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문자 보니까 좋냐?

수능 앞에 개인정보 없다

문제는 항상 그 놈의 '오버질'이다. '오버질'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보니 본질은 쑥 들어가고 껍데기만 남는다. 다름 아니라 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수사와 관련한 핸드폰 문자메시지 조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학생들 사이엔 괴담이 흘러다닌다. 수능하고 전혀 관련도 없는 중학생들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수사해서 이미 몇 몇 학생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실제 조사받은 학생들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수능 당일 시험을 쳤던 중학교 학생들이 정답확인을 위해 서로 문자를 주고 받은 것이 포착되어 수사를 받은 것이었다.

애인들끼리 나눈 밀애의 암호도 모두 수사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의 표현으로 '오 나의 삼식이'라는 의미의 '532'라는 숫자를 날린 어느 연인은 졸지에 둘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수사를 통해 확인받게 되었다.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의미의 '4444'를 날린 연인 역시 그 사랑을 경찰 수사를 통해 확인받게 되었다. 연인간의 사랑이 경찰 수사에 의해 확인되는 기괴한 나라. 좋아하는 사람끼리 절대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지 말 일이다.

계좌번호 알려준 메시지, 신용카드번호 알려준 메시지, 집 번지수 알려준 메시지 모두 모두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다. 병원 병실 호수를 알려준 메시지, 자동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려준 메시지 등 숫자로 된 모든 메시지는 다 걸려들었다. 특히나 5 이하의 번호로만 조립되어있는 6자리 숫자는 예외 없이 모두 조사대상에 올라갔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 없다.

그런데 숫자만 가지고 이렇게 수사를 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숫자로 이루어진 메시지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자메시지도 모두 수사대상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한글이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문자 메시지 모두가 이미 선별과정에서 수사대상에 올랐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은 문자메시지를 절대로 이용해서는 안 되겠다.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으면 달력의 날짜를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을 길러야 할 판이다.

아마 당일 내가 보낸 문자만도 몇 통이 될 터인데, 내 문자 메시지를 수사하겠다는 영장을 본 기억은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경찰은 내 문자메시지를 압수수색한 것일까?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어디를 보아도 업체가 문자메시지를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고, 이런 거 가져다가 맘대로 수사에 활용해도 된다는 규정이 없다. 통신비밀보호법 어디를 봐도 경찰의 이와 같은 행위를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만한 근거규정이 없다. 전기통신사업법이고 어디고 죄다 들여다봐도 경찰의 이와 같은 저인망식 싹쓸이 문자메시지수사를 보장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럼 경찰은 도대체 뭘 믿고 법률의 규정에도 없는 짓을 했을까?

법원은 또 무슨 배짱으로 이러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영장을 주었을까? 업체가 관리하고 있는 서버의 내용은 언제든지 공권력이 개입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적법절차라는 것을 법원이 지켜내지 않으면서 도대체 누구에게 적법절차를 지키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공권력의 오바질은 이 정도로 하더라도 정작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보관하고 있는 업체들의 똥배짱은 또 뭔가? 얘네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남들의 사생활이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인 문자메시지를 이들은 아무런 권한도 없이, 법적 근거도 없이, 본인 동의도 없이 보관하고 있었다. 뭐할라고 그랬을까?

문제는 다시 한 번 '오버질'이다. 관련학생들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내지는 '업무방해'혐의로 구속한다.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모든 문자메시지를 적법절차도 없이 수사하면서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한 검, 경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없다.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할 비판을 애들에게 돌리는 이 파렴치함. 그렇게 어린 애들의 경력에 빨간 줄을 긋는 일을 하면서도 지들은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보며 킬킬거리고 있다.

빅브라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오버질 속에 끼여 내 속살까지 남김없이 보여줘야 하는 이 시대, 무차별로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며 얼마든지 낄낄거릴 수 있는 저들이 빅브라더다. 이 나라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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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 문자메세지 , 수학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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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미

    조금 긴 글인데요, 얼마전에 인권하루소식에 기고하신 글이 이 글과 관련이 있고 내용도 너무 좋아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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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최영도 인권위원장께

    류은숙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이란 단체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입니다. 수많은 성명서에서 최영도 님의 이름을 봐왔지만 직접 만나 뵌 적은 한번 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변호사님의 적극 추천으로 사랑방이 대한변호사회가 주는 시민인권상을 받게 됐기에 시상식에서 뵌 것입니다. 그런 빨갱이 단체에 상을 줄 수 없다는 의견에 맞서서 수년간 저희를 적극 추천하셨기에 저희가 그 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를 만들어보겠다고 사랑방 동료들을 포함해 많은 활동가들이 폭염 속에서 또 혹한 속에서 단식농성을 했을 때, 저희가 가진 한가지 소망은 아무리 미흡할지라도 감옥 속의 수인과 은폐된 수용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곳,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맘 편히 찾아가서 호소라도 해볼 수 있는 그런 국가 기관이 생긴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활동가들이 희망한 1기 위원장 목록에 당신의 이름이 앞다투어 거론됐던 것을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기고 3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은 국가인권위에 대한 협력거부선언을 유지해왔습니다. 출범 때부터 민간단체를 배제하고 독선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나 관료화의 가속화 등을 보여주는 인권위에 대한 가장 좋은 약이 섣부른 협력보다는 비판과 견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기 인권위가 출범했고, 당신께서 위원장에 지명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1기와 마찬가지로 '밀실인선'이기는 했지만, 될 사람이 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취임에서부터 그동안 배제되고 간과돼온 '사회권'의 문제를 강조하고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얘기하신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늘 당신의 땅투기 의혹 얘기를 접했습니다. 입맛이 쓰디쓰기만 합니다. 한 평 땅은 물론 방 한 칸도 갖지 못한 저로서는 솔직히 투기와 정당한 땅 소유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투기의 목적으로 산 것이 아니고, 과정에서 법을 어긴 것은 잘못이며, 또 어떤 땅은 노후를 보내기 위해 산 땅이며, 그 외 땅은 수임료로 받은 것이라는 당신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습니다. 전통 토기에 애착이 크셔서 '짠돌이' 소리를 들어가며 딴 데 돈 쓰지 않고 평생 모으신 토기를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얘기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명에서 밝히신 것처럼 당신의 평생 삶에 대해 갖고 계신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으신 것이 당신에게 물론 가장 아프시겠지만, 존경할 만한 사회의 어른을 한 분이라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큰 상처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가질 수 있는 잣대는 당신에 대한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이걸 갖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봅니다. 특히 당신께서 강조하신 '사회권'이란 것 말입니다.

