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의 문화사회를 꿈꾸며

<육혈포 강도>의 추억

"탕!" 하며 총소리도 제때에 나왔다. '민족 배반자'의 혼을 뺏을 만큼 소리도 컸다. 재실 마당에 운집하여 숨죽이고 지켜보던 관객들도 총소리가 나는 순간 박수를 크게 친다. 초등학교 5, 6학년 쯤이었을까, 1960년대 초 추석 가절 어느 날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연극한 편을 관람했다.

당시 연극의 이름은 <육혈포 강도>, 이 글을 쓰며 기억이 삼삼하여 확인해보니 1908년 일본에서 만든 신파극 {피스톨 강도 시미즈 사다요시[淸水定吉]}를 혁신단 단장 임성구(林聖九)가 번안하여 1912년에 연흥사에서 초연한 전 10장의 경찰 드라마란다. 그러나 내가 본 '강도'는 나쁜 짓을 일삼아 경찰에게 쫓기는 잡범이 아니라 독립군이었고, 그가 총을 쏜 것도 누이를 괴롭히던 일본 앞잡이를 처단하기 위함이었다. 40여 년 전 고향에서 공연한 <육혈포 강도>는 번안의 수준을 넘어 민족주의 관점에서 새로 개작한 작품에 가까웠다.

그 날 연극 공연을 주도한 것은 모두 마을의 10대 후반 청소년들, 연극 준비에 참여한 사람으로 스무 살이 넘은 이는 가장 중요한 소품 '육혈포'를 만들어준, 나와는 친하게 지내던 다섯 살 위 남석이의 맏형 명석이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소품만 제공했을 뿐 다른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극장으로 쓴 곳은 마을의 재실, 무대는 재실 마루와 방들이었고, 관중석은 마당이었다. 조건이 이렇다보니 관중석과 무대의 높낮이 차이가 심해 마을 사람들은 내내 서서 관람을 해야 했지만 연극 관람은 마을 최대의 잔치였다.

이제 돌이켜 보니 그 날 공연은 우리 마을이 처음 집단적으로 겪은 근대적 문화 체험이었던 것 같다. 그 공연은 당시 통상 벌어지던 문화행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연극을 올리기 전까지 마을 청소년들에게 허용된 '문화적 실천'은 추석 다음 날의 달집태우기, 마을 어귀 은행나무에서 그네 타기, 정월 대보름 지신밟기였고, 직접 구상하여 실행한 것들도 자치기 등 전통 놀이 뿐이었다.

무동 젊은이들의 근대적 경험이란 것도 그 전까지는 술만 취하면 <만고강산>을 부르던 소장수 가동양반이 가끔 틀어주던 유성기를 듣거나, 특무대에 다니던 자산양반이 어쩌다 한번 타고 들어오던 군용 지프차를 얻어 타는 것 따위가 고작이었다.

그 해 마을 '신세대'가 연극 공연을 한 것은 따라서 아주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구상과 실행'에 의해 근대적 문화행사를 직접 주관했으니 말이다. 나는 어려서 연극 준비에 직접 참여하진 못했으나 그 때의 '중딩', '고딩'은 행사를 치르며 가슴이 무척이나 뿌듯했을 듯싶다.

그 뒤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 무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말 그대로 '황폐한 마을'이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졌네." 18세기 후반 아일랜드 출신의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황폐한 마을]("Deserted Village")이란 시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뒤 붕괴된 자신의 고향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죄 떠나 황폐해진 마을에서 그는 옛 고향의 "그늘진 오두막, 잘 가꾼 농지/언제나 흐르는 시냇물, 분주한 물방앗간/인접한 산마루에 선 말끔한 교회/말많은 늙은이와 소곤거리는 연인들을 위해/그늘 아래 앉을 자리가 있는 산사나무 숲"을 회상한다.

물론 이런 시골 묘사는 농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화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없지 않다. 십 수 년 후 조지 크랩은 그래서 골드스미스의 시를 패러디한 [마을]("The Village")에서 시골마을은 사실인즉 죽도록 노동을 해도 먹고살기 힘든 곳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황폐해진 마을'이란 관점은 산업혁명의 발전이 망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줄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다. 과거 시골서 자란 사람이면 공유하는 경험이겠지만 내 고향도 옛날의 아름다움을 많이 상실했다.

