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사랑해요!”
가수들이 브라운관 앞의 시청자들에게 늘상 퍼부어대는 고백이다. 그들이 정말 팬들을 사랑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지만 트로피를 부여잡고 눈물을 훔치면서 목 메인 소리로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가수들을 보노라면 괜한 의구심에서 벗어나서 결국 ‘진심인 게야’ 하는 결론을 선택한다.
더불어 사는 인생을 고민하며 살아가기에도 바쁜 시절에 남의 눈물까지 의심해야 한다면 그건 좀 거시기한 일이라는 생각도 이런 판단에 어느 정도 작용하였겠지만, 허나 그렇게까지 남들을 의심하면서까지 살아가야 한다면 삶이란 너무나도 삭막하고 살벌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들의 눈물을 믿으며 팬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아,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잘 나가던 시절, 1등을 먹고도 울먹이지 않으면 PD가 다음부터는 절대 1등을 시켜주지 않는다 카더라는 이야기는 물론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눈 딱 감고 믿어 준다 하여도 그 말을 100% 다 믿어주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행동으로 보기엔 조금 ‘어렵쇼’한 일들을 브라운관 뒤편에서 늘상 도모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음반을 낸 어느 가수는 뻔뻔하게도 아예 대놓고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욕지거리까지 퍼부었다. ‘돈을 내지 않고 MP3로 음악을 듣는다’며 쓰레기, 싸대기, 패대기, 개새끼 등의 쌍욕을 라임에 맞추어 자신의 음악 속에 배설하기까지도 했다.
물론 그도 언젠가는 브라운관에 우뚝 선 채로 시청자들에게 “여러분 사랑해요!”를 연발했을 터였다. 그들의 사장님들께서도 근래 들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하는 팬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참이다. 물론 전쟁을 한다고 해서 바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부부 사이라면 아주 흔하디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화해를 위한 ‘사랑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말 앞에는 특정한 ‘사랑의 조건’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에는 당연히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조건 없는 사랑이란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부모자식 간에, 그것도 내리사랑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아주 제한적인 것일 뿐, 그 외의 어떤 사랑도 ‘무조건’의 영예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조건을 걸고 팬들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러나 그 내용을 알아차리는 일 역시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잠깐만 둘러보면 안다.
“여러분께서 많은 돈을 써서 제가 한 몫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추리력을 조금만 덧붙여서 생각해보면 가수들은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주인인 사장님을 존중할 뿐이지 팬들, 소비자들을 존중하지는 않는 것 같다. 팬들은 언제나 가수를 존중하지만 가수는 팬들이 지갑을 여는 순간에만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비자들은 비단 음악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적으로도 존중을 받는 일이 흔치 않다.
그저 코딱지만큼의 존중받을 권리와 산더미만큼의 존중할 책임이 있을 뿐이다. 가끔씩 접하게 되는 권리라고 해봤자 음식물에 바퀴벌레 같은 것이 나왔을 때, 애초의 구매량보다 곱빼기로 더 쳐주었다는 소식 수준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음악소비자들은 전에 없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구매한 음반이나 녹음한 어떤 것을 MP3로 인코딩해서 듣고 전파할 수 있었음은 물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들을 라디오를 통해 기다리지 않더라도 P2P를 통해 손쉽게 구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수들과 업자들은 이를 두고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면서 경찰서에 신고하고 머리띠를 두르기도 하며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려 들었다.
소비자들이 그걸 MP3플레이어로 들으려 하면 그 때마다, 또 휴대폰으로 들으려 하면 그럴 때마다 그들은 사사건건 자신들의 권리를 앞세우고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자 했다. 그럴 때는 또 ‘변화된 조건에 맞게’ 사랑한다는 말은 오간데 없이 ‘불법’, ‘좀도둑,’ '쓰레기' 어쩌구저쩌구 하는 원색적 비난만이 뉴스와 신문과 음반에 새겨진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 나왔다.
업자들과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불법 MP3’라는 표현은 사실 그 자체가 불법적이며 애정이 결여된 표현이다. 수백만 네티즌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소비자들이 평소 즐겨듣는 MP3가 ‘불법’이라고 판정이 내려진 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다. 마찬가지로 MP3를 교환하기 위해 이용하는 P2P 사이트의 경우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재판을 거치면서 불법 판정이 난 사례는 거의 없다. 개인 대 개인의 자료 교환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법적으로 보장되는 소비자의 권리기 때문이다.
냅스터의 경우도 개인과 개인이 파일을 공유하는 P2P 시스템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정보를 집적하는 중앙 서버가 문제가 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P3와 P2P라는 합리적 조건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쓰레기’라는 비합리적 증오뿐이었다. 애초에 사랑의 조건이 맞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외국의 몇 가지 소식들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음반협회가 P2P 업자들과의 항소심 재판에서 또다시 패배했다는 소식이었다. 판결문은 ‘업자들이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 했다. 프랑스에서는 음반에 디지털복제방지장치를 장착한 CD 제조업자들이 소비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 소지가 있다고 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날아 들어왔다. CD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걸 이렇게 저렇게 복제하고 코딩하여 자기 처지에 맞게 사용할 권리를 포괄적으로 얻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디지털복제방지장치가 그러한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처럼 소비자의 권리를 잘 존중해주는 뉴스는 세계에서 업자들의 권리가 가장 잘 보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에서도 날아들었다. 음반사들이 특정한 벨소리, 컬러링 업체에 자신들의 음원을 우선적으로 공급했다가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 음반업자들도 MP3폰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고자 600만의 사용자들이 모여 있는 LG텔레콤에 대해 모든 음원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벨소리, 컬러링 등을 공급하는 콘텐츠제공회사들을 향해서도 LG텔레콤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 모든 음원 사용을 불허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아주 노골적인 공정거래법 위반이자, 당당한 위법 선언이다.
이렇듯 사생활 침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법 거래, 영업 방해 행위 등 불법을 일삼는 이들은 따로 있는데 항상 고개 숙이고 반성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다. 정말 ‘어렵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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