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투쟁을 위하여

이중적 의미의 ‘학교장치’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 ‘시장과 경쟁’은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핵심 기제이다. 무한 경쟁이 판을 치고 있는 시장과, 개인별 능력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자본 구조 안에서 ‘학교장치’는 개인에게 ‘공정한 능력’을 부여하는 특별한 장치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학교’라는 장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데 그 중 하나는 자본과 교육의 은밀하고 더러운 결탁을 덮는 합리적 장치이자, 대중에게는 지적 능력을 키우는 하나의 공정한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기제인 것이다.

물론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식’이라는 것 또한 자본의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민중들의 장구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학교를 둘러싼 ‘지식’ 또한 진일보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교’ 즉 ‘대중교육기관’은 외관상 평화로운 행보를 그려나가고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의 치열한 계급투쟁 지형이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용케도 자본은 학교 장치를 교모하게 활용하여 왔다. ‘학교 성적(내신)’과 ‘수학능력시험’은 계급과 사회구조 문제를 개인의 수학능력 부재와 이에 따른 개인의 미흡함으로 치환한다. 지식의 차이가 곧 노동시장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과연 개개별의 학습 성취도가 낮아서 벌어지는 문제인가?

이번 고대, 연대, 이대의 고교등급제 적용 사실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는 것 이상으로 자본의 정당성에도 큰 흠집을 내고 있다. 교육 접근권이 평등하다는 말은 교육에 있어서 첫 출발은 같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이번 ‘고교등급제’는 내신이 월등한 학생이 가정 배경이 소위 강남권 아이들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던 사실은 교육에서 조차도 자본의 더러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이 만 천하에 드러난 꼴이다.

지식의 차이는, 단지 개인별 학력의 부재가 아닌 부의 차이이며, 자본의 차이라는 것을 자본이 자본의 이름으로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장치는 더 이상 자본대 노동의 대립을 정당화 시키는 기제가 아니다. 학교 장치 안에서도 바로 자본의 작동 원리인 ‘유전무죄 무전 유죄’가 그대로 투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을 필두로 한 시장화 추진세력은 신자유주의 교육 구조조정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개방화, 분권화를 통한 시장화의 촉진은 담론화와 정책화의 과정을 넘어 하반기 정기국회를 통해 법 제도화를 시도하고 있다. WTO 교육개방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인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이 그러하며 한-일, 한-싱 FTA에 1차 교육 양허안 제출 등이 그러하다.

8월 31일 교육부에서 제출한 2004년 하반기 대학 구조조정 방안이 온통 고등교육 시장에서 경쟁에서 패한 대학을 청산케 하겠다는 의지에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인 시장에서의 ‘선택’ 경쟁에서 살아남은 대학에게 ‘집중 지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개방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교육기관을 ‘영리법인화’ 해야 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통하여 우리는 한 가지 선명하게 정세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과 민중진영의 계급 대립이 사실상 전면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노동계급의 착취로 그 명을 유지하는 자본의 본 모습을 그럴 듯하게 포장했던 자본 합리화, 정당화 기제가 갈갈이 찢겨지고 냉혹한 자본의 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우리는 여기에서 교육과 노동 양 진영에서 자본의 허를 찌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WTO 교육개방, 시장화 저지 투쟁이다. 이번 고교등급제 파장에서 고대, 이대, 연대 대학 당국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냉장고를 고를 때도 유명 메이커를 보고 고르지 않느냐’고 말이다.

사학재벌들은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한다. 자본은 인간 사회 모두를 ‘이윤 창출’을 놓고 가치 판단을 한다.

역설적이지만 투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 사회의 가치 판단은 유일하게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에 있고 노동의 기본적 비료가 될 교육에 있다. 인류 사회에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노동 그 자체에 있는데 어찌 노동할 권리와 교육을 받을 권리가 냉장고 따위와 비교가 되겠는가?

그래서 투쟁의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며 이윤 창출 놀음에 놀아나서도 놀아날 수 도 없는 민중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평등하게 누려 마땅할 것임을 사회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투쟁은 WTO 교육개방, 시장화 저지와 교육 공공성 실현을 위한 10.30 범국민대회에서

교육이 이제 자본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제까지 교육이 자본의 전유물 이였기에 부모의 경제적 부를 등에 업고 좋은 학벌을 얻었고, 이것이 노동시장의 위계화를 낳았다면 이제는 자본의 전유물 이였던 교육을 원래의 주인인 민중이 되찾아야 한다.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을 상품으로 삼았기에 많은 부조리함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교육을 교역의 대상과 이윤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고 있는 WTO 세계화에 반대한다. 우리는 대학을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케 하는 대학의 시장화 정책 전부를 거부한다. 우리는 교육 노동자를 통제하고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케 하는 교원 구조조정을 반대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장한다. 장애인, 비 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행복한 교육,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무상으로 교육받고 이윤의 잣대로가 아닌 인류 발전 그 자체를 위한 교육의 사회 환원을.

따라서 투쟁의 촉발은 교육운동주체만의 고립된 투쟁을 넘어 노동자, 농민, 학생, 교사, 민중들이 함께 하는 WTO 교육개방, 시장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10.30 범국민대회이다.
덧붙이는 말

최문경 님은 범국민교육연대 정책국장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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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범국민대회 , 개방 , 교육개방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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