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화]의 이라크통신

다시 바그다드로

정확히 요르단 암만에서 지낸 시간이 3주가 지났어요. 첫 번째 주는 살람 아저씨와 함께 있었고 나머지 두 주는 혼자서 지냈어요. 새벽 3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인근 모스크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하지요. "알~·~~~라~~~일~~~라아 ~~~~~" 그 소리를 들을 때 참 좋아요. 마음도 정화되는 느낌이고 고요해지는 느낌을 느껴요.

마지막 한 주는 거의 매일 일출을 보았어요. 새벽 5시쯤이 되면 조금씩 날이 밝아오고 그러면 저는 샤워를 한 다음에 이슬람 전통 복장인 디쉬다쉬로 갈아입고 인근 언덕으로 향하지요. 5시 30분 경이 되면 저쪽 요르단 대학 너머 지평선에서 천천히 해가 떠올라요. 그러면 가만히 쳐다보면서 때로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멍하게 입을 벌리고 '아! 또 하루가 시작되는 구나.'

이 삼십 분이 지나면 해는 완전히 떠올라서 더 이상 쳐다보기가 힘들어요. 그러면 동네 산책을 하지요. 한국이나 암만이나 이라크나 새벽에 가장 먼저 깨어서 일을 하시는 분은 청소하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오랜지색 유니폼을 갖춰 입고 커다란 쓰레기 차 뒤를 쫓아다니면서 청소를 하시는 모습은 한국과 비슷해요. 그리고 10대 중반정도 되는 청소년들이 당나귀를 타고 길거리에 버려진 캔과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모으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구요.

삼 주 동안 암만에 있으면서 이라크 상황을 예의주시하였지요. 와중에 미군정은 이라크 임시정부에 쇼를 하듯이 주권이양을 하였고 저항세력의 공세는 며칠 동안 약간 수그러지는 듯 했지만 이내 연합군과 임시정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였고 주권이양이 있는 지 열흘 정도 지난 후에는 바그다드 시내에서 이라크 임시정부의 군대와 저항세력간의 강력한 교전이 있었고 이삼일 전에는 바그다드 시내 중심부 소위 그린존이라고 불리 우는 곳에 자살 폭탄차량공격이 있었지요. 그리고 저항세력에 의한 외국인 납치는 계속 있었지요. 미국해병대원 하순 상병, 파키스탄인, 필리핀인, 불가리아인, 최근에 사우디출신의 운전사까지.

이라크의 상황은 제가 떠나올 때와 비교해서 전혀 안정이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3주 동안 암만에서 있으면서 제 마음은 많이 안정을 찾았어요. 고(故)김선일 님 사건 이후에 겪었던 내적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쫓기듯이 찾아온 암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급해지고 불안해 했던 마음. 내가 왜 이라크에 오고자 했는지, 전쟁터인 이라크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수없이 많은 질문을 대할 수가 있었고 이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지요.

아직도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구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몇 가지 명확한 것은 저는 전쟁터에서 삶을 살아왔었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이라크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고 이들과 함께 '평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언지 알아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라크가 전쟁터라는 사실을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감안하고 이라크에 오고자 했었지요.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국가적 관계에서 만들어 낸 전쟁이라는 최악의 구조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고, 좀 더 나은 평화적 상황으로 만들어내려 하고 있고 저는 이러한 작은 움직임에 함께 하기 위해서 이라크에 오고자 했지요.

'이라크 인에 의한 이라크의 재건'

이 명제는 거대한 국제적, 구조적 틀 내에서 보면 현실성이 없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이지만 실상 이라크 사회 내에서는 그들 스스로 전쟁이 만들어내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조직을 결성해내고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모습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요. 이를 보면 미약하나마 '이라크 인에 의한 이라크의 재건'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저는 그 일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었던 것이었구요.

이것들이 제가 다시 이라크로 들어가고 싶은 이유이자 제가 이라크에 가서 하고자 하는 일이지요. 사실 제가 올해 6월 달에 두 번째로 이라크에 2년 이상 오고자 했을 때의 이유와 똑같아요.

물론 제가 한국인기에 작년보다 훨씬 위험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이는 제가 한국인이기에 겪어야 할 위험 비용이 되었어요. 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라크인들과 처음 대할 때 느껴야 할 따가운 시선부터, 저항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부분까지 다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지녀야 할 업(業)이 되어 버렸어요. 사실 이 업(業)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해요. 한국정부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추가파병을 취소하고 현재 주둔하고 있는 서희, 제마부대를 철수시키면 돼요.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죠. 그러면서 한국정부는 얼마 전까지 이라크에 평화재건과 평화정착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더군요. 작년에 이라크에서 한국군 추가 파병 결정이 있을 때 한국정부와 일부 파병찬성론자들이 입에 달고 다녔던 이 새빨간 거짓말 때문에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 파병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괴롭고 이라크인들에게 미안한 것은 둘째 치구요.

전쟁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고 지금도 이라크인들을 고통의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어요. 저는 이들을 고통의 상황으로 밀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들을 대할 때 진심을 사과하고 미안해하고 국가가 만들어낸 이 최악의 관계를 다수의 한국인은 다르다고, 많은 한국인들은 당신들(이라크인들)과 친구가 되길 바라고 당신들에게 평화가 오길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노력하면 쉽지도 않겠고,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만 국가가 만들어낸 관계가 아닌 또 다른 이라크인들과 한국인들 간의 새로운 관계는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실상 많은 한국인들이 추가파병을 반대하고 이라크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잖아요. 저는 여기서 힘을 받고 다시 들어가려고 해요.

천천히 꾸준히 가야겠지요.
그리고 잘 되겠지요.
이제 다시 바그다드에서 소식 전할께요.
살람 알라이꿈 알라이꿈 살람 (평화가 그대에게, 그대에게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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