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2004 : 부당한 전쟁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투쟁의 이정표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3)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지속된다<3>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곳 베이루트에 모였다. 역류의 순간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같은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2003년 3월 20일의 침공 이후 수많은 미군이 죽어가고 있다. 9월 첫째 주에 전사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에서는 분리장벽이 하루에 1킬로미터의 속도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1년 전인 2003년 9월 14일, 이 홀 안에 있는 우리 중 일부는 WTO 5차 각료회의를 무산시킨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컨벤션센터 앞에서 신명나게 춤을 추며, 멕시코 칸쿤에 있었다.

몇 주 전 뉴욕에서 우리는, 조지 부시와 그의 전쟁 정책의 동조자들에 반대하는 50만 명 이상의 거대한 행진 대오를 보았다. 그러나, 향후 몇 년간 세계 운명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는 조지 부시가 존 케리 후보를 10% 앞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지들, 어느 쪽으로도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앞두고 우리는, 이스라엘의 공격과 미국의 침략에 저항하는 영예로운 이력을 가진 이 역사적인 도시에서 만났다.

알다시피 더 많은 사람들이 베이루트에 와서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했다. 오늘 여기, 우리 회의의 규모, 너비, 그리고 다양성은 우리 운동의 위력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있는 자리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지난 10년 이상 우리의 역사를 간단히 회고하는 것은 유의미할 것이다.

주변부로부터 전진

8, 9년 전에 우리의 운동은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1995년 WTO의 설립은, 세계화가 미래의 물결이라는 신호와 같았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산업혁명 당시 기계 도입에 대항해 싸웠던 러다이트들처럼 고통받을 운명해 처해졌다는 계시인 듯했다.
세계화는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 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도되는 다국적 기업이 절대 다수를 위한 절대선을 전세계에 가져온다는데, 어느 누가 그 약속에 반대할 수 있을까?

기업 이윤의 논리에 따르는 무역, 금융의 자유화와 탈규제화는, 국경 사이, 그리고 국경을 가로질러 위기를 가져오고 불평등을 퍼뜨리며 지구적 빈곤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우리의 운동은 자본주의의 엔진이 가장 강력하게 부동의 위치를 점하던 1990년대 동안에도 멸시에 맞서 견고하게 서 있었다.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는 세계자본의 흐름으로부터 상실된 통제력에 의한 불안정한 효과들에 대한 잔인한 증명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실로, 1997년 여름 치명적인 몇 주 동안, 빈곤선 아래에 있는 100만의 타일랜드 인들과 2200만의 인도네시아 인들에게 닥친 위기보다, 무엇이 더 야만적일 수 있겠는가?

아시아 재정 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을 볼 수 있도록 각성시킨 중대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중 한 가지는,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한 자유 시장 정책이 성장, 번영, 평등의 효과적인 싸이클이 아닌 불평등과 빈곤,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세계자본주의가 위기로부터 위기로 이동할 때, 사람들은 거리에서, 작업장에서, 그것의 파괴적인 논리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무대를 마련했다. 1999년 12월, 5만 명 이상 운집한 거대한 거리의 저항은, 씨애틀 회의장 안에 있는 개발도상국 정부들에 반기를 들고, WTO 3차 각료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전지구적 투쟁은 또한 세계경제 지배의 두 개의 축인 IMF와 세계은행의 합법성을 손상시켰다.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볼리비아에 새 정부를 세웠다. 칸쿤에서 열린 5차 각료회의에서 한국인 농부이자 비아 캄페시나 활동가인 이경해의 이타적 자살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고, 칸쿤은 제 2의 씨애틀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11월 마이애미에서, 동일한 시민사회 동맹과 개발도상국의 정부들은, 워싱턴이 무역, 재정 그리고 투자에 대한 급진적 자유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체제 - FTAA를 통한 서반구에 대한 위협 - 로부터 물러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제국에 대항한 투쟁

