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들꽃 이야기(5)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은 소슬바람과 함께 울긋불긋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남쪽에서부터 진달래 꽃물로 붉게 물들었던 산은 이번에는 북쪽에서부터 다시 한번 붉게 단풍으로물들 것이다.

단풍나무는 봄에 꽃이 핀다. 그 꽃은 작고 소박해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단풍나무가 꽃 피고 지는 걸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붉게 물든 단풍잎은 누구나 한번쯤 책갈피에 끼워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려 했을 것이다. 지는 잎이 꽃보다 아름답다.

설악산이나 북한산쯤에서 만나게 되는 단풍나무는 실은 당단풍나무다. 단풍나무는 내장산 아래쪽 남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다. 단풍나무 무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봄이면 사람들에게 수액을 수탈 당하는 고로쇠나무가 유명하다. 단풍색은 복자기나무와 신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져 들어와 가로수로 심은 은단풍나무와 여름에도 붉은 색 잎을 달고 있는 일본 원산의 노무라단풍은 굳이 산에 가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단풍나무 멋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을 들어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해나 가을 가뭄이 심한 해는 단풍이 덜 아름답다. 채 물들기 전에 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물지 않고 알맞게 건조하고 햇볕이 많이 비치면서 기온이 천천히 내려가는 해의 단풍이 아름답다.

이제 잎은 할 일을 다했다. 물 공급도 그쳐가고 엽록소도 분해되면 붉은 색소인 화
청소가 새롭게 생겨나 잎은 붉게 물들게 된다. 잎자루와 나뭇가지 사이에 '떨켜'라는 층이 생겨서 물과 양분이 지나던 관이 막히고 결국 잎사귀는 찬바람에 날려 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다. 잎이 떨어지고 난 자리를 잘 보면 잎이 떨어진 흔적 위로 다음 해에 푸른 잎으로 자라는 겨울눈이 남겨진 것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늙을수록 추해져 가는 것이 많다. 점점 탁해지고 회색으로 늙어 가는 여러 군상들을 볼 때, 문득 똑같이 퇴색해 가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단풍나무가 생각난다. 단풍나무가 더 아름다운 것은 붉은 뒷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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