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유감

파병 반대 집회에 갔다가 경악을 한 적이 있다. 집회장에 울려퍼지는 노래 때문이었다. 후렴구가 몇 번이고 반복되어 강렬하게 귀를 때렸다.

못가 / 우린 절대 못가 / 양키놈들의 총알받이 될 순 없어
못가 / 우린 절대 못가 / 니네들이 가 / 니네아들 보내!

나는 얼떨떨해졌다. 그게, 그런 건가.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을 죽일 수 없어서니까, 양키놈들이 가면 되는 건가. 또는, (‘니네들’이 지칭하는 바가 정확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지만) ‘양키들이’ ‘주인인 동맹’을 고수하는 위정자들의 ‘니네 아들’이 가면 되는 건가?!

그게, 그런 건가.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그 노래 가사에 나온 대로, ‘더는 무릎 꿇고 살 수 없어’ ‘양키들에게 뽄땔 보여줘야만’ 하기 때문인가?!

물론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참가하는 것일 터이다. 우리 군인과 우리 나라 사람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소박한 걱정에서일 수도 있고, 그 노래 가사에 나온 대로 ‘양키들에게 뽄땔 보여’ 주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과 폭력만은 안 된다는 절대 평화주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에 내가 경악했던 것은, 이라크 민중의 죽음과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양키놈들의 총알받이’가 되어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만 아니면 된다는 거다. 니네가 가면, 니네 아들이 가면, 도대체 그 ‘니네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라크의 사람들을 수백 수천 명 죽이든 말든, 그러다가 반대로 저항군에 죽든 말든, 미국에 당당하게도 ‘우린 절대 못가’면 되는 일이다. 적어도 ‘니네들이 가’라고 외치고 있는 그 노래 가사에 따르면 그렇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우리’는 이라크 민중을 포함한다. 내가 김선일 씨의 죽음을 애도했던 이유는, 그가 우리 나라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전 세계 지배계급의 전쟁 게임에 영문 모르고 쓰러져간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는 미군 젊은이들의 죽음과 삶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당연히도, 내가 생각하는 ‘우리’, 즉 이 제국주의 전쟁으로 희생되는 전 세계 민중들 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이라크인들이다.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이 일상적인 죽음과 공포와 억압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외국 점령군이든 국내 독재정권이든 압제에 저항하는 것은 전 세계 민중의 빼앗길 수 없는 권리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라크 민중의 고통이 가장 뼈아프다. ‘우린 절대 못가’니 ‘니네들이 가’서 이라크인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또 죽으라고 말할 수는, 절대, 없다!

만약 그 노래가사가 지칭하는 대로 ‘우리’가 우리 나라, 우리 군대, 우리 국민이라면, 그렇다면, 아무리 안타까워도 명확히 해 둘 것이 있다. 일차적으로 우리 나라, 우리 군대, 우리 국민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노래 가사에서는 ‘양키놈들의 총알받이’라고 했지만, 미군의 총끝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지금 바로, 미군은 이라크 민중의 삶에 총알과 포탄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곁에서 그것을 기꺼이 돕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군대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며,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뽑은 것은 우리 국민이다.

적어도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 흘리는 이라크인들의 죽음은 바로 내 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우리 나라와 우리 군대와 우리 국민은 ‘총알받이’ 운운하며 희생자연하거나 ‘살인마 양키놈들’에 책임을 돌릴 계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최소한 미군이 이라크인에게 하는 그대로, 총을 우리 목줄기에 들이대지 않은 한은 말이다. 가해자는 ‘니네들’뿐만이 아니라 ‘우리’이기도 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노래는 노래패 ‘우리나라’의 ‘못가!’라는 노래였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유감이지만, 우리 나라도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만 하다. 하다못해 내가 프랑스인이나 브라질인이나 필리핀인이어서 ‘니네들도 가지마!’라고 맘껏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우리나라’의 노래가 지칭하는 대로 ‘우리’가 우리 나라, 우리 군대, 우리 국민이라면,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 군대는 철수해야 하며, 우리 국민이 뽑은 우리 나라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우리 국민의 손으로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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