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란, 정부 정책과 부실경영이 낳은 합작품

[특별기획]사회적 빈곤에 철퇴를(4) - 자본금융화의 ‘폭력적 희생자’, 신용불량자

신용대란, 누구의 책임인가?

신용불량자 문제가 경제 현안으로 드러날 때마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이구동성으로 속칭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며 신용불량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왔다.

엘지카드가 부실경영으로 생긴 9조 원 가량의 잠재부실을 국책 은행인 산업은행으로 떠넘기기 전에 모든 신용카드사의 부실에 대한 책임은 속칭 ‘배째라’ 신용불량자에게 전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엘지카드를 비롯한 신용카드사의 부실문제로 비롯된 감사원의 카드 대란 관련 특별감사보고서도 카드대란의 원인을 소위 분수를 모르고 카드를 쓴 신용불량자들의 과소비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러나 신용대란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신용불량자에게 돌리는 것은 일반적인 금융상식을 뒤집는 억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채권채무관계에서 대출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부자인 신용카드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용카드 부실 발급이 가능했던 직접적인 이유는 정부의 정책에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한답시고 금융기관이 신용능력 평가 없이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부실대출 폭증으로 금융혼란의 징후가 발생했을 때도 카드사의 잘못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드사의 부실경영과 정부의 부실감독책임은 감사원보고서조차도 2002년 5월,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보험료 남부예외자로 관리중인 184만 명에게 총 431만여 매의 신용카드를 발급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정부와 일부 언론이 주장하듯 마치 신용불량자들이 돈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채무자가 채권자를 속이고 재산을 은닉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기관들은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에게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빚 독촉과 재산에 대한 가압류, 월급에 대한 가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하여 개인으로부터 빚을 받아낼 수 있고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 형사상 사기죄와 강제집행 면탈죄로 엄중한 처벌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는 채무자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 전반의 소비위축, 사회불안 가중, 금융기관부실화로 연결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는 어디서 발생했을까? 이 악순환구조는 정부의 부실카드 부양책과 이에 편승한 금융기관 대주주들의 부실경영으로부터 발생했다. 가계금융부채(신용불량자 등)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은행 등 금융기관과 신용카드 회사들이 소매금융 확대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왔다는 것과 함께 정부와 국회가 각종 법과 제도 및 이자제한법 폐지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조치를 통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 내지 조장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영역의 경우 정부와 채권금융기관의 귀책사유는 너무나 명백히 드러난다. 99년 강봉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원),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현 재정경제부 장관) 등에 의해 주도된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현금서비스 업무비중 50% 제한규정의 폐지(99년 2월), 70만원이었던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99년 5월)] 등은 카드사들이 신용지급결제 수단이라 기능을 뒷전을 미룬 채, 연 30%대의 고금리를 노린 현금서비스 카드론 현금대출영업에 편중되도록 변질시켰다.

이와 함께 정부의 금융부실감독은 신용불량자 급증과 동시에 금융기관의 부실을 가져왔다. 지난해 4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나서 앞으로 신용카드사의 유동성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재경부는 큰소리를 쳤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가을, 엘지카드는 결국 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 실패의 책임은 신용불량자들과 국민에게 전가되었을 뿐이다.

