'에 문화적 가치를 재배치하고 문화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문화권에 대한 구성과 확대의 전략은 창작(표현), 의사소통(교류), 공간(거주), 교육, 이동 등 문화적 행위와 사회적 환경에 대한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권리의 정치)를 유기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또 다른 실천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문화권운동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운동사회의 무관심 역시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운동사회 내에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장애인의 문제. 하지만 당위와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다. 장애인의 권리투쟁에 대한 운동사회내의 관심, 연대 그리고 자기실천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이동권 투쟁, 교육권 투쟁 등을 통해 장애의 문제가 운동사회 내에서 다양한 연대와 실천을 확대해 왔지만, 지금까지는 전적으로 장애인운동의 노력에 기대온 것이 사실이다.

더 이상 운동사회 내에서조차 장애인운동이 타자의 문제이자 개별 운동영역의 문제라는 '제한적인 인식과 형식적인 연대'로 묵인돼서는 안 된다. 이제 사회적 장애의 문제는 노동, 여성, 환경 등의 경우처럼 삶의 태도이자 일상적 실천의 과정으로 이해돼야 하며, 각자의 삶의 공간, 운동 의제 속에서 장애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새로운 관계 맺기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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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속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뿌리깊게 박혀 있는 절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늘 가족환타지속에서 허우적대며 살고 있고 위안을 얻고자 발버둥을 칩니다.어쩔땐 환멸을 느끼곤 한답니다.
    조주은님께서 말씀하신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동거가족, 동성애가족, 별거가족이 건강한 가족일수 있다는 말인지 참 어이없습니다. 다른나라 다른 행성 사람도 아닌데, 행복추구권을 빌미로 왜 자녀와 부부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침해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대로 가다간 '부모'라는 단어가 없어져버릴지도... '부'또는 '모'만 사용하고 '부모'라고 붙여서 썼다간, 다른(?)종류의 가정을 무시하는 어휘사용이라고 비난받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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