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이 없어서 테러를 못 막나?

열린우리당은 김선일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불행한 사태를 막는 근본적인 방법, 즉 이라크 파병 철회를 모색하지 않고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테러를 막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미리 납치 정보를 입수하여 대응을 하였더라면 김선일 씨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국가정보원은 테러정보 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을 만든다 한들 정보기관에서 사전에 테러정보를 입수하지 못하면 테러 발생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김선일 씨 사건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많았고 테러 방지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번 사건에서 외교통상부나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정부의 어떤 부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 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왜 사전에 납치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였으며 납치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구출에 실패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진상 규명이 이루어진 다음 그 결과에 따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논의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은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테러방지법부터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병의 원인도 모른 채 처방부터 하는 꼴이다.

아직 법안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논의된 테러방지법안을 보면 국정원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고 테러 예방과 대응에 관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대테러센터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 특수부대의 출동도 요청할 수 있다. 국정원은 비밀정보기관이다. 얼굴 없는 비밀정보요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외부에서 알기가 어렵다. 활동 내용을 알지 못하면 직권 남용과 인권침해 행위를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도감청을 통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고 근거없는 계좌추적이 남발될 수 있다. 의심대상 외국인에 대한 사찰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그와 접촉하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사찰 활동도 행해질 것이다. 테러가 발생하면 군부대를 동원하여 군사작전하듯이 테러 대응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침해는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테러방지법은 국내에서의 테러 대응 활동에 관한 법이므로 이번 사건과 같이 국외에서 발생하는 테러의 방지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자칫 테러방지에 별 실익도 없으면서 정보기관의 권한만 강화시켜줄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파병만 없었다면 김선일 씨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 국민들이 테러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밀정보기관의 권한만 강화시켜주는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테러를 근원적으로 막을 방법을 외면한 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테러에 노출시켜놓고 다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6월 29일)
덧붙이는 말

장주영 님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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