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이면 17번 째 천안에 내려가게 된다. 처음 재판을 시작할 때만도 이렇게 오래 가리라 생각을 못했지만, 나오지 않으려는 증인들을 기다리느라, 재판이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여 17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역건설노조 상습 공갈 사건'으로 후대 역사에 반드시 기록될 이 희대의 사건 전말은 이러하다.
검찰 공안부와 법원은 대전지역건설노조 6명을 시작으로 천안아산지역건설노조 2명의 노조간부를 상습 공갈로 구속하였다. 이후에 사건은 서울경기지역의 건설노조, 대구, 부산지역으로 확대되다가 잠시 주춤한 상태에 있다.
죄명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상습공갈)이다. 조직폭력배들에게 적용되는 전형적인 죄명이라고 보면 된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잠깐 설명을 하면 공갈은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습은 공갈의 습성을 가지고 여러 번 반복하여 그러한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역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의 일용 노동자들을 주조직대상으로 하는 지역단위 산별노조이다. 건설 현장 원청업체와 현장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그 내용 중에는 통상적인 노동조합처럼 전임비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검찰은 이 전임비를 문제삼으면서 일용노동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등에 고용되어 있으므로 원청업체는 사용자가 아닌데도, 건설 현장의 산업안전미비, 환경문제를 고발하겠다고 협박하여 원청업체로부터 전임비를 받은 것이 공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년간 여러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비를 갈취하였으므로 상습공갈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나오는 노동조합의 정의를 보면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노조법 제2조 제4호 정의)"라고 되어 있다.
지역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으로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해야 한다'. 건설 현장의 산업안전 등의 문제는 조합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2002년 건설 산업재해 사망자 677여 명) 만일 노사간 대화와 협의로 이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현장이라면 법에 따라 고발이라는 조치를 통해서라도 시정해야 하는 것이 노조의 당연한 역할 아닌가? 그것도 공갈죄의 협박이 되는가? 오히려 이를 방치하면서 조합비를 받게 되면 사기죄가 되는 것이 아닌가 ?
사실 대부분의 사업장은 원만하게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후에 협약에 따라 노사협의회가 개최되었음은 물론이고 노사협의회에서 퇴직공제 적용 문제, 고용보험 문제, 임금 지급 방법 개선 등을 논의하였으며, 노조는 현장에서 산업안전 교육 등을 실시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하였고 이는 천안 사건에서 현재까지 출석한 증인들 28명 모두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건설회사들은 돈을 주겠으니 단체협약을 맺지 말라는 식으로 회유하였으나, 노조에서는 분개하면서 이를 거절하였고, 그러한 제안 때문에 노조가 반발하여 단체협약이 결렬되기도 한 사례도 있다. 몇 명의 피해자라는 증인들도 자신들이 '돈은 주겠으니 단체협약은 맺지 말자'라고 제의한 사실과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며 이를 거절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수사 과정을 보면 얼마나 엉터리인지 공안조작 사건의 냄새까지 난다. 피해자들의 진술 조서가 사람 이름과 현장 이름만 다를 뿐 질문과 내용이 동일한 진술조서가 여러 개 있는가 하면, 심지어 단체교섭과 협약을 체결할 당시에 그 현장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공갈협박을 당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는 식으로 생생하게 공갈 협박 사실을 진술하는가 하면(이 사람들은 법정에 나와서는 자신들이 내용이 틀리다며 수정을 요구하였으나 현장에 찾아온 경찰관이 시간이 없다면 서명 날인을 하라고 해서 그냥 하였다고 번복하였다), 특정인을 지목하여 그 사람이 공갈 협박하였다고 진술을 받았다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일제히 다른 사람으로 정정하는 진술조서를 받았다. 또 사건 당시에는 지역건설노조 조합원도 아니었던 노선균 부위원장을 지목하여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아 구속을 시켰다가 나중에 구속을 취소한 일도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의 시작이 검찰 공안부의 기획 사건이었는지, 건설회사의 청탁에 따라 경찰에서 시작되어 검찰 공안부의 주목을 받게 된 사건이었는지, 우연하게 대전에서 사건이 터져서 전국으로 확산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너무나 정상적인 활동을 상습공갈로 엮어낸 그 기발함과 집요함에 놀랄 뿐이다. 피같은 세금으로 월급 주는데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건설현장의 일용노동자들은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다. 현장의 노동재해가 빈발하고 임금체불도 다반사인 데다가 비가 오거나 겨울철에는 실업 상태에 놓이는 반실업노동자이기도 하다. 더욱이 주로 하청이나 팀장(일명 오야지)에게 형식적인 근로계약이 체결되어 있어 원청회사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지만 원청회사는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되어 있다.
바로 이 약한 고리를 낚아채 검찰 공안부는 원청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아 사용자가 아님에도 전임비를 받은 것은 정당한 노조활동이 아니라, 고발하겠다고 협박하여 돈을 갈취했다고 걸고넘어진 것이다.
건설현장의 출입권, 노동시간, 작업환경, 일용노동자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자는 원청업체이다. 권한이 있는 사람과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하지 누구하고 하란 말인가.
이 사건은 노동조건의 결정권과 노동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면서도 사용자로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이 희한한 간접고용의 문제가 바로 배후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불안정한 노동을 부추기고 노동권을 박탈하려는 건설자본이 배후이다. 검찰 공안부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비정규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법안을 단병호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다는 기자회견이 오늘 있었다. 여기에는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근로자파견법을 폐지하고 건설 현장의 원청업체, 제조업 원청회사 즉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는 이들도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소수 의원만으로 이를 관철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현장의 힘들이 모여 현실에서 이를 관철해낼 때 아마 법은 그 뒤를 따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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