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노동조합 등이 무기력하게 파업을 접었지만, 파업과 관련한 쟁점은 무기력하게 접어서는 안 된다. 또 악질적인 반파업 이데올로기와는 계속 논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다음 파업 때 또 다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칼럼난에 다음 글을 올려놓는다. 이 글은 아직 파업이 진행 중이던 7월 23일자의 한 지방신문의 시론으로 실렸던 것인데, 여기서 칼럼 제목을 바꾸고 약간의 문장을 첨가하였다. - 김성구]
서울과 인천 등 다섯 개 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이번에도 정부와 언론의 목소리는 늘 듣던 그런 것이다. “교통대란 우려”, “시민을 볼모로 하는 파업”, “적자 지하철의 노동자이기주의”, “불법파업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등등, 이른바 참여정부 하에서도 반파업의 이데올로기는 변함없고, 사사건건 앙숙인 것 같은 노무현과 보수언론도 이 점에서는 한 목소리다.
자유주의 대 보수주의라는 그들 간의 이념적 차이도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반노동자적 이해관계에 비추어보면 부차적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파업의 쟁점을 이해할 수 있는 보도는 들어보기 어렵다. 어쩌다 TV 토론에서 파업문제를 다루는 경우도 그건 원님 지나간 뒤에 나팔 부는 격으로 공권력에 의한 잔인한 파업진압이 끝난 후의 일이다.
지하철노조의 이번 파업은 연례행사적인 임단협의 문제를 넘어 주 5일제 근무와 관련된 것이어서 그 쟁점도 보다 명확하다. 현재의 노동인력으로는 주 5일제 근무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인력이 충원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인력을 보다 유연하게, 강도 높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들은 신규채용을 통한 인력충원을 요구하는 데 반해, 정부와 공기업 경영자는 인력충원을 거부한 채 유연화와 노동강도 제고로 대처하려 한다. 주 5일 근무제로 유연화가 제고되고 노동강도가 강화된다면, 또는 이를 피하려고 노동시간을 연장한다면, 주 5일제를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정부와 경영자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교대근무조건은 비인간적이고, 인력부족으로 안전운행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주 5일제 도입이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킨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1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또다시 지하철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가?
정부와 공사경영자는 지하철의 과도한 적자 때문에 노동자들의 인력충원 요구를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언론은 과도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지하철 부채와 적자는 노동자들의 임단협 조건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공기업에서 비롯되는 낮은 지하철 요금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그 적자는 단순하게 허공에 날라 간 손실이 아니라 낮은 요금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이익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물론 적자는 세금으로 메꾸어야 하는데, 여기서 적자 지하철과 혈세라는 비난은 세금을 내면서도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 부유층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불만이겠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불만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은 적자 지하철이라는 부유층의 불만을 일반 시민들의 불만인 양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적자 지하철을 막아야 한다면, 그럼 요금을 올려야 하는가? 그것이 시민들의 이익과 배치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실이 이러할 진대도, 공기업 경영자들은 노사교섭을 하는 중에도 정부에 직권중재를 요청하였고, 정부는 파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직권중재로 회부하여 이번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만들었다. 교통대란을 우려하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교통대란을 정말 걱정하였다면, 불법파업으로 몰아 파업을 기정사실화 했을까? 그 전에 노사교섭을 통해 노동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타협을 끌어내도록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나? 결국 시민들을 볼모로 해서 교통대란도 불사하겠다던 쪽은 노동조합보다는 정부였던 셈이다.
따라서 지하철 노동자의 평균연봉이 4천여만 원이라고 공개하면서 이번 파업을 노동자들의 부도덕한 이기주의와 노•노간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파업의 쟁점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부가 천만 원 연봉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그런대로 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을 것이 아니라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경영자들과 엄청난 불로소득으로 흥청거리는 부유한 자산계층의 부와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
몇 천만의 노동자 연봉에는 그렇게 분노하는 정부와 언론, 그런데도 자본가들의 수십억 원의 연봉과 막대한 불로소득에는 관대하기 짝이 없다. 결국 정부와 언론이 비정규직을 운운하는 것은 다만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용일 뿐이다. 설령 이를 선의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노동자계급”내의 사회주의는 지배계급의 요구이지 노동자계급의 요구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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