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 손 안에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2004년 발간한 전 세계 여성폭력에 대한 획기적인 보고서인『그것은 우리 손안에 있다 - 여성폭력을 중단하라』It's in our Hands, Stop violence against Women를 보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여성폭력의 양상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케케묵은 냉소나,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여성운동은 시효가 만료된 낡은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일거에 무너뜨릴 정도로,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은 각종 폭력에 맨몸으로 내몰려 있으며, 법과 사회, 종교, 문화는 여성에게 부단히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요소로 군림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증가일로에 서 있는 수많은 분쟁지역에서 일어나는 대대적인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과 여성 병사나 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폭력에 관한한 선진국 또한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은 영국의 경우 1분에 한 번씩 신고되고 있는 익숙한 범죄에 속하며, 가정폭력의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들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여성들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심각한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스스로 본인의 결혼을 선택할 수 없다는 인습이 매우 뿌리 깊게 온존해 있어서, 만일 이를 거절할 경우 '명예 살인'honour killings이라는 죄명으로 아버지나 오빠 등이 가부장의 명령을 어긴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에서도 '정상 참작'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사법 시스템 또한 ‘명예살해’라는 그럴듯한 명칭의 범죄에 의해 잔인한 방법으로 친인척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여성들을 구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프가니스탄 같은 경우에는, 끔찍한 수준의 가정폭력이나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피해서 불가피하게 집을 탈출한 여성들은 이내 범법자로 몰리기 일쑤이다. 아프가니스탄 법률에 의하면, 여성의 가출은 명백한 범죄에 속하며, 집을 나온 여성들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낙인 찍혀서 가중한 처벌과 무차별적인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태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레즈비언 여성의 성적지향을 바꿔놓는다는 명분으로 십여 차례 이상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가했으며, 피해자는 이의 여파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여성 동성애는 남성 동성애에 비해 훨씬 과도한 처벌에 직면해 있다. 여성에게는 성욕이 없으며 정숙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성욕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인습에서 보자면, 여성 동성애는 가장 전복적이고 위험한 삶의 형태로 해석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국가들에서는 여성의 혼전 처녀성이나 부부관계 너머의 성관계에 대해서 법률적으로 강제하고 있어서, 이를 어기는 여성 또한 엄격한 처벌의 압력에 신음하게 된다. 간음의 경우도 이중의식이 적용돼서 남자의 불륜은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간음을 행한 여성들은 잔인한 처벌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최근에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 가운데, 나이지리아 여성이 간음을 해서 아이를 임신하였다는 이유로 그녀를 돌로 때려죽이라는 야만적인 형이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운동에 힘입어 최악의 사태는 그나마 막을 수 있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 만연돼 있는 여아에 대한 조혼 강요는 유엔이 정한 '어린이권리헌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지만,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판국이다. 이른 나이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 혹은 강제적인 성관계에 내몰리는 여성들의 경우, 에이즈를 비롯한 불치병과 건강문제에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음핵절제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성욕에 대해 부정적으로 숫제 봉쇄해버리는 극단적인 시술이다. 여성의 성욕은 건강하지 못하고 악마적인 요소로 폄하돼서 불온하게 취급받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시술 환경에서 비위생적인 음핵절제 수술을 받다가 숨지는 여아들은 매우 많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아이를 낳고 안 낳을지 여부를 자유롭게 판단하여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비일비재하게 침해받고 있다. 피임과 부부관계 내에서도 원하지 않을 경우 섹스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너무나 자주 억압받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한 아이 낳기 운동이나 여아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로 인하여 여아를 임신하였을 경우 낙태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남아공에서는 어린 여아와 섹스를 하면, 에이즈가 치료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속설이 널리 퍼져서 에이즈 보균자들이 어린 여아들을 성폭행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성년자 에이즈 보균자 가운데 무려 5/6 이상이 여아들이다.

성폭행은 전 세계에 만연된 범죄로 여성에 대한 일종의 섬뜩한 고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성폭행을 여전히 정조 상실 개념에 국한해서 해석하는 왜곡된 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사유 또한 대단히 심각하고 위험한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라기보다는, 여성의 정조(처녀성)을 침해한 이유로 경미한 법적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성폭행을 일종의 섹스라고 보는 그릇된 시각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정조를 잃었다는 이유로 2차, 3차의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말레이시아의 종교지도자는 노출이 심한 의상을 착용하고 외출하는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해도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분쟁지역에서는 여성폭력이 더욱 야만적인 방식으로 자행되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는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성폭행은 이미 또 다른 전술적 요소로 자주 악용되고 있다. 적군의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게 함으로써 피의 혈통을 더럽혀서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비열한 전술뿐만 아니라, 성폭행을 통해 에이즈를 비롯한 병이 급속도로 옮겨지고 있다. 이런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비단 적군들에게만 폭행을 당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족 내에서도 정절을 잃은 여성으로 적의 아이를 낳은 부도덕하고 오염된 여인으로 분류되어서 이중삼중의 고통에 직면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성폭행에 의해 에이즈에 걸릴 경우, 피해 여성을 살해하거나 마을에서 내쫓으려는 시도까지 번번이 행해지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이나 구유고연방에서 자행된 집단적 성폭행은 쉴 새 없이 행해졌으나, 책임자는 거의 처벌되고 있지 않다.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는 직접 내전에 가담한 병사들에 의해서만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유엔 소속 평화유지군에 의해서도 숱하게 행해졌다. 소말리아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벨기에 군인들은 생일파티를 자축하기 위해서 한 소말리아 소녀에게 강제적으로 스트립쇼를 강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그녀는 집단성폭행의 피해자가 되었다. 또한,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영국 군인들은 케냐에서 수많은 여성들을 성폭행하여서 여러 혼혈아들이 태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조사와 배상을 극히 나태하고 형식적으로 임하고 있다.

