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운동의 미완의 희망, 부안

부안 투쟁이 시작되고 1년 4개월이 흘렀다.

11월 12일 한수원이 부안에서 철수 함으로써 사실상 부안에 대한 핵폐기장 건설 계획이 정부 차원에서 정리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부안군수는 주민투표라도 하게 해달라고 전북도와 정부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머리깍고 시위라도 하겠다고 떼를 쓰고 있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추방 범부안군민 대책위’(대책위)는 상임위원회에서 정부의 백지화 선언이나 새로운 추진일정 발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오는 30일 정부의 공식 일정이 무산되는 날에 부안군민이 직접 핵폐기장 건설에 대한 부안백지화선언을 발표하겠다고 결정하였다.

이런 와중에 그간 대책위의 타협적인 실천방식에 비판적이었던 몇몇 부안 주민이 중심이 되어 지난 1년전 오늘, 노무현 정권의 폭력적인 부안 진압에 대항 해 벌어졌던 주민들의 처절한 투쟁을 기념하고 의미를 찾아보고자 11월 20일 부안에서 토론회를 가졌다.

‘11.20 부안경찰계엄 1년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토론회에는 그간 부안투쟁이 갖는 진보적인 면면에 의의를 두는 민중운동, 문화운동 단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정작 부안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지역의 진보, 인권, 정치단체들은 참여를 미루거나 형식적으로 이름만 내걸었다. 이로 인해 토론회는 공동주체로 참여한 단체들의 수에 비해 4,50명이라는 저조한 참여율과 지역진보운동조직들의 형식적 참여로 인해 당초 예상과는 달리 폭넓은 토론회가 되지 못했다.

사실 토론회를 추진하면서 예상된 이런 문제들은 이 토론회 자체에 대한, 그리고 기간 부안 투쟁을 두고 지역의 진보운동(조직)과 토론회를 주관했던 부안사람들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크게 부안투쟁에 대한 개입과 실천방식, 부안투쟁에 대한 목표와 성과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농민회에 실질적으로 기반한 대책위(또는 대책위지도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고 대책위에 비판적인 몇몇 부안 사람들의 실천과 비판 방식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차이들보다 부안투쟁에 개인을 포함한 (지역의)진보운동(조직)이 어떻게 개입하고 실천하여 성과를 얻을 것인가 하는 통일적인 견해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그동안에 거의 없었던 것이 더 큰 문제이며 근원적인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노력의 부재가 진보운동(조직)내에 차이를 부르고 투쟁의 성과를 없앤다.

부안투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이제 부안투쟁은 다 끝이 났다고 부안을 잊고 사는 것, 부안투쟁의 의의나 실천의 문제를 비판적이고 과학적으로 평가하여 미래의 문제로 만들어야 하는 기대들을 저버리는 것이 또한 두 번째 문제라고 보고 있다.

부안투쟁을 연대의 관점, 부안주민들의 투쟁에 대한 지지, 지원으로 실천한 것은 여태까지 진보운동이 갖고 있는 (실천의) 한계이며, 이러한 실천들은 (지역의)민중운동, 진보운동이 부안투쟁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지역운동에 밀접하게 한걸음 더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11.20 부안 토론회의 한계를 넘어서 지역의 민중운동, 진보운동은 부안투쟁 이후의 후속대책이나 의의에 대한 공통된 지반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후에는 지지, 연대를 넘어 사업이나 투쟁의 주체가 되어 개입하여야 할 것이다.

지역운동에 기반한 진보운동(조직)으로 발전하는 것, 진보적인 지역운동을 개척하는 것, 진보운동(조직)들이 지역운동에 대해 각개약진 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지반 속에 실천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부안투쟁이 진보운동(조직)에 주는 또 다른 교훈이 아닐까 한다.
덧붙이는 말

박병현 님은 부안에서 한의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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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 , 부안 , 부안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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