인류의 정의와 평등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군국주의와 전쟁에 저항해 왔다. 제국주의 개입에 대항하는 운동을 함에 있어,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좋지 않은 시기였다. 국가 해방 투쟁은 후퇴했고 추진력을 잃거나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타협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ANC(남아프리카 민족회의)가 권력을 잡았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 군대와 정치적 패배를 가져온 첫 번째 인티파다가 있었다. 레바논에서는, 1983년 241 미 해군에 대한 폭격 이후 미군이 도망치듯 사라졌고, 이스라엘인들은 이후 10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가디슈에서 미 정찰대의 절멸로 인해 93년 10월 클린턴 행정부의 군사 개입이 종결되도록 했던 소말리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의 주창자들은 가속도 붙은 세계화가 평등, 평화의 시대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놓았다. 그와 반대로, 우리의 운동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경제-사회적 동요로 인해 여러 가지 분쟁과 불안감이 증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기업의 논리, 세계화에 의한 운영이, 천연자원과 시장 보호의 권리를 강탈하며 반대편에는 난타를 가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의 시대를 예고할 것임을 경고했다. 우리가 옳았음이 입증됐지만, 한동안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2001년 9월 11일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 침공을 그 나라의 정치상황으로 인해 사실상 응했던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러나 "테러에 반대한 전쟁"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군사 패권 혹은, 펜타곤의 야비한 은어로, 모든 국면에서의 지배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종식시키기 위한 변명이었을 뿐임이 곧 분명해졌다.

2002년 말과 2003년 초에, 운동은 마침내 행동을 개시해 정의와 평화를 위한 세계적인 동력이 되었고, 2003년 2월 15일에는 전세계 곳곳에서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수천만 명이 조직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의 침략을 막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점령이 정당하지 못 하다는 것을 알리고, 침략자들이 국제법 및 제네바 회의의 많은 약속을 뻔뻔하게 위반하는 것을 점점 더 곤란하게 만드는데 확실히 기여했다.

뉴욕타임즈는 2003년 2월 15일의 행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는 오직 두 가지의 막강한 힘이 존재한다. 미국, 그리고 세계 시민 사회.' 여기에 나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현신, 피와 테러, 탐욕의 화신을 압도할 것을 확신한다는 것을.

이라크, 저항, 운동

우리의 운동은 상승세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제는 거대하고, 우리의 임무는 만만치 않다.
몇 가지만 얘기해 보자면 : 우리는 미국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몰아내야 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조되는 대량 학살 정책을 막아내야 한다. 우리는 미국, 영국, 이스라엘 같은 불량 국가들, 이 무법자들에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지난 몇 달에 걸쳐, 이라크에서는 두 번의 눈에 띄는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바그다드 외곽에 위치한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조직적인 성학대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4월 팔루자에서의 봉기다.

대부분의 세계인들을 분노케 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을 부끄럽게 했던 아부 그라이브 스캔들은, 미군의 이라크 주둔에 대한 정당성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까발렸다. 이라크 남성들, 여성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전사가 되어 워싱턴의 식민지 군대 엘리트들, 미 해군을 제패했던 팔루자에서의 봉기는, 민중 해방을 위한 이라크 전쟁의 전환점이었다. 팔루자 이후 나자프와 라마디 등 다른 도시에서도 봉기가 일어났다. 그것은 이라크 민중의 저항이 단지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잔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대중적이며 점차 상승되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현 시점에서 이라크의 축소로 볼 수 있는 라마디와 팔루자의 상황에 대한 뉴욕 타임즈의 최근 기사를 인용해 보겠다. 기사에 따르면, 전 바트당 지지자들을 둘러싸고 정부 구조를 만들려 했던 미국의 노력은 실패했다. 대신, 두 도시와 안바르주 대부분은 현재 시민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주로 사막 끝에 있으며 엄중한 요새에 갇혀 보호받는 미군들과 함께.
미국인들이 가진 미미한 영향력은, 무장한 차량을 타고 조심스럽게 약탈할 때나 레이저로 조종되는 폭탄에 의해서 나타날 뿐이다. 심지어 기습 폭격이, 무고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는 시민군을 더 강력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동지들, 워싱턴이 결국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패배할 것인가 여부는 더 이상 질문거리가 되지 못 한다. 그들은 패배할 것이다. 질문할 것은, 그들이 얼마나 오래 불가능한 상황을 물고 늘어질 것인가이다. 이 문제에 관한 결의, 국제적 평화 운동에서 우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워싱턴은 저항세력에 의해 자국군이 매일 같이 공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을 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라크 민중 저항의 승리는 명백히 다음 한 가지에 의해 앞당겨질 것이다. :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일 같이 거리를 점령했던, 68년 구정 공세(Tet Offensive)를 전후한 강력한 전지구적 반전 운동의 출현.

