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폭력

무엇이 노숙인들을 분노케 했나!

노숙인들을 경찰 공안부의 전원 구속수사 대상으로 쫓기게 만든 유례 없는 충돌사태의 원인은 철저히 파묻혀 버렸다.

지난 1월 22일, 공익요원들과 이들의 보고를 받은 서울역 역무팀은 2층 서울역 대합실에 쓰러진 노숙인을 119 구급차를 부른다거나 응급조치를 취한다거나 하는 아주 상식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폐지나 짐짝을 나르는 손수레에 실어 대합실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손수레에 실려 가던 노숙인은 결국 사망했다.

손수레에 실려 가는 동료의 모습을 많은 노숙인들이 목격했고,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퍼져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노숙인들과 경찰과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노숙인 대표를 뽑자" "부검에 참여하자" "사과를 받아내자" "얼굴이라도 봐야 한다", 사체에 흰 천도 덮여 있지 않았다며 동료의 죽음 앞에 자신들의 요구를 쏟아내던 노숙인들의 울분을 경찰은 완전히 무시했다. 그리고 사체를 기습적으로 옮기지 말아달라는 노숙인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거듭된 경고조차도 묵살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다.

손수레에 실려 가던 동료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마지막도 쓰레기처럼 저럴 수 있을 것이라 눈물을 흘리며 결집한 노숙인들의 이유 있는 항변 앞에 서울시는 노숙인에 대한 '강제수용조치'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으며, 경찰은 이번 사태를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적극 가담한 이들을 전원 구속 수사하겠다며 노숙인들을 연행하고 있다. 언론은 노숙인들의 '집단난동'을 부각시키며 그동안 노숙인에 대한 시민들의 불쾌함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사회와의 격리를 부추키고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쓰러진 이가 '노숙자'가 아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연 공익요원은 손수레에 실어 대합실을 가로질러 갔을 것인가. 만약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과연 언론은 '난동'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가난한 아이들의 빈약한 도시락에 분노하고, 굶어죽는 아이가 있는 현실에 몸서리치면서 왜 병들어 쓰러진 이가 최소한의 응급조치도 받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옮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의 죽음에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함구하는가.

이미 노숙인에 대해서는 '나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후안무치함을 차치하고 나서라도, 하루 20만 명까지도 이용한다는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의 허술한 응급의료체계가 쓰러진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가.

서울역은 공포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사복을 입은 경찰들은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노숙인들을 전원 구속수사 하겠다며 체증된 사진을 들고 서울역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제 시민의 불쾌함을 조장하는 노숙인들은 격리되어야 하는 존재로만 강조되고 있기에 지나가는 시민들은 노숙인들을 범죄집단 혹은 폭도들로만 바라보고 있다.

모든 노숙인을 표적으로 가해지는 여론몰이로 인해 이미 노숙인들 사이에서는 배낭을 메고 다니지 말자며 노숙 동료가 동료에게 이야기하는 씁쓸한 풍경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3일 있었던 7호선 지하철 방화사건 때도 "노숙자 차림의…"라는 목격자 말만으로 노숙인 모두는 언제든 공공시설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방화범으로 내몰렸다.

어떠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든 노숙인이 표적이 되는 여론몰이는 '단속과 강제 수용'이란 정책 당국자들의 얼토당토않은 대책이 나오도록 만드는 주범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공범행위를 합작해서 계속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묻지마 폭력'이다.

너도나도 하물며 대통령도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가 우리시대 과제라고 이야기하면서 더욱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격화되어 가는 지금, 이렇게까지 내몰면서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지하도 바닥까지 가 있는 노숙인들의 사회복귀를 돕는다는 말인가.

우리는 귀를 의심할 정도로 지금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던 굶어죽고, 얼어죽고, 불에 타죽는 사람들의 절망적 현실이 일상처럼 펼쳐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수급권자로, 독거노인으로, 빈곤아동으로,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으로, 영세민으로, 소녀소녀가장으로 쪼개지만, 그 삶을 들여다보면 위기상황에 대처할 만한 자산도 없고, 사회적 지지망도 없고, 가족은 붕괴 직전이거나 이미 해체된, 절망의 빈곤에서 사회를 등지는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나누고 나누어 임시적인 땜빵식 대책만을 발표하기에 바쁘다.

이번 충돌사태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사실 노숙인들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은 삶임에도 그동안 노숙인 복지정책으로 포장되어 여전히 응급적이고 일회적인 정책만으로 감당하고자 했던 정책에 대해 쌓였던 울분과 불만이 동료의 비인간적인 죽음과 맞닥뜨려 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시대 민중을 특정한 집단으로 각개 격파해 관리하는 정책은 낙인과 고립정책이자, 도움을 통한 지배정책과 다름 아니기에 주거와 의료, 자활과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회안전망이 수립될 수 있도록 이에 대항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충돌사태의 원인에 대해 언론과 사회가 드러난 현상에 매몰되어 모든 노숙인을 특정 집단으로 여론몰이하는 공범행위를 막아내고 표출된 분노를 당당한 요구로 수렴하고 투쟁해 나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말

유의선 님은 빈곤사회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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