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또 노동조합과 재벌 간에도 한국경제가 위기냐 아니냐의 논쟁이 한바탕 벌어졌는데, 이렇다할 논쟁의 결말도 없는 실정이다. 이 논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위기론의 진실을 알기 어려워 답답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척도나 기준을 명시하고 위기론에 입각해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여야간에, 또 노동계와 경영계 간에 경제위기라는 진단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만을 계산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론 주장의 근거로서 경제현실을 거론하고 있지만, 그 현실을 부분적으로, 단편적으로만 이해할 뿐이었고, 상반되는 측면들의 전체적 연관을 위기론과 관련하여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대표적인 거시경제지표의 양호함을 들이대면서 경제위기론을 불순한 세력의 음모로 일축하였고, 나아가 과장된 위기론이 잘나가는 경제를 정말 위기로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심각한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의 양산, 소비와 투자의 침체, 대외환경의 악화 등 민생파탄과 경제위기를 주장하면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정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재벌과 경영계도 경제위기론에 동참하였는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벌개혁과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화 하는 등 기업을 운영하기 위한 보다 좋은 환경을 창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평가를 함께 하면서, 경제위기론을, 재벌과 보수언론이 재벌개혁을 저지하고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민생파탄과 삶의 위기를 지적하였고, 이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하면서 정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 한국정치의 현재의 논쟁구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극히 정치적 성격의 것이라는 게 드러난다. 경제위기 논쟁이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그 해법 여하에 따라 위기극복을 위한 부담을 어느 계급, 어느 계층이 져야하는가가 '일차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의 분석과 그 해법을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위기분석을 위해서는 경제학의 위기론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론은 케인스 경제학을 제외하면 사실 경제위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이어서 위기분석은커녕 그 분석을 가로막는 주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는 자유경쟁이 보장되면 완전고용과 최적 균형에 도달한다고 가르치는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경제위기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도 저널리즘에서 관변의 경제학자들, 시민단체의 경제학자들, 언론사의 기자들은 한국경제가 이래서 위기다, 저래서 아니다 일상적으로 떠들어댄다.
저널리즘에서 떠드는 각종의 위기 진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것이지만, 저널리즘의 위기론은 강단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론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론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련 하에서 그 용어로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실은 부르주아 경제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저널리즘의 경제위기론은 정체불명의 이론이고 이렇게 강단의 위기론과 저널리즘의 위기론은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사기가 공공연하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가, 경제학 전공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은 말이다. 케인스 경제학에 입각해 경제위기를 운운한다면, 그건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오늘날 강단에서 케인스 경제학을 따라가는 논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실의 위기논쟁에서 수요측면과 분배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는 보고 듣기 어려운 희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부르주아 경제학이 저널리즘에서 경제위기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논거가 있다면, 그건 현실의 세계가 학문의 세계와 달리 자유경쟁이 확립되어있지 못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케인스주의의 유산인 국가개입주의가 자유경쟁을 제한하고 그래서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축출을 통해 시장의 자유와 경쟁의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명령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학이 결코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는 건, 간단하게 케인스주의의 시대로 돌아가 보면 된다. 케인스주의 시대에 국가개입주의는 강화되었고 자유경쟁은 지금보다 더욱 훼손되었는데, 왜 당시 경제는 지금보다 더 호황기를 구가했을까?
한국경제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왜 국가주도하의 공업화정책 시기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지금보다도 고도성장을 구가했을까? 결국 부르주아 경제학은 과거 시기의 성장의 신화도, 현 시기의 경제위기도, 어느 것 하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한국경제의 현재의 위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적 위기론이 필요한데, 그러나 정치경제학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종속적 성장이라는 한국경제의 특수성을 포괄하는 위기분석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정치경제학 원론의 수준에서는 한국경제의 위기와 그 특수성을 해명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적어도 세 개의 분석차원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정치경제학적으로 위기라 함은 마이너스 성장률과 가격 폭락, 기업과 은행 도산, 그리고 그에 따른 실업 증대를 특징적 지표로 하는 산업순환의 한 국면이다. 오늘날에는 국가의 경제개입이 제도화됨에 따라 이와 같은 고전적인 위기현상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났지만, 마이너스 성장률과 고실업은 여전히 위기를 가늠하는 기본 지표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 경제는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근년에 성장률이 낮아지기는 하였어도 3% 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또 실업률도 3-4% 수준에 머무는 상황이어서 경제위기라고 할 수는 없다. 즉, 한국경제는 경기순환상의 위기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위기는 선진국처럼 마이너스 성장률의 순환적 위기로 나타나기보다는 플러스 성장률, 심지어는 고도성장의 와중에서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로서 나타나곤 하였다. 1975년, 1979년 그리고 1997년의 위기가 그런 것이었다. 그에 반해 1970대 이래 마이너스 성장의 위기로 나타난 것은 1980년의 위기와 1998년의 위기뿐이었다. 이 위기들은 모두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와 결합된 것으로서, 거칠게 말한다면, 한국에서는 순환적 위기가 존재하지 않았고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가 규정적 위기이었다.
말하자면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하면서도 (실은 튼튼한 게 아니어서) 국제수지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가 강타하곤 하였는데, 이는 한국 경제가 외국자본과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대외종속적 방식으로 성장해온 데에 기인한다. 이런 대외종속적 경제성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MF관리 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고, 그런 점에서 위기의 잠재성은 보다 커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외환위기 이후 국제수지가 일단은 흑자기조로 전환되었고, 외환보유고가 1500억 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당장 이런 외환위기가 재발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경제는 지금 위기가 아니고 근거도 없이 정치 공세로 위기논쟁이 벌어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와 관련하여 세 번째 차원의 위기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한국 경제는 그 이전의 국가주도 성장경제로부터 크게 변화하였는데, 이 변화는 한편에서 성장률의 명백한 둔화, 성장과 고용의 연계 약화 또는 구조조정에 따른 상시적인 실업 위기, 비정규직 양산, 민생 파탄과, 다른 한편에서 외국자본, 특히 금융자본의 지배력 강화와 해외시장에의 의존 심화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안정 또는 구조적 위기의 심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이래 선진국 경제가 구조위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 경제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마침내 구조위기로 들어선 게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구조위기는 물론 선진국과 달리 대외종속성의 심화라는 특수성을 포함하고 있지만(수출증가가 그나마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그 아이러니의 표현이다), 성장둔화와 고실업이라는 동일한 특징을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적 경로에서 나타나는 모순의 표현으로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초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부정할 수 없이 심화되고 있다.
즉, 이 위기는 김대중 정부와,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소산이며, 이런 점에서 현 정부는 경제위기론을 부정해서도 안 되고 그 책임도 결코 면할 수 없다. 한나라당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의 이러한 위기 현상을 고발한다 하더라고 한나라당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의 동일한 기반위에서 친재벌적 경향을 보다 강화하고자 하는 한, 그 비판은 위기 극복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정략적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냐 아니냐의 논쟁은 이렇게 신자유주의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경제위기론을 재벌과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라고 차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이 위기의 성격을 폭로하고 노동자·민중운동이 위기를 극복할 진보적 대안과 결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민주노동과 대안> 2004년 7·8월 합본 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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