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당신의 분노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별기획]사회적 빈곤에 철퇴를(3)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와 실

"죽을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상황"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어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작은 것일지라도 더욱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라면 말이다.

내가 아는 수급자 분은 한 달에 생계비 전액 32만 4천 원을 받는다. 12만원 정도를 영구임대아파트 관리비로 내고 나면, 한 달을 살 일이 막막하다. 수도권 끄트머리에 교통편도 잘 되어 있는 않은 임대아파트에서 5급의 장애로 이동하는 것만도 암담한 일이다. 신문은 빌려보고, 전화도 받는 것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 돈으로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최소한의 식량으로 집에서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 다녀야 한다. 버스를 탈 수 없기에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119를 부른다. 119는 당신 같은 사람들 이동시키느라 긴급구조를 못하면 어쩌냐고 으름장이다. 이분은 이러한 현실이 너무 부당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당신이 나서서 이야기하면 불이익이 올까 두렵다. 이러한 불합리함에 대해 싸우자니 그나마의 수급권도 탈락될 것 같고, 이대로 살자니 답이 나오질 않는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황.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미를 부여잡고 지나온 지난 4년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한 법이 있다.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가 그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의는 이전의 생활보호법과는 달리 나이나 근로능력 유무에 상관없이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며, 이전의 수혜의 의미에서 권리로서의 기초생활보장을 명시한 것이다. 즉,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이를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법제정의 배경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이 존재했다. IMF경제위기 이후 대량으로 늘어난 실업노동자와 빈곤화되는 서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할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였으며,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의 활동을 통해 외화되었다. 이러한 기초법 제정의 요구는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만나면서 전격 시행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기초법은 그 제정의 의의의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조건부 수급 기준이 들어가며, 본연의 의미를 잃었다. 사실 기초법 조항을 세세히 살펴보면, 권리로서의 보장의 측면이 강조되기 보다는 조건으로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조건부수급이 그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 즉, 시민사회단체들은 스스로 요구했던 기초법이 본연의 의미는 사라진 채 기형적으로 변형된 것에 대해 기초법이 제정되었다는 의의하나로 지난 4년동안 만족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듯 제정 의의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는 기초법은 대다수의 절대빈곤계층을 수급권에서 제외시키거나 비상식적으로 낮은 급여를 제공함으로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절대빈곤층의 생계보장을 위해 제정된 기초법은 한국사회 유일한 사회안전망이자 최악의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책임을 외면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사례 1
김모씨는 30세의 가장으로 부인과 어린 아들을 둔 3인 가구이다. 교통사고로 척추가 마비되어 거동을 할 수 없는 김씨는 일을 할 수 없고 부인은 어린 아들과 남편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취업을 하게 되면 아이와 남편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김씨에게는 나이 드신 노모가 다른 형제와 생활하고 있는데 노모 앞으로 노모가 살고 계신 집과 상가가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탈락되었다. 하지만 노모는 다른 형제의 부양을 받고 있음으로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어 김씨를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자 선정여부와 급여액 수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기초보장제에서도 여전히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구체적인 예이자, 가장 많은 수급자가 탈락하고 있는 매우 절박한 문제이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1촌 이내로 좁히겠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2촌 이상의 경우 함께 살지 않으면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리는 것은 1촌 이내의 경우이다. 즉, 정부의 발표는 현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변화시키는 것과는 무관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부양의무자 기준 자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조건을 전제로 생존권을 박탈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사례 2
이모 씨는 70여 세로 젊어서 자식을 잃고 어린 손자를 혼자 키우며 살아왔다. 그러나 20살이 넘은 손자는 직장도 없고 일을 할려고 하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 집에 들어와도 말 한 번 거는 법이 없는 손자 때문에 이씨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조건부 수급조항에 손자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씨의 수급권 마저 탈락되어 교회와 주변에서 재활용품 수거를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고, 어쩌다 다 큰 손자의 용돈까지 쥐어 주고 있다.


기초법 제2조에는 시민권에 기반을 둔 수급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나, 제9조에는 근로연계의 '조건부 수급'의 조건이 삽입되어 있어서 제9조는 더 상위 조항인 제2조에 위배되는 것이다. 사회권으로서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면 자활사업에 참여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계비를 박탈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수급권자의 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위한 생계급여는 기본필요(need)에 따라 주어지는 보충적인 급여이지 노동을 조건으로 수급권을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수급자에게 조건을 부과하기보다 자발적인 취업이나 자활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취업자에게 소득공제형식의 근로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타당하다.

