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 후 이제 세 달, 이 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탄핵과 총선 국면 이전의 바닥상태로 되돌아갔다.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지지자들에게는 이 상황이 이해할 수 없는 없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오히려 지난 탄핵 국면에서처럼 이 당과 대통령이 누렸던 높은 지지율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는 이렇게 불신 받는 이 정권을 아직도 지지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은 입만 열면 개혁을 말하지만, 그 개혁이란 게 대중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이 정권의 등장 이래 더욱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지지율의 급락은 대중들이 KBS, MBC 등 탄핵 국면에서 극성을 부린 자유주의 언론의 선동에서 벗어나 정치를 보다 현실적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지율 급락의 근본 원인은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이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서 무엇보다 권력 게임에만 몰두해왔던 것에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정치권력을 장악해 왔던 냉전 보수주의 세력, 즉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권력으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개혁의 주요한 목표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권력 교체가 민주주의와 개혁을 진전시키고 대중의 삶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그렇기는커녕 그것은 단지 그들만의 권력이었을 뿐이었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반대중적이었고, 자유주의 개혁은 설령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에서만 진전되었다.
진정한 개혁은 그들의 권력요구와 충돌하였으므로 추구될 수 없었다. 이런 개혁을 위해 그들은 불법도 마다않고 모든 것을 걸었다. 개혁이란 게 불법도 정당화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총선 승리 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집권당과 대통령의 반개혁적 행태들과 부도덕성 그리고 무능함은 바로 그런 것의 표현이다. 그리고 대중들의 지지 철회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라크 파병국들도 철수를 검토하는 마당에 적극적인 파병 찬성으로 선회한 것이라든지, 김선일 씨 피랍과 살해 과정에서 나타난 진실 은폐 의혹과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태도, 그리고 문화관광부 장관의 교수임용 청탁 의혹 사건에서 드러난 현직 차관 및 노무현 지지 핵심세력인 서프라이즈 대표의 뻔뻔스러운 거짓말과 부도덕성, 이런 것만 거론하더라도 그러하다. 이라크파병 문제처럼 주요한 공약사항들은 주저 없이 뒤집으면서도 수도 이전은 공약사항이라며 대통령직을 걸겠다는 것이나, 검찰 개혁처럼 여론이 유리한 현안은 여론을 이유로 강행하고 수도이전 문제처럼 여론이 불리한 현안은 여론을 무시하며 강행하는 모순성은 이 정권의 권력에 대한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정말 가관인 것은, 자신들의 권력 추구에서 비롯된 비리와 실정에 대한 비판을 개혁에 대한 공격, 음해라고 하면서까지 변호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조선일보라는 비판은 전가의 보도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의 어느 기자가 노무현정권의 실정과 지지자들의 심각한 이탈을 보도했는데, 서프라이즈 사이트에서 이를 두고 “오마이뉴스가 언제부터 조선일보가 되었나”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친정부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도 이런 비난이 횡횡하니 다른 비판들에 대해서는 오죽 하겠는가?
교수임용 청탁사건을 터뜨린 성균관대 교수에 대해서 참여정부를 음해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냐는 정부의 처음 반응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처럼 “교수임용 문제로 청탁 한번 하는 게 뭐가 문제냐, 보수언론도 (국회의원인) 나한테 여러 가지로 청탁한다”며 반박한다면, 그건 막가는 행태다. 너나 나나 마찬가지라면, 개혁을 운운할 것도 없다.
탄핵 국면에서 유시민은 대통령의 탄핵을 ‘공화국의 위기’라고 하면서 수구반동의 수중으로 떨어질 공화국을 시민의 힘으로 지켜낼 것을 호소하였다. 지금 보면 명확해졌는데, 그것은 공화국의 위기가 아니라 다만 그들 자신의 권력의 위기였을 뿐이었다.
총선의 승리와 탄핵의 기각으로 되살아난 것은 그들만의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대중들은 이 공화국에서 배제되어있다. 대중들이 공화국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보수주의뿐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의 사이비 개혁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사이비 개혁을 저지하고 진보적인 구조개혁으로 나가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가? 진보진영의 책임을 전가시킬 생각은 아니지만, 그 주요한 요인의 하나로 자칭 개혁과 진보를 내세우고 그들만의 공화국에 결합한 다양한 자유주의 세력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KBS, MBC 등 이른바 공영방송과 한겨레신문으로부터 오마이뉴스, 서프라이즈 등 인터넷 매체, 그리고 참여연대, 안티조선, 노사모 등 각종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세력은 이제 진보진영을 억압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들은 자유주의 권력에 집적, 간접으로 참여해 있고, 또 그런 만큼 권력의 일부분으로서 전임 권력자들 못지않은 부정적 행태까지 보이곤 한다.
집권 초반에 이미 무너져가는 노무현 정권을 노사모처럼 온 힘을 다해 전투적으로 변호하고자 하든, 아니면 참여연대처럼 외관상 비판을 하면서도 은밀하게 이 정권을 지키고자 하든, 이들은 이미 진보적인 개혁의 적대자들이다.
이들이 노무현정권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명분은 아마도 이 정권이 무너질 경우 한나라당의 집권과 이른바 수구반동화가 예상된다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진보진영이 노무현 정권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사이비 개혁의 노무현정권을 버리고 진보진영을 지지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같은 정치지형에서 이들이 진보진영과 결합한다면, 노무현정권의 몰락은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진보적인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이 길을 거부하는 데, 왜냐하면 이들의 자유주의가 진보정권의 개혁정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한국정치의 수구반동화란 노무현정권 지지의 명분이고, 진보진영에 대한 협박이며, 자유주의 수호의 결연한 의지표명이다.
사실이 이러할 진데도, 아직도 이 정권과 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미련을 갖고 개혁을 위한 연대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진보진영의 다수파를 이룬다. 이미 정권 말기의 증상을 보이는 현 정권 하에서 노사정 합의주의의 경향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것도 다름 아닌 그 표현이다.
우리가 단순하게 자유주의 세력 탓을 하는 게 아니라면, 노사정 합의주의와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건 진보진영의 시대적 과제다. 지난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다함께나 3인의 좌파교수(남구현․이해영․최형익) 등과 같이 탄핵 반대와 자유주의 지지를 선동했던 그런 오류는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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