전장에서 부족한 전투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최후에 동원되는 것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특히 여성들은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고향에 남아봤자, 처절한 가난과 궁핍, 무엇보다도 성폭행의 항시적인 위협에 시달린다는 공포로 직접 전쟁에 자원해서 여성군인이 되는 경우가 잦다. 명분 없는 전쟁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참여한 여성 병사들은, 내부에서 역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일쑤일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상상하기 힘든 정신적 문제를 앓게 된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멕시코의 Ciudad Juárez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멕시코 전역의 가난한 여성들에 대한 연쇄살인이 10년 넘게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지만, 경찰 당국은 사건 해결을 위해 지극히 미온적인 대처에 임할 뿐이다. 이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폭행, 납치, 살해는 끊이지 않고 비일비재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의 안전권 자체가 중대하게 위협받고 있다. 피해 여성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멕시코 당국은 사태를 소극적으로 방관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거의 처벌되고 있지 않은 형국이다.

중남미에서는 외국인 기업이 만든 공장이 적잖다. 이곳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 또한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여성들로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황량하게 내몰려 있다. 이들은 작업 현장에서 maquila라고 부르는 공장 감독자들에 의해 수시로 폭행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밀폐된 환경에서 열쇠로 잠겨진 채 갇혀서 자신이 하루 동안 채워야할 양을 끝내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게끔 통제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공장에서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나 인권운동가 등은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실제로 노동운동을 하다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여성폭력에 관한한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야만적인 폭력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여성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한 판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일단 제도적인 접근과 시민운동적인 접근이 동시에 기여하여야 한다. 각국의 정부들은 문화나 종교 차이 등의 핑계로 여성들에 대한 명백한 폭력과 차별을 방관하는 기만적인 작태를 탈피해서, 구조적인 노력을 통해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을 꾀해야 한다. 전쟁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에 대한 집단성폭행의 가해자들은 필히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일국의 정부가 이 역할을 온전히 해낼 수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심판을 받는 것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정당한 법적 처벌과 자세한 책임 규명을 통하여, 성폭행은 쉽게 간과될 수 있을 법한 가벼운 사건이 아니라, 여성 인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끔찍한 반인륜적 범죄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시민운동적인 접근으로는 국제사면위원회가 펼치는 것과 같이, 자국 내의 여성문제에만 국한된 관심을 획기적으로 넓혀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폭력에 대해 함께 분노하며 더불어 단결해서 싸우는 자세와 실천이 깊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소외받은 자와의 연대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인권문제는 결국 상호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체득할 수 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밝힌 바와 같이, 여성폭력 문제는 이른바 선진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만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경미한 사건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너무나 자주 끔찍하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폭력의 양상이 되었다. 선진국 또한 가정폭력이나 성적소수자 여성들에 대한 편견 어린 폭력적 대응, 인신매매, 성매매 등의 현상은 매우 자주 보고 되고 있다.

여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국가나 공동체에서는 그렇지 않는 곳보다 범죄 발생률이 낮다는 지표를 통해, 여성폭력은 노력을 통해 충분히 억제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끔찍하고 야만적인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표한다. 그들이 하루하루 처절하게 겪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야만적인 폭력에 대해 침묵하지 않은 채, 함께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그 자체가 싸움과 연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런 척박한 시작을 통해 조금씩 폭력은 해결의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여성폭력의 문제를 법적인 처벌과 책임규명으로 이끌어내는 투쟁의 성과로 귀결될 것이다. 이를 통하여 보편적으로 흐르고 있는 인권의 가치가 모든 이에게 골고루 발휘되는 세상으로 성큼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7월 16일)
덧붙이는 말

박정준씨는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며, 최근에 엠네스티 본부에서 영문판으로 발행된 'It's in our hands'를 읽고 경험한 개인적인 충격과 분노를 타인과 공유하기 위하여 글을 기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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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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