아직까지 그것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라크의 미군 점령에 대한 반대는 지배적인 전지구적 정서다. 이라크에 대한 정부 정책에 대한 환멸은 이제 미국 민중 다수에게로 퍼져있다.
그러나 이 순간 이라크 민중이 가장 필요로 하는 국제적인 평화 운동은 궤도로 오르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4년 3월 20일 열린 집회는 분명, 전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행진했던 2003년 2월 15일의 그것보다 규모가 작았다. 수천 수백의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며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그런 국제적인 대규모 압력은 어쨌든, 아직까지 없었다.

아마도 주요한 원인은, 국제 평화 운동의 상당한 부분이 이라크 저항세력을 정당하게 보기를 주저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정말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이라크에서의 무조건 철군과 정치적 철수라는 주장에 점차 위협이 되고 있다. 직시해 보자 : 정치적 무기로써 자살을 택하는 것은, 자살 폭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의 발언을 혐오스럽게 여기는 많은 활동가들을 계속해서 괴롭힌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저항의 상당 부분이, 비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이슬람적이라는 사실도 많은 서구의 평화운동가들을 괴롭히는 문제다.

해방이나 독립을 위한 어떤 운동도 보기 좋게 존재한 적은 없다.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케냐의 마우마우 운동, 알제리의 FLN, 베트남의 NLF의 방식을 불쾌해했다. 진보진영이 잊고 있는 것은, 민족 해방 운동이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정치적인 지원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외부 - 우리 같은 진보진영 - 로부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법적인 점령 권력을 철수케 하는 국제적인 압력이다. 그로 인해 내부에서 그들 스스로의 방법으로 진짜 국민 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서서히 나아갈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확실히 하자. 우리는 조건적 해결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 - 심지어는 누군가 미국의 자리를 UN군이 대신하는 한에서 미군과 연합군의 철수를 말한다 해도. 유일한 원칙적 태도는, 미군과 연합군 그리고 정치적 권력의 무조건적 철수다. 당장.

부시가 이라크에서 승리를 선언했던 2003년 5월 1일에 비해 오늘날의 미국은 더 약해졌다.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대서양 동맹은 이라크에 대한 정책을 두고 사분오열되어 더 이상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과 필리핀은 이미 철군했으며 조용히 그 뒤를 따르는 태국도 미국의 고립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의 통제가 카불 근교까지 밖에 안 통할 정도로 아프카니스탄의 상황은 작년에 비해 불안정하다. 미국이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이슬람 전사들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중동에 걸쳐 강력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 그리고 볼리비아 같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우리는 거대하며 대중적인 반신자유주의, 반미 운동을 접할 수 있다. 그 흐름은 정부 혹은 그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정책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우고 차베스는 제국주의 뒷마당에서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고, 베네주엘라 민중의 조직화된 성원 덕에 그의 권력은 유지되고 있다. 차베스와 베네주엘라 민중에게 더 많은 권력을!

스스로의 오만 때문에 미국은 모든 제국들이 겪었던 치명적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미국, 팔레스타인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 그리고 콜롬비아를 조종하는 교활한 미국에 저항하는 국제 연대 운동의 확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과잉확장에 의해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반대투쟁과 동남아에서의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진행되는 미군 재편성 문제를 보자.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새로운 국제경제의 규칙을 향해

제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투쟁은 우리 투쟁의 일차적 전선이다. 미국, EU , 일본 등을 원천으로 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논리에 바로 사회와 환경의 몰락 원인이 존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의 또 다른 전선은 전지구적 경제 법칙을 변화시키는데 있다. 우리들 다수가 참가해 칸쿤에서 이뤄냈던 WTO 협약 체계에 대한 타격이라는 임무가 과소평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우리의 도전은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관을 단지 약화시키는 것을 넘어 서야 한다.