신용회복기구인가, 채권회수기구인가?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동안 신용불량자 딱지를 뗀 사람은 41만여 명이나 되지만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신용불량자들이 계속 생기는데다가 한번 신용불량자 딱지를 뗀 사람이 다시 신용불량에 빠지는 사례가 많았다. 그 결과 9월 말 현재 신용불량자 수는 366만 명으로 작년 말에 비해 5만8000여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문제는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한마음금융기관의 배드뱅크제도,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제도 등 민간 채권 금융기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 제도를 홍보하는 것에 머물 뿐, 신용불량자가 공적 채무조정 제도인 개인파산제와 개인회생제 등을 이용해 실질적이고 조속한 채무 조정을 받도록 하는 데는 무홍보·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가 2004년. 3월 재정경제부가 발간한 “신용불량자 문제, 이렇게 해결해 나가겠습니다”라는 소책자와 “신용불량자 현황 및 대응방향”에 적시된 내용에 따르면 채권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정부의 프로그램인양 선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재경부 장관이 신용불량자 갱생문제와 관련 수차례 신용회복위원회, 배드뱅크를 장려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신용회복위원회= 정부기관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공적 파산제도 및 개인회생제의 적극적인 할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한 채무자의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만이 채권금융기관에게만 회원자격을 부여한다는 점, 심의위원회의 의결과정이 무담보채권액 과반수의 동의와 담보채권액 2/3의 채권자 동의로 확정된다는 점, 시행에 필요한 비용은 협약가입 채권금융기관 분담금 및 기타 기부금 등으로 조성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독립적인 신용회복기구가 아닌 채권금융기관의 공동 채권회수 기관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의 편파적인 홍보활동으로 국민의 대다수는 신용회복위원회를 마치 정부기관인양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지난 10월초 서울 명동에 위치한 신용회복위원회 앞에서 개인워크아웃제 신청 희망자 1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5%인 80명의 신용불량자들이 민간 채권기관인 신용회복위원회를 국가기관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반면 지난 9월 새로 도입된 법원의 개인회생제도의 경우 회생 조건이 개인워크아웃제에 비해 다소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홍보 부족과 까다로운 신청 절차로 인해 1200여명만이 이용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정부가 신용불량자의 채무조정을 사실상 신용회복위원회 등 민간 채권기관에 맡긴 결과 채권기관들은 채권회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경우 2002년 10월 이후 79만1000여명의 신용불량자가 찾았지만, 이중 27만2700여명은 빚 갚을 정도의 소득이 없어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민간 채권기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이 다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아 채권기관들의 조건이 가혹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빚 독촉에 밀려 개인워크아웃제를 선택할 경우 얼마나 가혹한 생활을 해야 하는 지가 잘 드러나 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 접수된 사례

[사례1] 서울 방배동에 사는 이모씨. 평생토록 식당일을 하면서 채무에 대한 이자만3억 원을 냈다.
2001년 1월 개인워크아웃신청: 월 소득 350만원, 빚 갚는 기간 48개월, 생계비를 제외하고 매월 234만원씩 빚을 갚았다. 공사 거래처가 끊기면서 식당 매출 부진이 심해져 소득이 1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2003년 11월 두 번째 조정: 이모 씨는 월 소득을 150만원으로 기재했는데 신용회복위원회는 채무 상환기간을 8년, 3인 가족의 생계비를 매달 25만원으로 책정한 뒤 나머지 소득 125만원으로 매월 빚을 상환한다는 변제계획서를 이모 씨에게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 결국 이모씨는 워크아웃제 이용을 포기하고 현재 파산 신청 중이다.

[사례2] 월 소득 130만원 중 120만원으로 빚을 갚으면?
서모 씨는 2003년 4월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여 10월 확정 받았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서모 씨에게 총 채무 5800만원을 3년 간 상환하라고 했다. 서모 씨는 월 소득 130만원에서 생활비 10만원을 제외한 월 120만원으로 빚을 갚기로 하고 변제계획서를 작성했다.
☞ 서모씨는 월 10만원의 소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자 개인파산을 신청

이러한 불공정성은 신용회복위가 출범하기 넉 달 전인 2002년 6월 금융감독원 등이 작성한 외국의 소비자 파산 구제제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업 단체에서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할 경우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할 가능성이 있어 공정성 관련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공적채무조정제도, 현재의 대안

정부의 부실정책과 이에 편승한 카드사의 부실경영이 초래한 신용불량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적 회생제가 중심이 되기보다 공적채무조정제도를 더욱 더 확산시키고 개선해야 한다. 현재 공적 채무조정제도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파산제도이다. 개인 파산제도는 과채무에 빠져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개인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고 사회경제적 재기를 도모한다는데 그 제도적 의의가 있다.