최악의 최저생계비 기준

기초법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의 국민이면 누구나 최저생계비와 소득의 차액을 급여형태로 보장받게 된다. 즉, 최저생계비는 한국사회의 유일한 사회안전망인 기초법의 보장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초법 뿐 아니라 몇 가지의 보조적인 지원들 - 영구임대주택신청권이나 모자보호 수당, 장애수당 등 -의 일차적인 지원대상이 수급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최저생계비는 우리사회의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98년 경제위기 이후 빈곤계층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전방위적인 빈곤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빈곤계층에 대한 지원은 빈약하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유일한 사회안전망이라고 하는 기초법의 수급자는 전체 8백만에 이르는 빈민중에서 140만 명만이 보장받고 있는 실정이다. 생활보호법 시절보다 기초법 수급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빈곤 가구율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가 해마나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소득으로 둔갑한다 -소득인정제도

사례 3
슬하에 세 자녀를 둔 노모 씨는 부인과 함께 두 분이서 생활하고 있다. 아들은 젊어서 사고로 죽고 출가한 딸과 집을 나간 딸을 두었다. 모아둔 재산이라고는 지금 살고있는 집이 전부이다. 젊어서 열심히 살았지만 자식들은 노부부에게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고,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평생 집 하나 마련한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계시고 할머니는 관절염을 앓고 계시다. 그러나 현재 사시고 계시는 집이 재산기준에 초과하기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다. 할머니는 평생을 벌어서 마련한 집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시다가 눈을 감으시는 게 소원이라고 하신다.


지금의 소득인정제도는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는 소득환산율(일반재산은 년 50.04%, 금융재산은 년 75.12%)과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는 기본 공제재산(대도시3800만원 중소도시 3300만원 농어촌 3000만원)로 인해 많은 빈곤계층이 소득이 없어도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있다. 또한 승용차에 지나치게 높은 소득환산율(연 1,200%)을 적용하여 수급자 선정기준 단일화 선언이 무색한, 행정 편의적인 발상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자동차를 소유한 가구에 대해서는 자산 및 소득조사를 정밀하게 하고 환산율을 낮추어야 한다.

"기초법 개선, 최저생계비 현실화, 사회복지예산 확충"

이렇듯 기초법은 수급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기 보다는 수급권을 탈락시키기 위한 제도로서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는 절대빈곤층의 대부분이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낳았으며, 그나마 수급자가 되더라도 최악의 생계급여로 연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4년은 5년만에 최저생계비가 계측되어 발표되는 해이다. 또한 그동안 제기되었던 기초법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사회 유일한 사회안전망으로 존재하는 기초법을 개선하고 수급자를 확대하는 것은 최소한이 사회안전망을 바로잡은 길이기도 하다.

사상최악의 경기불황이라고 하는 이때에 빈민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기초법의 개선과 최저생계비 현실화, 그리고 사회복지예산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정부가 주는 쥐꼬리만큼의 돈으로 연명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세상이 몇 명이나 될까. 기초법이 개선되고 최저생계비가 인상된다고 한들, 그것으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부의 사회안전망은 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거나 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한 바로 그 지점에서 한발도 나아갈 생각이 없다.

죽을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바로 그 지점. 그것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의 권리를 획득해 나갈 수 있는 길은 기초법에 명시된 문구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그것을 빈민 주체의 실질적인 권리로 요구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인간다운 삶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참세상] [불안정빈곤공동행동] 공동기획 : 사회적 빈곤에 철퇴를

1회 -'사회적 가난'의 자화상 : 가난은 예외적인가?(10월 29일)
(기고)사회적 빈곤, 사회 파괴 기계로 작동하는 현실 (사회복지와노동 포럼팀)
(취재)"800만 빈곤층 불안정노동의 결과" (김삼권 기자)
2회 - 빈곤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 '인권침해'(11월 3일)
(기고)"인권의 주장을 통해 수혜자가 아닌 권리주체로" (류은숙)
(취재)통계로 본 빈익빈 부익부(김삼권 기자)
3회 - ‘가난’의 관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와 실(11월 17일)
(기고)“국가가 당신의 분노를 관리하고 있습니다”(유의선)
4회 - 자본금융화의 ‘폭력적 희생자’-신용불량자(12월 1일)
5회 - ‘가난’의 여성화, 여성의 빈곤화(12월 8일)
6회 - 사회연대기금, 노조운동의 활로인가? 늪인가?(12월 15일)
7회 - 기업의 사회공헌, 기부운동의 실태, 과연 아름다운가?(12월 22일)
8회 - 가난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자(12월 29일)
덧붙이는 말

유의선 님은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으로 11월 17일부터 서울역에서 국회까지 빈곤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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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 최저생계비 , 사회적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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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처럼

    삼보일배 무탈하게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모든 분들의 건승을 바랍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일이군요.
    참으로 존경합니다.
    힘내십시오.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투쟁!

  • 바람처럼

    삼보일배 무탈하게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모든 분들의 건승을 바랍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일이군요.
    참으로 존경합니다.
    힘내십시오.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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