그 도전은 단지 낡은 것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프로그램을 상상해내고 민중들과 함께 승리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기둥역할을 할 우리의 원리는, 지배계급 이데올로그들이 주창하는 것과 달리 현실적이다. 헝가리 출신 세계적 석학 칼 폴라니가 제시한 상을 원용해 보자면, 경제, 시장, 가속도의 사회 대신에 시장이 사회 안에 위치하고 공동체, 연대, 정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가치가 통제하는 것이 근본 원리가 된다. 국제적인 수준에서는 전지구적 경제가 역지구화 되거나, 기업 수익성의 논리를 왜곡하고 손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제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국제 경제에 참여한다는 것이 지역 경제와 국민 경제를 파괴하고 통합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강하게 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망과 원칙들; 이 도전은 각각의 사회가 스스로의 가치와 리듬 그리고 자신들의 개성에 조응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그 원칙과 프로그램들을 얼마나 표출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를 포스트모던이라 불러도 좋다. 그러나 우리 운동의 중심에는 신자유주의나 관료적 사회주의가 공유하는 믿음과는 대조적인 모두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이 있다. 이제 대안을 부정하는 대안에 대해선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정의, 독립적 주권 그리고 차이에 대한 존중 위에 세워진 새로운 국제적 규칙들이 없다면 진정한 평화도 존재할 수 없다.

두 가지 도전

그러나 나는 우리의 급박한 과제인, 이라크 내의 미국과 팔레스타인 내의 이스라엘을 물리치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 발언을 끝내려고 한다. 여기 있는 우리는 스스로의 강함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는 나날들에 대한 우리의 미약함을 검토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나는 이제 우리가 강조해야 할 도전들 중의 하나에 대해 말하겠다. 자발적 행동들과 국제 저항의 날 조직화 수준 이상의 것들을 어떻게 얻어내느냐, 바로 이것이 그 도전이다. 적들은 전지구적 수준에서 극도로 잘 조직화 되어있고 우리도 역시 결합하고 조직화하는 수준에서 대결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먼저 우리의 민주적 실천을 존중하면서 그 테두리 안에서 민주적 실천에 이점이 되는 방향으로 전문가 의식과 조화시켜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또 다른 도전은 다음과 같다.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전지구적 운동들과 그들이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조우하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 문화적 차이를 좁히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 차이는 제국주의가 아랍과 이슬람의 우리 동지들을 테러리스트나 테러리즘의 지원자로 덧칠하려는 노력으로 조장해내는 것에서 야기된다. 우리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베이루트에서의 우리 모임을 연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전지구적 운동과 단단히 벼려지는 아랍의 운동이 연대에 의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화와 제국주의의 결합체에 대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래서, 동지들, 투쟁의 미래는 여기 베이루트에서 며칠 내에 일어나는 일들에 영향 받게될 균형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퇴각할 것인가? 그 대답은 세계 전역에서 모인 삼백 명의 대표자들 하나 하나에게 달려있다. 나는 진정으로 확신한다. 왜냐? 불의, 압제 그리고 죽음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통일된 행동을 성취해 낼 정치적 의지, 차이에 대한 관용 그리고 선한 의지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기획을 시작하며
○ 1회(9. 9)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
[취재] 지금은 다 개방중 - 이정석 기자
[인터뷰]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 이창근
○ 2회(9.16)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 박하순
[좌담] 원영수 vs 최일붕
-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 3회(9.23) -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기고] 반도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 백승욱
[취재] 침략과 점령에 저항하라 : 베이루트2004 전략회의 리포트 - 정영섭
[번역] 베이루트 2004 : 부당한 전쟁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투쟁의 이정표- 월든 밸로
[영상] 반전의 목소리들
○ 4회(10. 5) - [기고/취재]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한반도 전쟁 위기
○ 5회(10.12) - [기고]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
○ 6회(10.19) - [기고/취재] 아시아 황금시장 노리는 초국적자본
○ 7회(10.26) - [기고/좌담]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1) : 의료,교육,스크린,방송,에너지 개방
○ 8회(11. 2) - [기고/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2) :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의 횡포
○ 9회(11. 9) - [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3) : 산업공동화, 한-일FTA, 기업도시
○ 10회(11.16) - [대담] 자본의 세계화와 저항의 세계화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1>-지금은 다 개방중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2>-“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2> - 원영수 vs 최일붕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기고]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지속된다
9. 17 ~ 19 베이루트 국제 반전 반세계화 전략회의 리포트
덧붙이는 말

월든 벨로는 2003년 생존권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대안적 노벨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벨로는 방콕에 있는 연구기관인 '남반구 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의 선임관리자이며 필리핀 대학의 정치사회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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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미디어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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