    얼마 전에 노숙인 인권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노숙인들의 대부분이 아주 어린 나이에 노동시장에 들어섰답니다. 그때부터 방 한 칸 못 갖고 불안정한 주거를 전전했으니 당연히 교육에서 멀어졌고,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돼 온 것이 그분들의 삶이랍니다. 지금도 여전히 돈을 벌고 있지만 쪽방이나 고시원 등 진정한 '집'이 아닌 곳에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것이 그분들의 삶이랍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쉼터라는 것은 그나마 숨쉴 자유마저 없기에 기피하게 되고, 일당이라도 받을 일거리를 얻지 못하면 거리에 나왔다가 몇 푼 생기면 쪽방에 들어가는 그야말로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입니다. 노숙자라는 극단적인 예가 아닐지라도 방 한 칸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는 큰 짐입니다.

    한창 활동하는 중에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한테 얹혀 지내지만 내가 인생에 과연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에게 인생에 방 한 칸 마련하기는 '미션 임파서블'로 느껴집니다. 월세가 부담스러워서 허름한 전셋집이라도 얻어 사무실을 이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사랑방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인권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놓고 정부 정책과 맞서야 하는 국가 내의 '자기 반성 장치'입니다. 아무리 독립적인 기구라 하지만 국가 기구가 정부 정책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 일면 모순일텐데, 거기에 인권위원회의 존립 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과 인권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라는 형식적 기구에 생명력을 부여할 '투사'를 갈구했던 겁니다. 제도나 법 상의 미비함과 불철저함을 인권의 철학과 행동으로 돌파할 일꾼들이 국가인권위를 끌고 나가길 바랬던 겁니다.

    인권의 형성은 서구에서 일부 재산가들의 권리 옹호(재산권 옹호)로 시작됐고, 그러했기에 현실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으로 치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권의 주체인 사람들은 그런 형식적인 인권을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한 것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했고, 역사적 투쟁을 통해 그것을 실현해왔습니다. 인권은 고매한 이상이나 듣기 좋은 장식용 단어로서 써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단한 실천을 통해 현실에서 구현돼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떳떳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방한칸에 신음하며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 '보증금 3천만원' 등의 벽보를 늘상 쳐다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당신이 위반한 법조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데 있는 것이니까요. 당신이 어떻게 대기업위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의 비정규직화에 맞서 줄 수 있을지 못미덥고 나아가 서글픔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1기 국가인권위의 문제점을 딛고 쇄신해보겠다고 기지개를 켠 2기 인권위의 앞날이 걱정스럽습니다. 국가인권위의 위기는 약한 동아줄이나마 썩은 동아줄이 아니길 바라며 움켜쥐고 있는 인권의 주체들을 힘들게 합니다. 당신말고 또 누군가를 데려온다 해도 '과연 기준에 합당한 인물일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라는 현실적 우려도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해답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당신이 사퇴해 버리는 것, 아니면 당신이 말한 대로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여론을 지켜보면서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런 이분법밖에는 답이 없는 것일까요? 제가 아는 외국 할아버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9년 전에 국제앰네스티에 인권교육 연수를 갔을 때 뵌 분입니다. 그분은 엄청난 명문가에 태어나 어렸을 때 영국 여왕의 파티에도 자주 갔었다고 합니다. 또한 장성해서는 부모님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평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정말 방 한 칸(제가 가봤는데 마루바닥은 삐걱거리고 침대 대신 매트리스만 사용하는 침실과 화장실, 작은 부엌이 전부였습니다)만 남기고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단체에 기부해버렸습니다. 비행기 설계사라는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자기가 만드는 비행기가 전쟁에 이용된다는 이유로 그 직업도 버리고 동네의 사회복지사가 되어 지역의 독거노인이나 정신질환자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일로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 대한 자기 애정은 모형비행기를 만들어 주말마다 하이드 파크에 가서 날리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었습니다. 불로소득은 절대 안된다며 은행이 거의 주지도 않을 예금이자조차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은행거래조차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아주 나이가 많으셨기에 지금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따라 괜히 그 분 생각이 나네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앞서 말한 이분법적 질문과 답밖에는 없는 것일까요? 인권에 대한 헌신은 오히려 많은 선택을 남겨두고 있지 않을까요?

    명백한 악의보다 더 나쁘고 두려운 것은 '선의'를 가장한 것들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773 호 [입력] 2005년03월18일 23: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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