과거를 이상화해서는 곤란하다. 다시 생각하니 그때는 5·16 쿠데타 직후, 농촌 사람들을 자본주의 노동기계로 만들기 위한 국가 주도의 '주체 형성' 과정이 막 가동된 시점이었다. 당시 우리는 아침이면 재건체조를 하기 위해 마을 어귀로 불려나갔다. 마을 이 곳 저 곳에 난데없이 평행봉과 철봉을 세워놓고 체력 단련을 할 것을 강권했고, 씨름판을 만들어 이웃 청소년들간에 경쟁도 부추겼다.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 여는 4H클럽 모임에 참석하여 "지덕노체 네 향기를 담뿍 싣고서" 하며 노래를 불러야 했고, 일요일마다 민둥산을 개간하여 4H클럽 텃밭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재건의 현장은 오늘 황폐한 고향 모습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야를 개간한 지 10년이 안되어 마을 사람들은 대거 도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개간한 밭들은 물론이고, 조상 대대로 붙여먹던 천수답까지 모두 묵어 나자빠진 것이 오늘 내 고향이다. 70년대 초 가난에 찌든 시골도 잘 살게 하겠다며 새마을운동이 벌어졌지만 농촌 노동력이 도회로 빠져나가는 속도는 더 빨라졌을 뿐이다.

당시 신세대는 어떻게 연극 공연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문화적 물적 토대를 제공했던 것일까? 그때까지는 그래도 공동체의 자원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농촌처럼 내 고향도 빈촌이었다. 마을의 논밭은 대부분이 천수답, 그 해 날씨에 따라 굶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 우리 형편이었다.

마을 규모도 작았다. 지금 기억으로 모두 '36가호', 하지만 당시 마을은 풍년든 감나무처럼 골목골목이 사람들로 풍성했다. 집집마다 3대, 4대가 함께 살고 있던 때라 식구가 적은 집이 너덧, 많은 집은 열 두엇까지 되었으니 인구가 지금의 서너 배, 300명 쯤은 되었을 것이다. 1960년대 초 우리 마을에서 연극을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인적 기반을 전제한다.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떠돈다. "이제는 문화다" 하며 무엇이든 "문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지금 고향마을에서 연극공연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가끔 신문에서 거창의 연극제, 해남 미황사의 산사음악제, 춘천의 마임축제 등 지방의 축제가 소개되면 부럽게 여겼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성공사례도 보릿고개 시절 작은 농촌 마을 청소년들이 자력으로 올린 연극 공연에 비하면 별 볼 일 없게 느껴진다.

40여 년 전 우리 마을 청소년들은 그들만의 힘으로 그 공연을 성사시켰지만 지금은 어느 곳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만큼 지금의 농촌, 지방은 자율적인 문화적 역량을 상실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다. 가끔 고향에 가면 가장 안타까운 것이 젊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청년으로 불리는 사람이 나보다 몇 살은 위로 환갑을 곧 바라보는 연배다. 청년 이름에 값하는 20대, 30대는 겨우 읍내 관청에 근무하는, 그러니까 농사와는 무관하게 사는 두어 집이 있을 뿐이다.

시골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때의 <육혈포 강도>를 재연하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신파조의 민족주의 연극은 외국인 신부, 이주노동자들까지 시골 마을에 들어와 사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억압적 역할을 할 공산이 높다. 이제는 문화공연도 시골의 공동체를 오늘의 사회적 조건과 21세기 감수성에 맞게 되살리는 내용으로 꾸며야 할 것이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산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 필리핀이나 러시아 출신의 새댁, 마을 가까운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가 섞여 사는 오늘의 농촌을 다룬 작품이 제격일 것이다.

시골이 새로운 문화적 역량을 가지려면 그 곳에도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농촌은 한편으로는 황폐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적 구조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농촌이 도시에 기생하지 않고 그 안에서 완결된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시골을 되살릴 수 있을까?

노무현정부는 균형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맞다. 하지만 결코 부촌도 아니었고, 또 그렇다고 사회적 불평등이 없었던 것도 아닌 60년대 초의 내 고향이 누렸던 문화적 역량 정도도 확보하지 못해서는 균형발전은 공염불이다. 수는 적지만 구성은 더 복잡해진 주민들 자신이, 그들의 자녀들이 연극을 올리고, 문화제를 여는 등 자율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산술적 균형발전은 가능할지 몰라도 문화적 균형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과거만큼도 못한 오늘의 문화가 무슨 자랑이겠는가. <육혈포 강도>를 관람한 그 옛날 가을 저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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