개인파산제도는 지급불능에 빠진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채권자에게 배당한 뒤 채무에 대해 면책을 받는 제도이다. 다른 공적 채무조정제도인 개인회생제도도 있지만, 현재의 개인회생제도는 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대법원 예규를 가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즉, 채무자 개인에게 평균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으로 총 5-8년간의 빚 상환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용불량자들이 저소득과 정리해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문직, 안정된 소득이 보장된 사람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파산제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된다. 예를 들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월평균 소득이 150만 원 이하에 총부채가 6천만 원을 상회한다면, 개인파산제를 적극 활용해야한다.

개인파산에 대한 거짓말과 진실

개인파산은 사형 선고나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고금리 피해자의 경제적 부활이다. 그런데 최근 채권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개인파산제를 이용해 개인파산선고를 받으면 호적에 기록이 남는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정보를 문답식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개인파산에 대한 거짓말과 진실

● 신용불량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요? ☞ 개인파산자는 도덕적 해이자가 아닌 고금리 피해자일 뿐입니다.
개인파산자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것일 뿐, 빚 떼먹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채권 추심에 떠밀려 원금보다 몇 배나 많은 이자를 지불해왔습니다. 채무자가 연 평균 카드 이자율 28%를 기준으로 돌려막기할 경우 2년 6개월이 지나면 빚은 두 배로 불어나고 또 몇 년 뒤에는 몇 배로 늘어나 채무자가 지급불능에 빠지는 것입니다.

○국가별 소비자 파산수 (단위: 명)
연도 한국 일본 미국
2001년 672 160,741 1,452,030
2002년 1,335 214,996 1,539,111
2003년 3,856   1,625,208


● 내가 3인 가정, 월 소득 150만원, 4000만원의 카드빚이 있다면? ☞ 개인파산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집은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10~20년 내에 빚을 갚기 불가능합니다. 현재 소득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분들은 개인파산 요건에 해당됩니다.

● 빚이 많은데 면책이 될까요? ☞ 사치하거나 낭비를 엄청 해서 채무가 늘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면책은 가능합니다.
우리 파산법은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낭비를 하여 현저하게 재산을 감소시키는 등의 경우에만 면책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판사 재량에 따라 면책률 50%, 70%와 같이 일부면책을 해주기도 합니다. 일부면책의 경우 채무자는 3~5년간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면 됩니다.

● 파산하면 거주·통신 제한되고 호적에 빨간 줄? ☞ 대표적인 거짓말입니다.
배당할 재산이 없는 개인 채무자의 경우에는 대개 파산 선고와 동시에 파산 절차 폐지를 선고하기 때문에 파산 절차 진행을 전제로 하는 거주 제한이나 통신의 제한 등은 실제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호적에 빨간 줄 그이는 일도 없습니다.

[미디어참세상] [불안정빈곤공동행동] 공동기획 : 사회적 빈곤에 철퇴를
1회 -'사회적 가난'의 자화상 : 가난은 예외적인가?(10월 29일)
(기고)사회적 빈곤, 사회 파괴 기계로 작동하는 현실 (사회복지와노동 포럼팀)
(취재)"800만 빈곤층 불안정노동의 결과" (김삼권 기자)
2회 - 빈곤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 '인권침해'(11월 3일)
(기고)"인권의 주장을 통해 수혜자가 아닌 권리주체로" (류은숙)
(취재)통계로 본 빈익빈 부익부(김삼권 기자)
3회 - ‘가난’의 관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와 실(11월 17일)
(기고)“국가가 당신의 분노를 관리하고 있습니다”(유의선)
4회 - 자본금융화의 ‘폭력적 희생자’-신용불량자(12월 8일)
(기고)"신용대란, 정부 정책과 부실경영이 낳은 합작품"(이선근)
5회 - ‘가난’의 여성화, 여성의 빈곤화(12월 13일)
6회 - 사회연대기금, 노조운동의 활로인가? 늪인가?(12월 15일)
7회 - 기업의 사회공헌, 기부운동의 실태, 과연 아름다운가?(12월 22일)
8회 - 가난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자(12월 29일)
덧붙이는 말

이선근 님은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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